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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 정책기획위원회
“세계적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주변국의 불행에 따른 반사이익이나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포용적 사회안전망과 기술혁신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판 뉴딜의 기본 방향은 전적으로 타당합니다.”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7월 14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대해 “기존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정책 방향의 연장선 위에서 현장에서 필요성을 파악해 더 구체화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최근 코로나19와 싸우는 과정에서 세계가 주목한 한국 디지털 인프라의 위력은 그동안 꾸준한 투자와 시스템 개혁의 결과라며 “이번 디지털 뉴딜도 훗날 세계시장에서 우리 경제의 경쟁 우위를 확고히 하고 사회를 더 효율화한 정책이었다고 평가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린 뉴딜에 대해서도 “에너지 전환이 다소 소극적 적응단계의 관점이라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서로 다른 정책들을 쏟아내면 오히려 성과를 내기 전에 지그재그로 가는 모양이 되어 현장에 혼선을 가져오는데, 그런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국판 뉴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가균형발전을 향한 획기적이고 과감한 대책이 모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한국판 뉴딜은 공간적으로는 수도권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국가발전의 축을 이동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며 “(한국판 뉴딜은) 단기적으로 지역경제 회복의 발판이 되고, 중장기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한 차원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패러다임 전환 선도”
-한국판 뉴딜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까요?
=이번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우리의 디지털 역량이 방역 역량과 더불어 큰 역할을 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방향을 전 세계가 공감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측면은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의 경제적 영향을 살펴보니 4~6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분야의 수출은 40~60% 감소한 반면, 친환경차의 수출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이 분야의 변화는 고용시장에도 반영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용시장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사회 모든 데이터 주석 작업에만 상당히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한국판 뉴딜 사업이 값싼 일자리만 양산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하죠. 그런데 노동시장 현장에서 노동 공급의 스펙트럼을 고려할 때 높은 수준의 노동만 고집하면 오히려 노동시장에 부조화를 야기할 수 있지요. 전문적이고 숙련도 높은 일자리와 함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자리도 창출돼야 합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그린 뉴딜로 개념을 확장한 것에 걸맞게 좀 더 넓은 시야도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문명사적으로 기술 문명의 극단적 발전과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경제체제가 전반적으로 생명을 수단화해서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관점과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탄소 중립의 관점을 제시하긴 했는데 실제 대책은 유럽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고, 나아가 모든 생명체의 먹이사슬에 파고든 플라스틱 문명, 인명 살상으로 진화하는 현대 군사무기 등 생태적 위험과 고도 기술의 위험에 대한 시각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산업 분야에서 추격성장 단계를 벗어나 선도적 위치로 가면서 동시에 문명사적으로도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것입니다.
-한국판 뉴딜의 최종 지향점이 민생이라는 점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문재인정부의 발전 모델과 연결할 수 있을까요?
=전 국민 고용보험 지원 대상과 산업재해보상보험 지원 직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 등의 확대, 상병수당 시범 도입, 디지털 그린 인재 양성과 미래적응형 직업훈련 체계로 개편 등에서 그런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포용적 혁신을 위해서는 혁신의 주체와 과정, 결과에서 확대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계획의 추진체계를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볼 때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포함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민경제의 향후 지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번과 같은 대형 사업을 둘러싸고 폭넓은 창업과 신규 일자리가 확대되는 범국민적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이런 점들이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노동자 재교육 등 소극적 노동시장 개입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 재분배 측면의 보완에서 더 나아가, 노동권과 소득분배구조 개편이라는 적극적 측면이 조금 더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부도 이번 뉴딜 정책의 모델인 미국 뉴딜 정책이 경기회복뿐 아니라 자유방임주의의 종언, 독점자본주의 모순 시정, 미국 복지제도의 토대 형성 등 철학·이념·제도의 대전환에 기여했다고 발표 자료에 적시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 중견 이상 기업에 미배당 이익세 신설, 고소득자 누진세율 인상 등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단기 성과 집착보다 긴 호흡 필요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5년 동안 100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눈먼 돈’이 되지 않고 사회시스템의 대전환에 기여하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까요?
