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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
2017년 7월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미국을 넘어 세계 인공지능(AI) 혁신의 중심 국가가 되겠다는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AI 기술을 선진국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2025년까지 일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2030년까지 AI 산업 및 연관 산업 규모를 각각 1조 위안(약 170조 원)과 10조 위안까지 키우겠다는 단계적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18년 1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핵심 지도부인 정치국원들이 모였다. AI 발전 현황과 추세에 대해 집단 학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특정 미래 산업을 주제로 집단 학습 시간을 가진 것은 중국 지도부가 AI 발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차세대 AI를 발전시키는 것은 전 세계 과학기술 경쟁의 주도권을 중국이 잡을 수 있는지와 관련된다”며 “AI 기초 이론의 연구 강화와 더불어 시스템 등 여러 방면에서 혁신적인 돌파를 마련해 중국이 AI라는 중요한 분야에서 앞서가고 핵심 기술을 반드시 중국의 손안에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기술 수준 미국 바짝 추격
2019년 3월에는 시 주석이 주재한 공산당 중앙 전면심화 개혁위원회 7차 회의에서 ‘AI와 실물경제 심도 융합에 관한 지도의견’이 통과됐다. 중국 언론들은 “AI가 2017년부터 3년 연속 정부 업무보고에 등장했다”며 “AI를 신흥 기반 시설(인프라)로 확대해 산업과 융합함으로써 경제구조의 고도화를 가속화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차세대 AI 발전계획’으로 현재 중국의 AI 기술 수준은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미국의 데이터혁신센터(Center for Data Innovation)는 2019년 8월 펴낸 ‘누가 AI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가’ 보고서에서 AI 기술 분야에서 미국이 종합적으로 앞서지만 중국이 그 차이를 빠르게 좁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의 AI 관련 투자액은 2017년 81억 달러로 미국의 62억 달러를 웃돌았고, AI를 연구하기 위한 슈퍼컴퓨터 보유량도 넘어섰다. 2019년 현재 세계 상위 500대 슈퍼컴퓨터 가운데 중국은 미국(116대)의 2배 가까운 219대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AI 굴기(급부상)의 근원으로는 대량 자료(빅데이터)가 꼽힌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결제 데이터는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고 있다. 2018년 중국 인구의 45%인 5억 2500만 명이 모바일 결제를 사용했지만, 미국에서는 인구의 약 20%인 5500만 명만이 모바일 결제를 사용했다. 또 같은 기간 사물인터넷(IoT) 관련 데이터 생산량도 중국은 1억 5200만 테라바이트(TB)에 달했지만, 미국은 6900만 TB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빅데이터의 제약이 가장 심한 나라가 중국이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정준규 선전무역관장은 “중국은 정부가 위성항법장치(GPS) 정보를 쥔 채 공개하지 않아 내비게이션이 가장 늦게 보급된 나라였다”며 “4차 산업혁명에서 AI가 중요한 기술이라 판단한 중국 정부가 얼굴인식 등 생체인식을 할 때 개인 동의와 같은 윤리적 문제를 무시하고 빅데이터를 풀면서 지금은 AI가 가장 빠른 나라가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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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에 있는 세계최대 전자상가인 화창베이 입구에 부강(富强), 민주(民主), 문명(文明), 화해(和諧), 자유(自由), 평등(平等), 공정(公正), 법치(法治), 애국(愛國), 경업(敬業), 성신(誠信), 우선(友善) 등 12가지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선전하는 조형물이 서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게임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사회주의 핵심가치관 전파의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소비자의 모든 정보 확보해 분석 가능
중국 기업들은 방대한 데이터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상대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정책과 규제가 느슨하고, 사생활 보호에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에서 중국의 AI 기업들은 소비자의 거의 모든 정보를 확보해 분석하는 게 가능하다. 다른 나라라면 확보할 수 없는 자세한 빅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18년 사업에 AI를 활용하는 기업의 비중이 중국(32%), 미국(22%), 유럽연합(18%) 순으로 나타났다. 전통적 보안 업무에 AI 기술을 접목한 번카이안추엔사의 리차오양이사는 “AI 개념은 미국과 유럽이 앞섰지만, 중국이 AI를 제품에 응용하는 범위가 훨씬 넓고 실질적으로 많이 이용하다 보니 AI 제품의 완성도는 미국과 유럽보다 높다”고 주장했다.
보안업체인 번카이안추엔처럼 AI는 중국의 기존 산업도 바꿔놓고 있다. 전자사전 업체들은 AI 기술을 집어넣은 동시통역기를 만들고, 유통업체들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분석하고, 보험사 등 금융기관도 AI를 금융상품 개발에 활용하는 등 응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선전에 사는 중국 재외국민 박옥희 씨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시중은행보다 이율이 높은 간편결제 앱에 저축하면서 시중은행에 현금이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하드웨어만 신경 써서 제품을 만들던 시대는 끝났다. 도입의 수위가 다를 뿐 AI가 안 들어가는 산업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글·사진 강민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