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세금 폭탄론’입니다. 정부는 3월 19일 2020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공개했습니다. 서울 강남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의 공시가격이 올랐습니다. 한 해 만에 공시가격이 20% 넘게 급등한 곳도 있습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등 60여 개 분야에 활용되는 기준 가격입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부동산 보유 부담도 커집니다. 그럼에도 공시가격이 왜 올랐는지, 어떤 아파트 공시가격이 올랐는지를 살펴보면 ‘세금 폭탄론’은 지나칩니다. 대부분의 경우 공시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은 오히려 그동안 형평성 있는 조세 부담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집 가진 사람들의 이중적인 욕망
집을 가진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면 좋습니다. 더 비싸게 팔 수 있어서입니다. 그러면서 공식적으로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달갑지 않습니다. 보유세를 더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팔 때는 비싸게 팔고 싶지만 팔지 않을 때는 세금을 덜 낼 수 있도록 가격을 낮추고 싶은 것이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의 이중적인 욕망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공시가격 제도는 이중적인 욕망을 현실적으로 충족해주는 맹점이 있습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매매할 때 가격인 실거래 가격과 세금을 낼 때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차이가 큽니다. 공시가격이 실거래 가격보다 현저히 낮으면 팔 때는 비싸게 팔면서도 가지고 있을 때는 세금을 덜 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집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공시가격은 형평성에 어긋나게 형성돼 있습니다. 실거래 가격 대비 공시가격의 비율을 ‘현실화율’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1억 원에 거래되는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9000만 원이면 현실화율은 90%입니다. 현실화율이 낮을수록 팔 때는 비싸게, 보유할 때 세금은 덜 내게 됩니다. 현실화율은 지역별, 가격별로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고가 주택을 가진 사람의 현실화율이 저가 주택을 가진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더 낮습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6억 원 미만의 현실화율은 68.6%, 15억~30억 원대는 67.4%입니다. 상대적으로 고가 주택의 보유세 부담이 적은 것입니다. 가격이 표준화돼 있는 공동주택보다 단독주택은 더 심합니다. 3억~6억 원대 단독주택의 현실화율은 52.2%로 12억~15억 원대 50.6%보다 높습니다.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고가의 단독주택을 가진 사람이 가장 세금 부담을 덜 지는 것은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중가격 해소, 부동산 실거래가 인상 반영
정부는 2019년 말 2020년 공시가격 조정을 통해 실제 부동산 가치에 준하게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또 ‘12·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고가 주택 보유자, 다주택자는 그에 더한 세금을 내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9억 원 미만의 현실화율은 현재 수준인 68%로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9억~15억 원대는 70%대로, 15억~30억 원대는 75%로, 30억 원 이상은 80%로 현실화율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전체 1383만 호 공동주택 중 95.2%인 9억 원 미만 주택 1317만 호의 현실화율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4.8%를 차지하는 9억 원 이상 66만 3000호는 가격대에 따라 70~80%로 높아졌습니다. 전체 주택의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5.99% 증가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에 아파트 가격 상승이 더해진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9억 원 미만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1.97%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반면 9억 원 이상 주택의 공시가격은 21.15% 올랐습니다. 특히 15억~30억 원대는 26.18%, 30억 원 이상은 27.39%로 크게 인상됐습니다.
지역별 공시가격 역시 이중가격 해소, 부동산 실거래가 인상이 반영됐습니다. 가장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서울은 공시가격도 14.75% 올랐습니다. 대전 14.06%, 세종 5.78%, 경기 2.72% 순이었습니다. 부산, 인천, 광주 등 4개 지역은 1% 미만 상승률을 보였고 강원, 경북, 경남 등 8개 지역은 2019년보다 하락했습니다. 언론에서 주로 서울, 수도권 부동산 가격을 다루다 보니 전국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제로는 지역에 따라 거의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진 지역도 있습니다. 공시가격은 실제 부동산 가치에 맞게 형평성 있게 조정됐습니다.
세금 폭탄론은 아직 이릅니다. 여러 차례 시행된 부동산 규제 정책에도 일부 지역 아파트 가격은 정부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부동산 투자자들은 정부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틈새를 찾아냈고 정책 효과를 반감시켰습니다. 정부는 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도 전에 추가 규제를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점차 높아지고 종부세 최고 세율은 2%에서 4%로 높아졌으며 공정시장가액비율(공시가격 반영 비율)은 80%에서 2022년까지 100%로 상향 조정됩니다.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보유세 부담 상한은 150%에서 300%로 확대됐습니다. 앞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아도 보유세는 구조적으로 오릅니다. 아파트 가격 상승에 비하면 보유세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섣부릅니다.

▶2020년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2019년(5.23%)보다 오른 5.99%를 기록했다. 서울 송파, 강남구 아파트 단지│ 청와대사진기자단
조세 형평성 개선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
고가 주택,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9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12·16 대책 이후 서울지역 9억 원 초과 아파트 매매거래가 61% 급감했습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12·16 대책 이후 3개월 동안 거래 가격 9억 원 초과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3731건으로 대책 직전 3개월 9757건에 비해 61% 감소했습니다. 9억 원 이하 감소 폭보다 2.3배 컸습니다. 강남구는 72%, 서초구는 70%, 송파구는 68% 줄었습니다. 마용성 지역도 평균 55% 줄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 두 채를 가진 경우 보유세가 3000만 원에서 5400만 원으로 70%가 높아졌습니다. 강남에 부자가 많다고 하지만 보유세를 5000만 원씩 지출하며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투자자는 많지 않습니다. 설사 버틸 수 있다 해도 보유세 인상은 투자수익률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를 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셈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연간 지출 계획에 따라 미리미리 현금을 확보해두지 않으면 세금 납부가 쉽지 않을 정도로 보유세 부담을 느끼는 가구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부동산 규제라기보다 정상화에 가깝습니다. 매매 차익은 많이 얻으면서 보유세는 적게 내는 이중가격 문제를 해소하고 고가 주택일수록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내는 형평성 문제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도입된 각종 규제 정책과 맞물려 부동산 시장의 다주택 투자수요를 억누르는 효과도 내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자신의 소득으로 보유세를 내기 힘들다는 뜻의 ‘보유세 푸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강남, 마용성에도 수억 원씩 호가를 낮춘 급매물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변하고 있습니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