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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서울 강동구 ‘현대EV스테이션 강동’에서 열린 ‘미래차·산업디지털 분야 산업-금융 뉴딜 투자 협력 MOU 체결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금융위원회
선도형 경제 대전환 위한 금융 혁신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이후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제 현상이 있다. 바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간 괴리다. 고용과 소비 등 실물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는 우울한데 금융시장은 어느 때보다 쾌청한 모습이다. 실물과 금융 간 괴리는 가계의 소득과 자산 간 탈동조화로도 나타난다. 실직과 휴직, 폐업과 휴업의 증가로 가계의 소득 창출 능력은 떨어진 반면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은 역대 최고치를 오가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소득수준과 자산 가격 간 괴리가 깊어지면 경제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 복합 불황으로 빠져들 위험이 커진다. 정부와 금융 당국, 금융업계 모두에 2021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실물과 금융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
실물과 금융의 괴리가 커진 이유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위기 대응 과정에서 시중 유동성이 급격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 풀려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 공급량을 보여주는 지표인 협의통화(M1)는 2020년 11월 기준 1140조 원(평잔)으로, 1년 만에 26.8%(241조 원) 늘었다. 협의통화에 2년 미만 정기예금 등 현금화하기 쉬운 유동성까지 더한 광의통화(M2)는 3183조 원을 넘어서며 9.7%(282조 원) 증가했다.
이처럼 급증한 유동성은 실물경제의 활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1월 26일 발표한 국민계정 속보치를 보면, 2020년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실질 국내총소득(GDI)이 전년 대비 각각 1.0%포인트, 0.3%포인트씩 감소하는 역성장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의 충격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가운데 급격하게 늘어난 유동성은 기업과 가계 등 민간 부채의 급증과 자산시장의 팽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한 2020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평균 9.8% 상승했고,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은 무려 45.6%나 증가했다.
실물경제 회복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한 풍부한 시중 유동성은 사상 유례없는 확장재정과 완화적 통화정책의 부산물이다.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경제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2021년에도 같은 기조의 재정·통화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시중 유동성의 흐름에 새로운 물꼬를 터줘야 한다. 실물경제의 회복과 코로나19 극복 이후 선도형 경제로 대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하는 금융혁신이 절실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월 20일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실물과 금융 간 괴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위기 대응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쏠림과 부채 급증 등을 야기할 가능성에 유의하면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는 물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가 언급한 ‘생산적 투자의 물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뉴딜금융’이다. 한국판 뉴딜 사업에 대대적인 자금 공급이 2021년부터 본격화한다. 정부는 2020년 9월 민관 합동으로 열린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 동안 정책금융이 선도하는 투자·융자 약 100조 원에 민간자본 참여 약 75조 원 이상을 합쳐 모두 175조 원+α 규모의 뉴딜금융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바 있다. 2021년 정책금융 공급 계획으로 약 17조 5000억 원을 확정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분야에 참여하는 기업의 사업화와 성장, 해외 진출 등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은행이 특화 대출과 온렌딩(민간 위탁 간접대출 제도) 금융으로 11조 9000억 원을 공급할 계획이다. 온렌딩 금융이란, 정책금융기관이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중개금융기관(은행·여신전문금융회사)에 자금을 공급하면, 중개금융기관이 대상 기업을 선정해 대출을 실행하는 정책금융이다.
산업은행의 특화 대출이나 온렌딩 금융은 일반 시중금리보다 최대 0.8%포인트 낮은 우대금리를 적용한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은 뉴딜 관련 기업의 사업화 단계별로 특화된 방식으로 2021년 약 5조 4000억 원의 특별 신용보증을 제공한다. 신재생에너지 개발 등 신성장 분야 뉴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이나 독자 기술로 사업화에 뛰어든 기업이 지원 대상이다.
또 기업은행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전국 산업단지의 스마트 설비 보급과 친환경 시설 구축에 약 3조 2000억 원을 지원한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중소 제조업체 밀집 지역인 산업단지의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혁신을 촉진해 첨단 신산업이 육성되는 친환경 제조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게 지원 목적이다.
가장 눈길 끄는 뉴딜금융은 ‘정책형 뉴딜펀드’
2021년에 가장 주목받는 뉴딜금융은 정책형 뉴딜펀드다. 정책형 뉴딜펀드는 디지털·친환경 산업 분야에 투자할 자금을 모으고 운용하는 민관합동 투자기구다. 정부가 재정과 정책자금으로 마중물을 공급하면, 전문 운용사가 다시 자회사 형태로 사모 집합투자기구(사모 자펀드)나 벤처투자조합(벤처캐피털)을 결성해 각각 민간자금을 더 유치한 뒤 뉴딜 관련 사업이나 기업에 지분 투자, 대출 등 다양한 형태로 자산을 운용한다.
