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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천국’ 일본 도쿄 가보니
“저기 청년들이 내놓는 사업 구상을 한번 들어보세요. 상상을 초월합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이전인 2019년 12월 일본 도쿄 시부야의 한 쇼핑센터 7층 대강당. <공감> 취재진을 안내하던 로봇 업체 관계자가 행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본 인공지능(AI) 로봇 산업을 조망하기 위해 도쿄를 찾은 취재진을 이곳으로 먼저 안내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본의 한 이동통신사가 주최한 행사에 1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회사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 ‘로봇 인큐베이터(보육기)’를 졸업한 3개 로봇 관련 AI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자신들의 사업 모델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 관계자는 “벌써 만 2년 넘게 매월 첫째 토요일 아침 9시면 로봇 관련 창업을 꿈꾸는 일본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사업 구상을 발표한다”며 “이를 보기 위해 대기업 및 벤처캐피털 관계자들이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젊은이들이 로봇에서 꿈을 펼치려 하듯 일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로봇에서 찾는다. 나아가 심각한 고령화에 맞서 로봇과 공존을 통해 인구 문제의 해답을 제시한다. 이런 노력은 일본 정부가 2019년 발표한 ‘로봇 신전략’에 그대로 담겨 있다. 2020년까지 민관이 1000억 엔(1조 1100억여 원)을 투자해, 일본 내 로봇 시장을 2018년의 3배인 2조 4000억 엔(26조 6400억여 원) 규모로 확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일상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을 만날 수 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4차 산업혁명과 맞물리며 로봇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사람 대신 로봇이 식당에서 고객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요양원에서 노인들에게 게임과 일상 운동, 기본적인 대화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수상한 사람이나 몸이 아픈 사람 등을 발견하는 정찰 업무까지 맡고 있다.
도쿄역에는 7개국 언어로 환승역을 안내하는 로봇이 있고, 시내 중심가에는 로봇 바리스타 카페, 로봇 호텔, 로봇 꽃집도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로봇 정치인, 로봇 화가, 로봇 의사 등 고도의 판단력과 감각이 필요한 분야에도 로봇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갈수록 비대면 영역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더 확산될 게 분명해 보인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관계자는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로봇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이 자리 잡으며 함께 대화하고 살아가는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며 “아직은 인간이 주입한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주로 반응하지만 스스로 인지해 학습하는 더욱 진화한 AI로 빠르게 우리 삶 속에 녹아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일본에서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로봇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일본 로봇 산업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글·사진 김연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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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 쿄 시 부야의 카페 ‘페퍼 팔러(Pepper PARLOR)’에서 고객들이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에게 주문하고 있다.
■“즐거운 일 있나요?” 로봇이 건네는 인사말
로봇 카페 ‘페퍼 팔러’
“안녕하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 부탁드립니다.” 키 120㎝ 정도에 귀여운 외계인처럼 생긴 로봇이 큰 눈을 깜박이며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로봇은 눈에 파란 불이 들어온 채 기자의 얼굴을 바라본 뒤 “알겠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몇 분 후 쟁반에 커피를 담아 온 로봇은 커피를 건네며 “어디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로봇은 일본어 투가 묻어나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일본 인공지능(AI) 로봇 산업을 조망하기 위해 도쿄를 찾은 기자가 시부야의 카페 ‘페퍼 팔러(Pepper PARLOR)’에서 접한 풍경이다. 여러 대의 로봇이 카페 곳곳을 바삐 움직이며 고객을 맞이한다. 로봇은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날씨가 좋네요” “즐거운 일 있나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자리에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게임을 즐기고 주문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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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직원이 함께 일하고 손님을 맞으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카페 ‘페퍼팔러’
2019년 12월 문을 연 이 카페는 로봇과 직원이 함께 일하고 손님을 맞으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이곳은 일본 최대 정보기술(IT) 업체인 소프트뱅크 그룹에서 로봇 사업을 담당하는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사람 대신 손님을 맞이하는 로봇은 이 회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다.
