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2020년 맞닥뜨린 최대 국난이다. 2021년에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야 할 상황이다. 2021년은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선도국가 도약을 위한 국가발전 전략인 한국판 뉴딜이 본격화하는 원년이기도 하다. 아울러 2021년부터는 그동안 추진해온 여러 국정과제의 성과를 가시화해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2021년에도 곳간을 활짝 열기로 한 이유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통해 확정하고, 9월 3일 국회에 제출한 ‘2021년 정부 예산안’은 총지출 규모를 2020년보다 8.5% 늘어난 555조 8000억 원으로 짰다. 2020년 세 차례에 걸쳐 실시한 추가경정예산까지 고려하면 2021년 정부 지출 예산은 1.6% 늘어나는 수준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경제 회복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를 담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확장적 기조로 2021년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판 뉴딜 10대 대표과제 선정 집중투자
정부는 2021년 예산안의 특징을 한마디로 적극적인 재정 역할로 ‘코로나19 극복, 선도국가’ 구현을 위한 예산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판 뉴딜의 본격 추진을 뒷받침하면서, 중점을 둔 예산 편성 방향을 네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빠르고 강한 경제 회복, 둘째 미래 성장동력 확보, 셋째 포용적 고용·사회안전망 공고화, 넷째 국민 안전과 삶의 질 제고다.
2021년 예산안에서 가장 새로운 프로젝트는 한국판 뉴딜 관련 투자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서도 경제·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고 집행 여건이 확보된 10대 대표과제를 선정해 2021년에 모두 21조 3000억 원의 국비를 투입한다. 국비 투자에 연계(매칭)되는 지방비와 민간자본까지 합치면 2021년 총투자 규모가 32조 5000억 원이며, 이를 통해 36만 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한국판 뉴딜의 촉진을 위한 민간 재원 마련을 위해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등 관련 산업 분야의 투자펀드 조성도 추진한다.
‘D.N.A.’ 생태계 강화 5조 원 이상 투입
한국판 뉴딜의 첫 번째 축인 ‘디지털 뉴딜’에 대한 2021년 투자 예산으로는 7조 9000억 원이 잡혔다. 먼저 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AI)을 뜻하는 ‘D.N.A.’ 생태계 강화에 5조 4000억 원을 투입한다. 데이터 수집·가공·활용을 위한 ‘데이터 댐’의 일환으로 자율주행 영상데이터 등 150가지 AI 학습용 데이터를 구축하고, 의료와 교통정보 등 민간 수요가 많은 공공데이터 4만 4000개를 개방한다.
중소기업과 벤처·스타트업 200곳을 대상으로 대량 자료(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할 수 있는 이용권(바우처)을 지원하고,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전시 콘텐츠 등을 제공하는 국공립 스마트 박물관·미술관을 전국 113곳에 구축한다. 또 전국 초·중·고교 519곳의 노후 건물에 태양광에너지 설비와 친환경 단열재 설치, 전자칠판과 빔프로젝터 보급 등을 통해 에너지 절감형 및 온·오프라인 융합형 교육환경으로 전환한다.
토종 AI 의사인 ‘닥터 앤서’ 강화를 비롯해 AI 정밀검진 기반을 마련하는 등 교육·보건의료와 같은 비대면 산업 육성에 5000억 원을 투자한다. 전국 국도의 50%에 지능형교통체계(ITS)를 구축하고, 하천 수위를 자동 측정하고 수문을 원격 제어하는 시스템을 국가 하천 57% 구간에 설치하는 등 도로·철도·하천·공항 등 핵심 기반시설 디지털화에 1조 9000억 원을 투입한다.
그린 뉴딜, 전기·수소차 11.6만 대 보급
경제 기반을 저탄소·친환경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인 ‘그린 뉴딜’에는 정부 예산으로 8조 원을 투자한다. 그린 뉴딜에서도 가장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분야는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으로, 2021년에만 모두 4조 3000억 원이 들어간다. 경유차 등 노후 차량 33만 2000대의 조기 폐차 및 3만 2000대의 친환경 전환을 지원하고,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 보급 대수를 11만 6000대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100% 충전에 20분이 걸리는 초고속 급속충전기를 도입하고, 수소의 생산부터 활용까지 전 주기의 원천기술 개발과 체험 기회 확산을 선도할 수소도시 세 곳을 조성한다. 노후 공공건축물 1085동과 공공임대주택 8만 2000호를 대상으로 주거환경 개선과 단열재 교체 등 에너지 효율화를 추진하고, 학교 주변 통학로의 전선·통신선을 공동 지중화하는 등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 전환에 2조 4000억 원을 투입한다.
국가산업단지 일곱 곳은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적용해 저탄소·친환경의 ‘스마트 그린 산업단지’로 전환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대한 보조·보증·융자 예산으로 1조 원 규모가 편성됐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의 바탕인 안전망(휴먼 뉴딜) 강화에 대한 2021년 예산은 5조 4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먼저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신설,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등에 모두 4조 7000억 원이 들어간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관련 인재 양성, 미래적응형 직업훈련 체계 개편, 농어촌 지역과 취약계층의 디지털 접근성 강화 등 사람투자에 7000억 원이 투입된다.