정책형 뉴딜펀드는 2021년 4조 원부터 시작해 2025년까지 5년간 약 20조 원을 조성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정부는 산업은행과 한국성장금융을 통해 정책형 뉴딜펀드 운용사 선정을 위한 제안서 접수를 1월 26일 끝냈다. 2월에 심사와 선정 절차를 마무리하고, 3월부터 운용사별로 투자사업 구상과 민간자금 유치 목표를 달성하면 순차적으로 펀드 결성과 투자를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책형 뉴딜펀드의 중점 투자 대상은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Data·Network·AI), 자율주행·친환경 운송 수단, 디지털·비대면 서비스, 사회기반시설·물류의 디지털화, 스마트 제조·농업, 기타 친환경·녹색산업 등 6대 핵심 뉴딜산업이다.
여기에 세부 분야도 87가지에 이르며, 펀드 운용사가 독자적인 전략과 전문성에 따라 뉴딜금융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적합한 분야를 선택해 제안할 수도 있다. 펀드 조성 목적과 투자자 구성을 고려해 성장성을 중시하는 ‘경영 참여형’, 안정적인 수익성을 추구하는 ‘전문 투자형’ 등 자산 운용의 자율성과 다양성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투자의 필요성과 위험도에 따라 정책자금의 출자 비율을 30~45% 범위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도 정책형 뉴딜펀드의 특징이다. 투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정책자금이 든든한 완충 기능을 하는 출자 구조로 설계한 것이다.
개인이 정책형 뉴딜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정부는 국민이 뉴딜 분야의 투자 성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사모재간접 공모펀드 방식으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를 출시하기로 했다. 사모재간접 공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펀드 자금을 공개 모집(공모)해 투자금을 모은 뒤 전체 투자의 50% 이상을 뉴딜 관련 사모펀드에 재투자하는 펀드를 뜻한다. 정부는 우선 3월 중 1400억 원 규모로 국민참여형 뉴딜펀드를 설립해 은행과 증권사 등을 통해 선보일 계획이다.
2050 탄소중립 달성 위한 ‘녹색금융’
뉴딜금융과 함께 국내 금융권에 새롭게 급부상하고 있는 화두는 ‘녹색금융’이다.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그린 뉴딜이 경제 도약을 위해 선택한 성장 전략이라면, 녹색금융은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세계적 흐름이다. 기후 위기와 생태·환경 악화에 대한 대응은 정책 당국과 금융기관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달성하는 데도 금융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투자와 대출 등 금융 관행의 획기적 개선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국내 은행이 탄소 배출 감축 노력에 동참하지 않으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2029년에는 최소 의무 비율(4.5%)을 위협할 정도로 떨어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최근 내놓은 바 있다. 은행의 투자와 대출 자산 가운데 기후 위기 대응에 취약한 산업에 대한 비중이 너무 높은 데서 발생하는 위험이다.
정부는 이런 위험에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녹색금융 관련 3대 분야 12개 과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녹색 분야로 자금의 흐름을 전환하기 위해 먼저 녹색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기관의 자금 지원 가운데 2020년 말 기준 6.5%에 머물고 있는 녹색 분야 비중을 2030년까지 약 13%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녹색 분야 자금 지원 확충을 위한 기관별 투자 전략은 2021년 상반기 중 마련한다. 이미 산업·수출입·기업은행에서는 녹색금융 전담 조직을 신설한 데 이어,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한 다른 기관에서도 전담 조직을 신설하기 위해 계획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환경부는 기업 활동의 녹색 여부를 가릴 지표로 ‘녹색분류체계’를 상반기 중 마련해 시범 적용에 들어간다. 국제표준화기구(ISO)와 유럽연합(EU)의 분류체계를 참고해 10대 분야 81개 경제활동을 분류체계 지표 대상으로 선정했다. 녹색분류체계에는 경제활동의 환경 개선 기여에 대한 기술 기준과 환경 법규 준수 여부도 반영한다.
‘녹색금융 모범규준’ 만들어 리스크 관리
녹색분류체계가 마련되면 정책금융기관은 이를 토대로 녹색 특화 대출과 보증 프로그램 신설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산업·수출입·기업은행은 ‘녹색 특별대출’을 통해 우대금리를 최대 1%포인트 낮추고, 신용보증기금은 ‘녹색기업 우대보증’으로 보증료율을 최대 0.4%포인트 낮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1분기 중에는 금융권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녹색금융 모범규준’을 만들어 금융사마다 내규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모범규준에는 녹색금융 투자 전략, 리스크(위험 요소) 관리, 추진 체계, 면책 조항 등이 들어간다. 2020년 12월 발표한 ‘녹색채권 가이드라인’에 따라 녹색채권 발행 시범 사업도 2021년부터 선보인다.
기업의 환경 정보 공시와 공개 의무화 대상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한국거래소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대한 정보 공개 양식(기업이 예상하는 실적에 대한 전망치)을 2021년 첫 달부터 배포해 상장기업의 자율 공시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2025년부터는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상장기업, 2030년에는 전체 코스피 상장기업에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게 한국거래소의 계획이다.
또 환경부는 국회에 계류 중인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의 입법화를 서두르기로 했다. 현행 법률에는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업체 등 환경 영향이 큰 기업만 공개 대상인데,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기업으로 의무화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