페퍼는 최근 자율주행과 AI 기반의 대화형 서비스 등 한층 고도화된 기술을 탑재해 실로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호기심에 가득 찬 손님들의 질문도 농담을 섞어가며 척척 받아냈다. 카페에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두 팔을 아래위로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님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페퍼 팔러 관계자는 페퍼의 AI 기술에 대해 “사용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음성이나 표정을 통해 페퍼가 감지하면 페퍼 역시 그 감정을 느껴 반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 혁신으로 로봇이 우리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얼마나 빠르게 실생활에 적용되고, 사람에게 조화롭고 안전하게 쓰이느냐가 관건”이라며 “로봇이 곧 생활의 일부가 되고, 삶의 질을 높이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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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나토구의 ‘TEPIA 첨단 기술관’ 홍보 담당자가 로봇 강아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TEPIA 첨단 기술관은 일본에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로봇 기술이 한자리에 전시된 곳이다.
■‘新기업가 정신’ 꿈틀대는 로봇 창업 요람
‘TEPIA 첨단 기술관’
일본의 경제지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로봇 기술 분야의 최고가 되려는 ‘신(新)기업가 정신’이 꿈틀댄다고 보도했다. 청년들이 로봇 관련 신생기업(스타트업)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정부와 대학, 기업은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과 투자 생태계를 마련해 이들을 뒷받침한다.
일본에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로봇 기술이 한자리에 전시된 도쿄 미나토구의 ‘TEPIA(Technological Excellence Promoting Innovative Advances) 첨단 기술관’은 청년들의 창업 열기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전국 각지의 젊은이들이 로봇 분야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줄을 잇고, 일본을 넘어 외국인 인재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힘을 키우고 있다.
TEPIA 첨단 기술관 홍보 담당자는 “미래의 로봇은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노래도 하고 노인이나 치매 환자의 말벗이 될 것”이라며 “TEPIA 첨단 기술관은 이런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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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PIA 첨단 기술관’ 관계자가 인공지능(AI) 스피커 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로봇 제조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봇과 3D 프린터를 배우는 초보자 입문교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건물 내벽 곳곳이 투명판으로 돼 있어 로봇 기계가 움직이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일상에서 시민들의 로봇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세심한 배려로 느껴졌다.
TEPIA 첨단 기술관에 도착하자 거대한 로봇 모형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낮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버스 한 대가 이 로봇 앞에 섰다. 차 문이 열리자 20대 남녀 수십 명이 차에서 내려 TEPIA 첨단 기술관으로 향했다. 군마현의 군마대학 기술연구센터에서 온 견학생들이었다. 이들을 따라 2층 로봇 체험장으로 들어가니 첨단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이곳에서 만난 노무라 가큐(21·군마대학 4학년) 씨는 “대학 졸업 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이곳에서 첨단 로봇 기술을 접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TEPIA 첨단 기술관에서 같은 꿈을 꾸는 청년들을 만나 함께 정보를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고 말했다. 일본 북단 홋카이도부터 남단 규슈의 젊은이들까지 로봇 관련 창업을 위해 가장 먼저 이곳을 찾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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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시부야의 ‘헨나 카페’에서 고객이 로봇 바리스타에게 주문을 하고 있다.
■로봇 바리스타가 권하는 커피 한잔 어때요?
‘이상한’ 카페·호텔
‘이상한’ 바리스타(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를 만나기 위해 도쿄 시부야의 한 백화점을 찾았다. 이 바리스타가 일하는 지하 1층 카페에 들어서자 인기 아이돌의 팬 미팅이라도 열린 듯 수십 명이 바리스타를 에워싸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이곳은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헨나(?な, 한국어로 ‘이상한’이란 뜻) 카페’다. 사람의 도움 없이 로봇 스스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등 7종류의 커피를 만든다.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로봇 춤’을 보는 것 같다. 손님이 발권기에서 티켓을 산 뒤 주문대 QR코드 인식기에 대면 “사람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핸드드립(종이 필터를 사용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시작된다.
