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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양극화 해소와 고용+ 위원회’ 발족식에 참석한 각계 인사와 위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한겨레
격차와 불평등 해소, 좋은 일자리 창출, 그리고 동반 성장. 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앞으로 집중할 의제다. 경사노위는 11월 11일 양극화 해소 방안을 논의할 의제별 위원회인 ‘양극화 해소와 고용+ 위원회’(양극화 해소위) 발족식과 함께 첫 회의를 열었다. 양극화 해소위는 앞으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주요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대안을 찾고 좋은 일자리 창출에 힘을 모으는 게 발족 취지다.
경사노위는 양극화 해소위의 초대 위원장으로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를 위촉했다. 노동경제학계 원로인 어 교수는 문재인정부 출범 뒤 첫 번째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2018년 4월까지 1년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양극화 해소위에는 어 위원장 외에 노동계 위원 4명, 경영계 위원 4명, 정부 위원 3명, 공익 위원 5명, 간사 위원 1명 등 모두 18명이 참여한다. 정부 위원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국장급 공무원이다.
어수봉 위원장 “시간 걸려도 차근차근 디딤돌 놓듯”
어수봉 위원장은 발족식에서 “양극화 해소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지만 한두 개 정책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디딤돌을 놓는다는 심정으로 대화를 이끌어가겠다”고 말했다. 어 위원장은 위원회가 해야 할 일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양극화에 대한 현실 인식의 공유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각 대화 주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야 교집합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공동 인식의 연장선에서 양극화의 원인을 진단해야 한다. 양극화 원인 진단에는 노·사·정 각 주체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자기 성찰도 포함돼야 한다는 게 어 위원장의 생각이다. 끝으로 세 주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각자의 임무와 과제를 정리하고, 실행 방안(액션 플랜)까지 테이블에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비로소 양극화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양극화는 우리 사회와 경제가 맞닥뜨린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의 핵심 고리다. 기업 간에는 매출과 이익, 개인 간에는 소득과 자산의 격차 심화가 양극화다. 노동시장과 자산시장에서 비롯된 양극화는 이제 ‘격차 사회’를 넘어 ‘장벽 사회’를 우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는 사회는 청년과 미래 세대의 꿈을 앗아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에 내놓은 ‘부서진 사회적 엘리베이터, 사회적 이동성을 촉진하는 방법’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소득 분포 하위 10%에 속하는 가구가 평균소득 가구로 이동하기까지 한국의 경우 5세대가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계산하면, 소득 최하위층이 중간층으로 진입하는 데 평균 150년이 걸릴 만큼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가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OECD는 소득·자산·직업·건강·교육 수준 등 아홉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계층 이동의 변동성을 분석했는데, 한국은 부모와 자녀의 경제적 능력과 지위의 상관관계가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극화의 고착화로 이처럼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허물어지면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고 계층 간 갈등은 더 깊어진다. OECD는 보고서에서 “계층 간 이동성의 약화는 사회·경제 전반의 역동성 저하로 이어져 생산성 제고와 성장 잠재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취약계층의 기회 확대와 역량 강화를 위한 적극적인 노동정책, 소득 악화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강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소득분배 지표 개선 흐름 ‘뚜렷’
OECD 권고는 문재인정부 출범 뒤 추진해온 여러 정책의 기조와 같다.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최저임금 인상 등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기반 강화, 적극적인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다. 이에 따른 성과도 여러 지표에서 확인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9년 3분기 가계동향 조사(소득)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5% 증가한 반면 상위 20%를 뜻하는 5분위 가구의 소득은 0.7% 증가에 그쳤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은 2018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다섯 분기 연속 감소하다 2분기에 0.04%로 조금 늘었고, 3분기에는 증가 폭이 더 커졌다. 공적 이전소득·지출에다 가구원 수를 고려한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는 5분위와 1분위의 소득 격차(5분위 배율)가 5.37배로, 1년 전(5.52배)보다 0.15배 포인트 떨어졌다. 3분기 기준으로 5분위 배율이 하락한 것은 2015년 3분기(-0.27배 포인트)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소득분배 지표의 개선 흐름은 뚜렷하지만 만족할 수준이 결코 아니다. 악화 추세가 조금 완화된 정도일 뿐이다. 올해 3분기 5분위 배율만 해도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5.48배) 이후 역대 최대치였던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또 하위 20% 가구의 소득 증가는 기초연금과 근로장려금(EITC) 등 공적 이전소득이 2018년보다 19.1%나 늘어난 영향이 크다. 