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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예산 어디에 집중됐나
정부의 2020년 예산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거쳐 512조 3000억 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초 정부안(513조 5000억 원)보다 1조 2000억 원 줄었지만 2019년 본예산보다 42조 7000억 원(약 9%) 늘었다. 산업·중소·에너지(26.4%), 환경(22%), 사회간접자본(SOC·17.6%) 관련 예산이 크게 늘었다.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전년보다 12% 증가했다. 특히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사상 처음으로 24조 원대에 진입했다.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련 분야 예산이 크게 늘었고, 인공지능(AI)과 바이오헬스·시스템반도체·미래차 등 혁신성장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투자에도 예산이 집중됐다.
소재·부품·장비 산업 국산 경쟁력 강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힌 소재·부품·장비 산업 관련 예산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지원 예산은 2019년 6699억 원에서 2020년 1조 2780억 원으로 6081억 원(91%) 늘었다.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 예산은 2360억 원에서 6027억 원으로 2배 넘게 증가했고, 전략소재 자립화 기술개발사업 등 신규 예산도 예정대로 확보됐다.
특히 2020년부터 소재·부품·장비 산업 특별회계가 신설돼 소재·부품·기술개발사업 등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21개 사업이 특별회계로 이관되면서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가능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 소재·부품 산업 자립화를 위해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에 3396억 원을 반영했다. 나노·미래소재 원천기술개발사업에 383억 원을 신규 지원하는 등 정보통신기술 부품·장비 국산화 예산을 전년 대비 119% 증액했다.
미래 핵심 성장동력 지원 예산도 확대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이른바 ‘빅3 핵심산업’에 대한 지원과 로봇·수소경제 등 신산업 분야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 예산도 늘어났다. 시스템반도체는 472억 원에서 1096억 원, 바이오헬스는 863억 원에서 1533억 원, 미래차는 1442억 원에서 2227억 원으로 늘어났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467억 원), 바이오산업 핵심기술 개발(882억 원) 등 덩치 큰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따라 예산도 늘어난 것이다.
또 올해 수출 부진을 고려해 무역금융 확충, 수출마케팅 지원 확대 등을 위한 예산도 대폭 늘어났다. 무역금융 분야는 올해 350억 원에서 내년 2960억 원으로 크게 늘었고, 늘어나는 통상 분쟁 대응 예산도 234억 원(2019년 92억 원)을 확보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은 1조 2071억 원으로 늘어났으며, 에너지 안전·복지 관련 예산도 각각 2026억 원과 2563억 원으로 증액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혁신성장과 경제활력 제고를 촉진하기 위해 2020년 예산이 대폭 증액된 만큼 신속한 예산집행이 가능하도록 사업계획 수립 등 집행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인공지능 예산 150% 늘려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AI 분야의 증액도 눈에 띈다. AI 분야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은 16조 3069억 원으로 확정됐다. 2019년 14조 8496억 원보다 1조 4573억 원(9.8%) 증가했다. 과기정통부는 2020년 예산 중 AI 예산을 올해보다 150% 늘린 2500억 원으로 책정했다. 2020년 국가정보화 사업에 쓰일 5조 1000억 원 예산의 4분의 1도 AI 기술 사업에 방에 쓰일 예정이다. 국가정보화 사업의 추진 방향은 지능정보기술 투자 비중을 지속 확대하고, 노후화한 정부의 정보 시스템을 차세대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세계 1등 AI 국가 건설을 위해 2500억 원을 투입한다. AI 중심 산업융합 집적단지 조성에 626억 원을 신규 편성했다. 지능정보산업 인프라 조성에 762억 원, 정보통신방송혁신인재 양성(AI 인재 양성)에 130억 원을 투자한다.
중소벤처기업부도 AI 관련 예산을 대거 확보했다. 중소기업 R&D 예산은 4127억 원 증가한 1조 4871억 원이 반영됐는데, AI, 스마트센서 등 미래 분야 R&D 사업 다수를 신규로 담았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3대 혁신산업 분야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서도 450억 원 규모의 예산이 편성됐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형 AI 반도체 등 선진국도 이제 막 시작한 미래기술에 투자를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세계 최고인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지렛대로 활용해 AI 반도체 경쟁력 세계 1위를 목표로 AI 반도체 핵심 기술 확보에 나선다.
경기 활성화 위해 SOC 예산도 대폭 증액
한국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에 접어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SOC 예산이 크게 늘어난 것도 2020년 예산의 특징으로 꼽힌다. 정부가 적자를 감당하며 경기를 떠받치고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특히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SOC 예산을 대폭 늘린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국회는 여기에 추가로 증액을 했다. SOC 예산은 국회 심의를 거치면서 9000억 원이 더 늘어난 23조 2000억 원으로 17.6% 증액됐다. 정부안의 증액 규모(12.9%)보다 높으며 SOC 예산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의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도담~영천 복선전철 사업(4980억 원)은 480억 원, 안성~구리 고속도로 건설(2500억 7200만 원)은 460억 원, 함양~울산 고속도로(3240억 원)는 450억 원, 새만금~전주 고속도로(1985억 2400만 원)는 200억 원이 늘어났다. 포항~영덕 고속도로에도 200억 원이 추가 배정됐다. 울산외곽순환고속도로에는 애초 1억 원만 배정됐는데, 10억 원이 늘었다. 이천~문경 철도 예산도 297억 원 늘었고, 경북도청 이전 터 매입에는 200억 원이 증액됐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