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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회장이 1월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50회 다보스포럼 개최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월 21일 열린 개막식에는 한국 정부 국무위원 가운데 처음으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참석했다.│연합
다보스포럼이 바라본 한국 경제
혁신적 포용국가로 나아가는 한국이 세계 최대 포럼의 주요 무대에 등장했다. 1월 21일부터 24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 총회에서는 상생과 포용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여러 사례가 소개됐다. 이에 대한 포럼 참가자들의 반응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렇게 전달했다. “그동안 다보스포럼은 한국이라고 하면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에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에는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가로서 디지털 경제로 전환을 위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정책에 주목하는 한국을 조명하고, 그 경험을 세계 각국이 공유하려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1~2월에 연차 총회가 열리는 다보스포럼은 세계 각국의 저명한 기업인과 학계 전문가, 주요국 정상과 정부 대표, 국제기구와 비영리단체 대표 등이 모여 세계경제의 현안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국제 민간 회의다. 50회를 맞는 2020년 포럼의 주제는 ‘통합적이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 for a Cohesive and Sustainable World)’이다.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은 공식 세션 가운데 하나인 ‘선진제조 및 생산(Advanced Manufacturing and Production, AMP) 분과’ 이사로 위촉돼 이번 포럼에 참석했다. 다보스포럼 공식 세션의 이사 자격으로 한국 정부의 국무위원이 참여한 것은 박 장관이 처음이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모델 소개
AMP 이사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각 산업과 정부가 직면한 주요 도전’이라는 화두를 놓고 다양한 발표와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박영선 장관이 소개한 한국의 ‘자상한 기업’ 제도가 세계 각국의 참석자들에게 큰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자상한 기업은 ‘자발적 상생협력 기업’의 줄임말이다. 대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기반 시설(인프라), 상생 프로그램, 경영 노하우 등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까지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중기벤처부가 2019년 5월 도입한 정책 캠페인이다. 네이버를 시작으로 포스코, 신한금융그룹,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소프트뱅크벤처스, 삼성전자, KEB하나은행, 한국철도시설공단, 현대·기아자동차 등 지금까지 모두 10곳이 자상한 기업으로 선정됐다. 중기벤처부는 올해 자상한 기업 12곳 이상을 추가로 선정하는 한편, 동반성장지수 평가 가점 부여 등으로 참가 기업에 대한 성과급(인센티브)도 확대할 방침이다.
박 장관은 다보스포럼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의 구체적인 활동을 소개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새로운 분업적 상생 모델을 구축하면 그 자체로 포용의 가치를 실현하고 확산하는 것이다. 또 미래 신산업의 투자 기반을 넓히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기벤처부 추산에 따르면 포스코와 신한금융그룹,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등이 지금까지 조성한 5조 4000여억 원 규모의 벤처펀드는 신산업 분야 창업과 벤처기업에 투자함으로써 2만 2000여 개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자상한 기업의 이런 성과를 발표한 AMP 이사회에서는 ‘한국 배우기’가 자연스럽게 결론으로 도출됐다. 이사회 공동의장을 맡은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자상한 기업을 전 세계에 적극 홍보해 많은 나라가 한국의 우수한 정책 사례를 배우고, 자국의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도 이번 다보스포럼에서 눈길을 끌었다. 박 장관은 포럼 첫날 4차 산업혁명의 영향을 논의하는 ‘프런티어 2030 회의’에 참석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은 전통 산업의 퇴조로 어려움을 겪는 각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빈곤화와 기후변화 등 지구촌의 고질적 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열어줄 수도 있다”며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청년 스타트업 ‘요크(YOLK)’가 아프리카에서 펼치는 활동을 소개했다.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술 개발업체인 요크는 2018년부터 아프리카 빈곤 지역의 초등학교에 태양광 충전시스템을 보급하는 ‘솔라 카우 프로젝트(Solar Cow Project)’를 전개하고 있다. 젖소 모양의 태양광에너지 발전 및 충전설비를 학교에 설치하고, 아이들에게는 우유병처럼 생긴 배터리를 나눠주어 수업 중 충전한 뒤 집에서 쓸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 빈곤층의 전력난 해소뿐 아니라 학교 출석률 제고, 아동노동 줄이기 등 여러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내고 있다. 요크의 솔라 카우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19년 최고의 발명품 100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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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1% 넘게 급등 마감한 1월 22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연합
기업의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 공동개발 제안