일해서 얻은 소득, 즉 근로소득과 사업소득만 합하면 올해 3분기에도 1% 줄었다. 정책 효과를 배제하면 가계소득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시장에서 도도하게 진행되는 양극화의 흐름은 정부 정책만으로 막을 수 없다. 경사노위가 양극화 해소위를 출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은 경제적 이해가 충돌하는 계층 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위가 우선 다뤄야 할 문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다. 업종과 지역, 기업 규모, 고용 형태 등에 따른 ‘다중 격차’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는 게 생산적 논의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는 국제 비교를 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노민선 연구위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500인 이상 대기업의 평균임금을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계산하면 일본보다 54.8% 높은 수준이다. 반면 10인 이상 500인 미만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63~72% 선이며, 전체 임금노동자의 약 40%가 종사하는 10인 미만 영세 사업체의 평균임금은 대기업 평균의 48% 이하에 머물고 있다.
노동시장 전반의 이중구조 해소 방안 찾아야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및 노동조건의 격차 확대는 고용 여건을 악화시키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대기업은 외주화(아웃소싱)를 통한 비용 절감, 기술혁신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임금 지불 능력이 커지더라도 고용을 잘 늘리지 않는다. 반면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에서 납품 단가 문제로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고용 확대나 종업원 처우 개선으로 쉽게 연결할 수 없다. 또 중소 제조업의 60% 이상은 대기업과 과도한 임금 격차로 만성적인 구인난을 겪고 있다. 제한된 내수 시장에서 과당경쟁을 하는 영세 소상공업과 자영업은 최저임금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임금 지불 능력이 취약하다. 양극화 해소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는 노동시장 전반의 이중구조를 해소할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 상생 협력을 통한 성과 공유, 중소기업과 영세 소상공인의 교섭 능력 강화, 기업 단위를 벗어나 산업 및 지역별 집단 교섭을 통한 연대 임금의 구현 등이 양극화 해소위의 구체적인 논의 과제다.
하지만 경사노위에서는 양극화 해소위 발족식에서부터 경영계와 노동계 간 양극화의 원인 등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뚜렷했다. 경영계는 산업 경쟁력 강화를, 노동계는 경제 민주화를 강조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가 시작됐지만 주요 의제와 과제 선정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은 모든 국가가 안고 있는 과제로 심도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균형 잡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최근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가운데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오히려 격차를 늘린다”고 진단했다. 손 회장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논의도 정치적인 방향으로 흐르거나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기업 경쟁력을 높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차원으로, 시장경제 시스템과 조화되는 방향으로 양극화 해법이 추진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와 일자리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은 불공정에 기인한다고 본다”면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로 경제 민주화가 정착되고, 불공정한 원·하청 관계를 해결해 공정의 가치가 실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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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해소와 고용+ 위원회의 첫 회의 모습│한겨레
노사,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 공유
경영계와 노동계가 이처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공유한다. 양극화 해소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 방향에도 이견이 없다. 문재인정부 출범 뒤 노사정 대표자 회의의 합의로 새롭게 거듭난 경사노위는 출범 때부터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제시했다. 기존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노사 화합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조화를 도모해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
반면 경사노위는 좀 더 광범위한 계층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로 양극화 해소와 포용적 성장, 노동 존중의 사회를 실현하는 것에 핵심 가치를 두고 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양극화 문제를 풀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고 국민 통합을 이뤄내기 어렵다는 현실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주체들은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다”며 “앞으로 논의 과정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만 내세우지 말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한 발씩 양보한다면 우리 사회가 실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해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