일자리 관련 예산 30조 원 이상 편성
2021년 예산안에서 증가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일자리 예산이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으로 일자리가 소멸하는 것을 최대한 막고,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회를 최대한 넓혀보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정부는 2021년 일자리 관련 예산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30조 6039억 원을 편성해 2020년 25조 4998억 원보다 20%나 늘렸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직접 일자리 103만 개를 제공하고, 대상별 맞춤형 지원으로 민간 일자리 약 57만 개 창출을 유도한다는 게 정부 목표다.
또 2020년 351억 원에 그쳤던 고용유지지원금 예산은 1조 1914억 원으로 대폭 늘려 약 45만 명의 일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2021년에 노인, 장애인 등 취업 취약계층에게는 3조 1164억 원을 투입해 직접 일자리 103만 개를 제공한다. 이는 2020년 2조 8587조 원보다 2577억 원 늘어난 규모다.
정부의 직접 일자리 제공 대상은 주로 60세 이상 고령층이다. 특히 단순시간제 일자리가 아닌 월 60시간 이상 양질의 사회서비스형 일자리 8000개를 추가하는 등 노인 일자리 80만 개 확충에 1조 3152억 원을 편성했다. 이 밖에 자활근로 5만 8000개, 노인 돌봄서비스 3만 3000개, 장애인 일자리 2만 5000개 등도 직접 일자리에 포함된다.
청년층 전 단계 걸쳐 맞춤형 지원 마련
청년층에게는 구직부터 취업·창업까지 전 단계에 걸쳐 맞춤형 패키지 지원체계를 가동하기 위해 2020년보다 약 30%(9000억 원) 늘어난 3조 9000억 원을 투입한다. 연간 1인당 900만 원을 제공하는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지원 대상을 9만 명 추가하고, 청년디지털일자리 지원 대상도 5만 명으로 확대한다. 청년 디지털 일자리 지원사업은, 중소·중견기업이 정보기술(IT) 관련 직무에 청년을 채용하면 정부가 6개월 동안 월 최대 19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청년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창업지원 업체 400곳을 육성하고, 전통문화 분야의 창업 지원도 100개 팀으로 늘린다. 청년창업사관학교를 통한 창업 전 단계 지원 예산도 따로 약 1000억 원 규모로 확보했다.
2021년은 전 국민 고용안전망의 기반 구축이 시작되는 해다. 고용보험법 개정에 따라 2021년부터 예술인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46만 5000명의 고용보험 가입이 추진된다. 정부는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 고용보험료의 80%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 예산으로 691억 원을 편성했다.
또 현재 9개인 산재보험 지원 대상 특고 직종을 방문판매원, 방문강사, 가전제품 설치기사 등 5개를 추가해 14개 직종으로 확대한다. 실직자에게 최장 9개월 동안 평균임금의 60%를 지급하는 구직급여(실업급여) 예산도 2020년보다 19% 늘어난 11조 3486억 원을 편성했다.
내수 회복과 R&D 투자도 대폭 확대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예산으로는 민간소비 촉진에 초점을 맞춰 약 2조 1000억 원이 마련됐다. 농수산물과 문화·관광 분야의 적극적인 소비 창출을 위해 4대 바우처(농산물 구매 지원, 통합문화 이용권, 스포츠강좌 이용권, 근로자 휴가 지원)와 4대 쿠폰(농수산물, 외식, 숙박, 체육)을 국민 2346만 명에게 제공키로 하고 관련 예산 4906억 원을 책정했다. 약 18조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과 온누리상품권 발행 또는 할인을 뒷받침하기 위해 1조 3000억 원의 재정을 투입한다.
내수경기의 또 다른 한 축인 민간투자는 마중물이 될 정책금융(투자, 보증, 융자)의 공급 확대로 활성화를 추진한다. 모태펀드 출자 확대,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출연 및 출자 확대 등을 통해 2021년에는 2020년보다 18조 원 이상 늘어난 72조 9000억 원의 정책금융이 공급될 예정이다.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는 2020년 24조 2000억 원으로 연간 20조 원대에 진입했는데 2021년에는 27조 2000억 원으로 12% 이상 늘린다. 국내총생산(GDP) 성장세가 주저앉아 세수 여건이 악화했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2021년 R&D 투자 예산의 70% 이상은 소재·부품·장비, 3대 유망산업(시스템반도체, 미래자동차, 바이오헬스), 기초 원천기술 개발, 한국판 뉴딜 산업, 인재 양성 등 5대 분야에 집중된다. 특히 2021년에는 디지털 분야 고등인재 2만 명 양성을 위한 투자 재원을 1000억 원 규모로 신설하고,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실전형 전문인재 6만 3000명 육성을 위한 투자도 2020년 4000억 원에서 2021년에는 5000억 원으로 확대한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도 2020년보다 11.9% 늘린 26조 원을 반영해 2년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간다. 부산~울산 간 복선전철 등 국가기간 도로·철도망을 준공하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와 대구광역철도 등 대도시권 교통혼잡 개선에 9조 2000억 원을 투입한다. 스마트 기술을 접목한 도시환경 개선 프로젝트에 1조 원, 도로·철도, 공항·항만, 수자원, 재난 대응 등 4대 분야 디지털 관리시스템 구축에 2조 4000억 원을 반영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