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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산
“국민 스스로 정책 만들게 많은 이들이 참여하길”
농촌 마을에 있는 빈집 등 유휴시설에 리모델링 비용을지원해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안심주택으로 활용하는 게핵심 내용이다.
□‘농업 분야 외국인 여성 근로자 지원’ 황경산 씨
전국 여성 농민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1989년 12월 18일 창립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은 여성 농민의 정치·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농촌 지역의 여성 농민들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정부에 전달할 방법과 통로가 없다며 여성 농민을 전담하는 부서 설치를 10년 가까이 정부에 요구했다.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에 여성 농민 전담 부서인 농촌여성정책팀이 만들어졌다. 이 부서를 통해 국민참여예산제도의 존재를 알게 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황경산(41) 사무국장은 2020년 2월 ‘농업 분야 외국인 여성 근로자 주거 지원’ 사업을 제안했다.
현재 농촌 지역의 일손이 부족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촌에 들어와 일하고 있고, 그 수는 매년 증가한다.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도 많이 늘어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최근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의 주거지가 안전하지 않다는 소식을 접한 황 씨는 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거주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거주지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농촌 지역 지원이 가능한 단체들이 함께 협의해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농촌 마을에 있는 빈집 등 유휴시설에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안심주택으로 활용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또 지역에 있는 마을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상담 등을 통해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생활과 근로를 지원한다.
시범사업으로 열 곳 지원 2억 원 배정
이렇게 하면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주거 여건이 개선되고 성희롱·성폭력 등 위험 요인이 없어지면서 우수한 노동자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해진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농업·농촌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소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또한 리모델링 등 시설개선사업 관리·수행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빈집을 구조 변경하면 마을 경관이 개선되고 주민들의 불안도 없앨 수 있다.
정부는 이 제안을 채택해 2021년 예산안에 시범사업으로 열 곳을 지원하기 위해 국비 1억 원과 지방비 1억 원 등 모두 2억 원을 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 씨는 “여성 농민과 농촌 지역의 외국인 여성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지만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국민참여예산을 통해 전해지길 바란다”며 “국민참여예산에 직접 제안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이번에 참여하면서 이 제도를 많은 사람이 이용해 정책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나가면 좋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2020년 농촌 지역은 코로나19에 이어 냉해, 수해, 태풍까지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많이 받고 있다. “농민 대부분 고령이라 국민참여예산제도 등을 이용하기 어려워한다. 구상은 있지만 이것을 구체화하기 어려운 사람이 제안 방법이나 절차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황 씨는 농민을 포함해 다양한 방면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책에 소중한 예산이 쓰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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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운
“공무원이 현장 목소리 듣고 고민하는 모습 좋아”
“국민참여예산에 참여하면서 국민의 생각을 정책에반영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공무원들이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좋았다.”
□‘초·중·고 발명교육센터 현대화’ 최병운 씨
경기도 포천시 운담초등학교 최병운(53) 교장은 교직 생활 30여 년 동안 발명과 창의성 관련 교육 활동으로 발명교육대상, 발명의 날 근정포장, 올해의 스승상, 올해의 과학교사상, 신지식인 등으로 선정됐다. 지금도 경기발명인재육성협의회 회장, 메이커미래교육연구회 회장 등을 겸임하고 있다.
발명교육은 4차 산업사회에서 요구되는 창의·융합형 인재 육성의 핵심적 교육방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발명교육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시·군·구마다 1~2개씩 설치된 발명교육센터를 중심으로 초·중·고 학생에게 발명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발명교육센터에는 목공 및 금속 기계 등이 구비되어 지역 학생들의 발명 창작활동과 미래 기업인 육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센터의 시설은 사회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시설의 노후화 및 열악한 환경과 프로그램 운영비 부족으로 학생들의 발명교육 참여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효율적 운영에도 한계가 있다. 반면 학생들의 다양한 상상을 구체화하는 메이커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메이커 스페이스나 거점 센터 등을 막대한 예산을 들여 특정 지역에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최병운 씨는 수십억 원으로 메이커 스페이스(전문 장비를 갖춰놓은 공동 작업 공간) 한 곳을 조성하는 것보다 접근성이 좋고 기초 기반시설이 구비된 발명교육센터 206곳을 지원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2020년 초 뉴스를 통해 국민참여예산제도를 알게 돼 ‘발명교육센터의 현대화를 위한 사업’을 제안했다. 10년 이상 지나 시설이 오래되었거나 환경이 열악한 발명교육센터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시설을 보수하고, 실습 기계류를 수리·교체하자는 것이다.