집게손가락 2개로 커피콩을 갈고 물을 부어 5분 남짓 만에 일사불란하게 커피를 내온다. 주문이 밀리자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손님이 뜸하면 “따뜻한 커피 한잔 어떻습니까”라며 ‘호객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은 320엔(약 32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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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투숙객을 맞는 도쿄 긴자의 ‘로봇 호텔’
이 로봇 바리스타는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미국산 팔 모양 로봇 ‘소여’로 7개의 관절을 활용해 커피를 만든다. 커피를 만드는 일뿐 아니라 필터를 씻는 일도 로봇이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 없이 운영된다. 커피콩을 채워 넣고 필터를 교체하는 일 정도만 사람이 한다.
이 카페는 일본 여행업체 ‘H.I.S’가 운영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로봇 바리스타는 물의 세기, 온도, 물의 양 등을 섬세하게 조정해, 사람보다 균일한 맛의 커피를 만들어낸다”며 “손님들 반응이 좋아 로봇 카페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일본 전역에 로봇이 투숙객을 맞는 ‘로봇 호텔’도 운영하고 있다. 이 호텔에선 입퇴실 절차는 물론 바닥이나 유리창 청소도 로봇을 활용해 비용을 크게 낮췄다. 로봇의 도움으로 다른 도심형(비즈니스) 호텔의 4분의 1 수준인 5명 안팎으로 호텔을 운영한다. 객실에도 로봇이 설치돼 있어 음성 인식으로 조명이나 냉난방기 작동을 지원한다.
업체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ICT가 접목된 호텔이나 카페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로봇을 활용하는 것은 비용 감소 효과도 있지만 손님들의 흥미를 불러 구매 욕구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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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공업대학이 개발한 최신 로봇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스카이트리 타운 캠퍼스’
■오타쿠 몰려드는 ‘구조로봇의 성지’
‘스카이트리 타운 캠퍼스’
일본의 인공지능(AI) 로봇 기술을 조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다. 이곳 8층에는 지바공업대학이 개발한 최신 로봇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스카이트리 타운 캠퍼스’가 있다. 이곳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거대한 ‘로봇의 눈’이 기자를 맞았다. 로봇의 눈은 정교한 인식 능력으로 입장객 수를 정확히 파악한다.
로봇의 눈을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이번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투입된 구조로봇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 로봇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원자로 건물에서 데이터를 얻어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특히 다른 로봇보다 월등히 빠른 30㎝/s 이상의 속도로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또한 탑재한 검사 장비를 이용해 사용후핵연료를 자동으로 인식·검사할 수 있어 사람의 방사선 피폭 우려도 덜어준다.
주말이면 이곳의 구조로봇 기술을 확인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잇는다. 이 때문에 <아사히신문>은 이곳을 ‘구조로봇의 성지’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구조로봇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관련 기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의 구조로봇 업계 관계자와 로봇 오타쿠(특정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란 뜻의 일본어)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기술 아이템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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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트리 타운 캠퍼스 홍보 담당자가 ‘구조로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바공업대학처럼 일본 대학들이 로봇 기술 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점도 눈에 띈다. 지바공업대학을 비롯해 일본의 주요 대학들은 로봇 기술 개발을 위해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고 벤처펀드 조성에도 나섰다. 관련 신생기업(스타트업) 양산을 위한 교과과정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지바공업대학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2019년 한 해 동안 5개의 신생기업 창업을 도왔다.
스카이트리 타운 캠퍼스 홍보 담당자는 “그동안 산업용 로봇이 인간보다 수천 배 강한 근육, 수백 배 빠른 팔로 공장의 효율을 극대화했다면 이제는 AI 기술에 힘입어 더 빠른 두뇌까지 탑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물이 다세포로 진화한 것처럼 로봇도 진화하고 있다”며 “대학이 앞장서서 기술 개발에 나서고 기업들의 협업이 더해지기 때문에 일본 로봇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