한국 기업인 중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0년 다보스포럼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최태원 회장은 포럼 주최 측이 ‘아시아 시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제로 구성한 특별 세션의 초청 토론자(패널)로 참석해 SK가 그동안 추진한 사회적 가치 추구 활동을 소개했다. 최 회장은 “기업 경영의 목표와 시스템을 주주뿐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전 이해관계자로 넓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며 “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측정하듯 앞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성과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려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 먼저 ‘객관적이고 신뢰성 있는 측정 기법’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 주장의 핵심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 측정 기법을 개발하자는 제안을 다보스포럼에 던진 것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SK가 자체 개발한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을 홍보하는 기회도 얻었다. SK그룹은 2014년부터 계열사로 운영하거나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했고, 2018년부터는 이를 전 계열사로 확대해 적용하고 있다. SK의 사회적 가치 측정은 사회성과인센티브(SPC) 제도로 이어졌다. 인센티브를 많이 받은 기업일수록 사회적 가치의 증가 속도가 매출액 증가 속도보다 약 20% 빠르다는 실증 결과도 나왔다. 이에 따라 SK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DBL)’ 제도를 도입해 경영 모델의 본질적 변화를 모색 중이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 측정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려면 더 많은 기업과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 가치 창출과 측정에 동참해 많은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 측정의 고도화를 위한 첨단 기술의 활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하면 고객 개개인이 중시하는 사회문제를 더욱 세밀히 파악하고 개인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더 많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며 “투자자에게도 투자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더욱 정교하게 측정하고 평가해주면 사회적 투자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이 참석한 세션에는 불평등 연구의 대가이면서 노벨경제학상(2001년)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아시아 지역 금융 전문가인 로라 차 홍콩증권거래소 회장, 환경문제 개선에 앞장서는 고쿠부 후미야 일본 마루베니 회장이 함께 패널로 참여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주주이익 극대화 추구에서 벗어나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말뿐인데, SK그룹의 접근법은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신들이 수행하겠다고 한 활동을 실제 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잠재성장률 제고 위한 재정투자 확대 필요
한편 세계경제에 대한 다보스포럼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포럼 개막에 맞춰 다보스 현지에서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수정보고를 통해 2020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3.3%, 2021년은 3.4%로 제시했다. 이는 IMF가 2019년 10월에 발표한 전망치보다 올해는 0.1%포인트, 내년은 0.2%포인트씩 낮춘 수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을 신흥국에서 찾는데 아직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이고 있고 선진국의 경제도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경제의 경기 회복세는 여전히 부진하다”고 진단했다.
게오르기예바 총재는 “미중 무역분쟁의 잠정적 완화 등에 힘입어 세계 교역과 산업 생산은 바닥권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록적인 수준의 불평등과 불균형, 빠른 기술발전의 충격 등으로 장기적인 흐름에서는 우려스러운 요소가 많다”며 세계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국가 간 정책 공조와 함께, 개별 국가 단위에서는 더욱 공격적인 재정정책을 동원해 과감한 구조개혁과 소비 진작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IMF의 경제 전망 수정을 국가별로 보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2%로 바뀌지 않았다. 이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에 인구수 5000만 명 이상을 충족하는 ‘30-50클럽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9년에는 미국이 2.3% 성장(예상치)으로 가장 높았으나 올해는 2.0%로 낮아져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으로 전망됐다. IMF는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을 균형 있게 조합한 모범적 사례로 한국을 꼽고 있다. 다만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 통화정책의 추가적 완화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거시경제의 정책적 제약 요인으로 지적됐다. 기타 고피나트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저금리 기조에서도 생산성 증가세가 미약한 국가에서는 단기적 경기 부양보다 인적 자원과 친환경 인프라 등에 대한 재정투자의 확대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속적인 구조개혁과 경제적 포용성 강화, 그리고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를 전 세계적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