발명교육센터 열 곳 선정 현대화 지원
공작 중심의 전통적 발명교육에서 4차 산업사회의 발명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신 기자재와 교구재를 구비하고, 최신 교육 추세를 반영한 발명교육 콘텐츠 개발을 지원한다. 또 마을교육센터로서 위상을 재조명해 지역 주민이 시설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마을 강사를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정부는 최 씨의 제안을 채택해 2021년 노후 정도가 심한 발명교육센터 열 곳을 선정해 국비 약 9700만 원씩을 들여 센터 리모델링 공사, 최신 교육 장비·기자재 구매, 디지털 학습장비 도입 등 시설 현대화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최 씨는 “사회의 변화에서 점차 멀어져 갔던 발명교육센터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며 “국민의 삶과 생각들이 국가 정책에 실제적으로 반영되고, 이의 실행을 위해 예산이 집행된다는 것에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존재감이 들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예산에 참여하면서 “국민의 생각을 정책에 반영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고, 공무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이 좋았다”는 그는 “국민 제안을 구체화하도록 도움을 준 공무원이나 기관에 표창 등 다양한 보상을 해줘 국민의 의견을 지속적·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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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미
“이렇게 뿌듯한데 국민참여예산제 잘 모르는 듯”
정원 가꾸기 교육을 받은 사회복지시설 거주자들이시민정원사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을 하게 되면취약계층의 직업 재활과 정서적 관리도 병행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 가드닝 프로그램’ 전윤미 씨
부산의 한 사이버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가르치는 전윤미(36) 씨는 다양한 기관의 심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상담하고 있다. 취약계층과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됐고, 외국에서 전문가와 취약계층이 함께 정원 가꾸기(가드닝) 하는 것을 보면서 의미 있고 좋은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아동복지시설, 장애인시설,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에서도 시민정원사와 산림복지전문가가 정원 가꾸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사회복지시설에 조성된 나눔 숲을 활용해 사회복지시설 거주·이용자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텃밭 및 나눔 숲 관리 프로그램, 실내·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나눔 숲 돌봄 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사회복지시설의 종사자와 수혜자들이 정원 가꾸기 활동을 통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전 씨는 2020년 2월 국민참여예산에 ‘사회적 약자 가드닝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전국에 6만 개가 넘는 다양한 취약계층 시설에는 실내·외에 크든 작든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들 정원은 대체로 시민정원사가 방문해 전문적으로 관리하거나 조성 이후 관리가 잘 안되는 곳도 있다. 전 씨의 제안은 시민정원사가 단순히 방문만으로 정원 관리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설 안에 거주하는 이들과 함께 정원 가꾸기 활동을 진행하자는 것이다. 전문가에게 정원 가꾸기 교육을 받은 사회복지시설 거주자들이 시민정원사 자격증을 취득해 활동을 하게 되면 취약계층의 직업 재활과 정서적 관리도 병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 씨는 이 같은 제안을 한 뒤 ‘과연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질까?’ ‘더 좋고, 필요한 제안이 많기 때문에 채택되기 힘들 것’이라 생각해 잊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제안이 채택돼 2021년 예산에 12억 원이 반영됐다는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
정원·수목원 11곳 선정 사회적 약자 치유
정부는 전국의 정원·수목원 11곳을 권역별로 선정해 발달장애인, 홀몸 노인,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정원 치유 서비스 등 정원 가꾸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우수 인력은 정원 관리인으로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이 잘 진행돼 취약계층과 시민정원사에게 정신적으로나 일자리로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그는 국민참여예산제도에 참여하면서 “한 시민이 또 다른 시민을 위해 무언가를 제안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갖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국민참여예산제도를 모르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자신도 우연히 홍보 글을 보고 이 제도를 알게 됐다는 전 씨는 “시민의 투표로 결정하고 실현되는, 즉 온전히 시민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이 참신함으로 다가왔다”며 “더 많은 국민이 국민참여예산제도를 알게 되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받을 수 있고, 그 가운데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꼭 필요한 정책과 사업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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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발
“정책수요자 국민–제공자 정부 가치 공유 가능”
“예산의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공급하는담당 공무원뿐 아니라 예산이 소요되는 사회 각 분야의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의 지혜도 모아야 한다.”
□‘매장문화재 정보 고도화’ 박순발 씨
문화재 가운데 가장 많은 게 토지나 물속에 매장되거나 분포한 매장문화재다. 새로운 매장문화재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는 건 대부분 주택이나 공장 등의 개발행위를 통해서였다.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개발행위자의 지표조사가 매장문화재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최초 단계이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 보호와 조사에 관한 법률’은 토지개발에 따른 현상 변경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매장문화재를 발굴하게 하되, 조사에 드는 비용은 모두 개발행위 원인자 부담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매장문화재의 존재가 각종 개발행위의 발목을 잡고 그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 비용까지 부담하게 되면서 기피 대상이 되어왔다.
학계는 문화재 보호에서 매우 중요한 초동 단계인 지표조사를 사업 시행자에게 위임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조사 비용을 전액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존에 실시된 지표조사에 의한 매장문화재 분포 현황은 정밀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개발 수요가 많은 대도시 주변의 저평지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는 박순발(62) 씨는 국민에게 정확한 매장문화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각종 토지 개발계획 수립에 효율적으로 참고하도록 미비한 부분의 정밀조사와 함께 소중한 매장문화재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매장문화재 정보 고도화’ 사업을 2020년 3월 국민참여예산에 제안했다. 국가가 전 국토에 대해 정밀 지표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매장문화재가 있는 지역에 대한 정보를 토지이용계획확인원에 올려 토지를 개발하려는 국민이 문화재 관련 정보를 편리하게 알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490억 원 투자 전 국토 정밀지표 조사
국가가 선제적으로 지표조사를 하고 문화재 관련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이 지표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매장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인지해 개발계획을 수립함으로써 토지 이용에 대한 국민의 부담과 불편을 덜 수 있다. 또한 1996~2006년에 제작된 이후 새 정보로 바꾸지 않아 위치와 범위가 정확하지 않은 ‘문화유적분포지도’를 전면 갱신해 문화재 보존·관리·활용에 최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정부는 박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2025년까지 5년 동안 모두 490억 원(잠정)을 투자해 전 국토를 정밀지표 조사하기로 결정하고, 2021년 예산에 국비 35억 원과 지방비 15억 원 등 50억 원을 우선 반영했다.
자신의 제안이 채택됐다는 소식을 들은 박 씨는 “매장문화재 조사와 보호 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받아들여진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참여예산제도에 대해서는 “예산의 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공급하는 담당 공무원뿐 아니라 예산이 소요되는 사회 각 분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의 지혜도 모아야 한다”며 국민의 뜻을 예산에 잘 반영한다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책 수요자로서 국민과 제공자로서 정부가 가치와 지향을 공유하는 형태로 이어지길 희망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