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국가부채가 폭증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감추기 위해 연금 충당부채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연금 충당부채를 두고 국가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매년 정부가 살림을 결산할 때마다 연금 충당부채는 도마에 오릅니다.
정부는 4월 7일 ‘2019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했습니다. 국가결산보고서는 한 해 동안 국가 살림의 결과를 집계한 보고서입니다. 감사원 검사를 거쳐 5월 말 국회에 제출됩니다. 주목을 받았던 부분은 국가채무입니다. 얼마나 빚이 늘었나, 언론과 야당이 비판하는 단골 메뉴입니다.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국가채무는 1743조 6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3.6%가 늘었습니다.
향후 70년간 지급할 연금 반영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를 더한 수치입니다. 2019년 중앙정부 채무는 전년보다 47조 2000억 원 늘어난 699조 원, 지방정부 채무는 1조 1000억 원 늘어난 29조 80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를 합친 정부 채무는 728조 8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48조 3000억 원 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사상 최대치라는 수식어를 덧붙였습니다. 사실 사상 최대치라는 표현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 나랏빚이 늘었다는 느낌을 담고 있습니다. 부채는 경제성장과 함께 증가합니다. 국가채무는 정부 출범 이후 매년 증가했습니다. 특히 정부 채무는 민간 채무와 다릅니다. 정부 채무가 축소되면 민간 시장의 위축을 가져옵니다. 국가채무가 적절한 수준에서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2020년은 유독 국가채무 증가와 함께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가 과소 추정됐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향후 공무원,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을 부채 형식으로 기재하는 항목입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직원들에게 퇴직 후 지급해야 할 퇴직금, 퇴직연금을 부채 형식으로 장부상 기재합니다. 2019년 결산보고서상 공무원·군인연금 충당부채는 944조 2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4조 3000억 원, 0.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최근 4년간 100조 원 안팎으로 늘었던 것에 비하면 증가 폭이 매우 작습니다. 오해할 만한 여지가 있지만, 연금 충당부채 산정 기준에 따른 변화일 뿐입니다.
연금 충당부채는 미래에 공무원,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을 합산해 추정한 수치입니다. 공무원, 군인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액이 많아지면 충당부채도 커지고, 지급할 연금액이 적어지면 충당부채도 적어집니다. 연금 충당부채는 향후 70년간 지급할 연금을 반영합니다. 지금 현직 공무원이 나중에 은퇴하고 받을 연금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는 그 사람의 임금 상승률에 달렸습니다. 임금이 많이 오르면 적립해야 할 연금 기여액도 많아지고, 향후 수령할 연금 규모도 커집니다. 반대로 임금이 적게 오르면 나중에 받을 연금도 적어집니다. 공무원 임금은 물가와도 관련 있기 때문에 연금 충당부채는 물가, 임금 상승률을 반영해 추정합니다.
2019년까지 정부는 2015회계연도의 물가(2.1%), 임금 상승률(5.3%) 전망을 기준으로 연금 충당부채를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물가 상승률(2%)은 낮아졌고 공무원들의 임금 상승률(3.9%)은 더 낮아졌습니다. 그만큼 예상 연금 지급액, 충당부채도 줄어든 것입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경제 현실에 맞지 않는 과도한 전망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연금회계 관리 지침에 따라 2020년 장기 재정 전망상의 임금 및 물가 상승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장률이 낮아진 현실을 반영하다 보니 연금 충당부채 규모가 줄었던 것입니다.
기업처럼 사용자인 정부가 내는 퇴직금·연금
연금 충당부채 추정의 정확도를 따지기에 앞서 공무원연금 충당부채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공무원·군인연금은 근로자로서 공무원과 사용자로서 정부가 함께 부담하는 ‘기여제’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공무원과 군인은 각각 9%, 7%의 기여금을 내고 사용자인 정부가 같은 비율의 부담금을 냅니다. 공무원·군인연금은 그들이 낸 기여금을 은퇴 후 연금 형식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낸 기여금으로 대부분 충당됩니다. 은퇴 공무원의 연금은 현직 공무원의 기여금으로, 현직 공무원이 수십 년 후 은퇴를 하면 그때 현직 공무원이 내는 기여금으로 충당이 됩니다.
물론 공무원, 군인 등 연금 가입자들이 낸 기여금에 비해 연금 지급액이 커지면 부족분은 세금으로 충당합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9년 공무원연금 국가보전금은 2조 563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매년 2조 원 남짓한 예산이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고에서 지원됩니다. 공무원연금 적자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줄이기 위해 2015년 현직에 있을 때 기여금을 늘리고 퇴직 후 받는 지급률을 낮추기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퇴직 공무원 수가 늘면서 여전히 국고보조금이 지원되긴 합니다. 이 문제는 연금 개혁의 문제지, 900조 원이 넘는 충당부채를 거론하며 나랏빚을 걱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 결산이 나오면 국가부채와 재정건전성 논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국가부채의 절반 이상(54%)을 차지하지만 재정 정책과 관련이 적은 연금 충당부채는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코로나19로 민간 수요가 급격하게 위축된 와중에 즉각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할지,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위해 재정을 아껴 써야 할지에 대한 논쟁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재정 정책의 방향성을 논할 때 연금 충당부채는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코로나19로 2020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유례없는 재정, 통화 정책을 펼치며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가는 것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영양가 없는 연금 충당부채를 주제로 논쟁을 하기에 한국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