=부분적으로 일반 예산에 포함돼야 할 것을 끼워넣은 듯한 세부 과제들도 보입니다. 디지털, 그린이라는 정해진 틀 아래 정부 부처별로 모은 흔적이라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틀을 좀 더 크게 잡고 더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배치하면 훨씬 큰 파급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혁신은 물적 투자만으로는 되지 않고 시스템의 개혁, 제도 개혁, 그래서 일과 삶의 방식, 문화의 전환이 이뤄져야 비로소 자기 재생산 구조를 가질 수 있는데, (일부 계획 자체에 제도 개혁을 위한 항목들도 있기는 합니다만) 주로 물적 투자를 앞세워서 그런 변화까지 촉발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계획을 살펴보면 디지털과 그린 분야의 집중적 투자를 통해 산업구조 혁신과 일자리 창출에 획기적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가 절절합니다. 현재와 같은 경제적 난국에 국민에게 빨리 성과를 돌려드려야 한다는 절실함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바이오 분야처럼 이번 계획에 빠진 분야는 그런 조급함으로 절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일자리 창출은 당장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산업적 성과에 관해서는 단기 성과주의에만 몰입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강력한 효과를 갖는 분야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종합계획에서 제안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한국판 뉴딜이 부동산 대책과 국가균형발전을 향한 획기적이고 과감한 대책과 함께 모색되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 사회문제, 경제문제의 복합적 성격에 맞춰 대응도 복합적·융합적으로 하고, 정책과 시장 흐름도 적절히 융합해서 유도해야 하는데, 특정 지역에서 토지 및 주택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 가수요가 집중되면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동산 정책이 국토교통부만의 업무가 되고 부동산 시장 내부에서 수요 공급을 주로 논하고 있는데, 이자율이 0% 가깝게 낮은 상황에서 미국처럼 시중의 유동성 흐름을 기술혁신 쪽으로 전환하는 혁신금융 분야의 대책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 지방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서울의 일부 지역에 가수요가 붙어서 투기가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원천적으로 없앨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반면 코로나19의 원인이면서 확산에 치명적 요인이 인구 과밀임을 확인했습니다.
문재인정부 들어와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관해 예비타당성 면제사업 지정 지원 외에 과거의 문제의식이 계승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들을 합니다. 오히려 많은 공공기관이 수도권에 신설되었고, 소재·부품·장비산업 강화도 주로 수도권에 집중됐습니다. 국회와 청와대 기능의 일부 이전도 아직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사회 기반시설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등과 같이 수도권에 더욱 강화됐습니다.
디지털과 그린 분야의 뉴딜을 향해 중앙정부 부처별로 세부 과제를 모은 것이 역력한데, 비수도권 지역까지 범위를 확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시행 과정에서 대상을 지역으로 확대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계획이 중앙부처의 관점에서 수집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판 뉴딜이 목표로 하는 획기적이고 과감한 도약은 이런 흐름의 전환과 맞물릴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연속성 위해 국민의 신뢰 받도록 노력해야”
-한국판 뉴딜이 2025년까지 연속성 있게 추진되기 위해 어떤 부분을 신경 써야 할까요?
=판을 바꾸겠다는 계획이니 당연히 5년 정도의 사업 기간을 둘 수밖에 없고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협치(거버넌스) 구조에 여당이 중요하게 참여한 것 같습니다.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하겠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가능케 하자면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어느 정당이 더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지에 관해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무엇입니까?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혁신의 개념에 관해 제품혁신과 공정혁신을 포함해서 다섯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시장혁신도 혁신의 중요한 영역이라 했습니다. 코로나19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고 상당 기간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2020년과 2021년 사이에 세계 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아사자, 중소기업 및 자영업의 도산, 나아가 대기업까지 도산이 이어지고 이는 곧 시장이 재편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직후 진행했던 마셜 플랜이나 최근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할 만큼 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국가 혹은 기업 차원에서 시장 재편에 대비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나아가서는 인간의 생존, 지구촌의 새로운 질서 형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맞게 코로나19 이후 사회, 경제, 정치, 과학기술 등 제반 분야에 관해 나름대로 이 시대 세계사회에 필요한 철학을 고민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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