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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방송 채널 ‘씨름TV’
씨름 열풍의 진원지는?
“유튜브 알고리즘의 덕을 본 게 아닐까요?” 씨름 전문 개인방송 채널 ‘아싸두잇(ASSA DOIT)’ 운영자 이용호 씨는 씨름 열풍의 진원지로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개인방송을 꼽았다. YTN ‘와삼스톡’을 비롯한 언론보도, 인기 씨름 영상에 달린 댓글들은 이 씨의 진단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한다. 와삼스톡은 2019년 10월 11일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씨름 경기장 리뷰 영상을 올리며 ‘요즘 유튜브 찢어놓은 씨름 직관하고 왔습니다’는 제목과 함께 “유튜브 알고리즘 고맙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아놓았다. 씨름 영상 가운데 공전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2018년 제15회 학산배전국장사씨름대회 영상의 “알고리즘이 선물을 줄줄…”이란 댓글도 ‘유튜브 알고리즘(절차, 방법)’이 씨름 열풍의 한 축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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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방송 채널 ‘아싸두잇’
씨름 전문 채널 등장 이후 조회수 빠르게 증가
“씨름인 대부분이 영상을 구독하고 추천을 눌러주니 연관 영상으로 씨름이 많이 노출돼요. 씨름의 화려한 기술과 선수들의 외모가 화제가 되면서 여성 커뮤니티나 누리소통망(SNS)에 공유되고… 학산배 경기 영상의 인기는 누적된 노력의 결과인 셈이죠.” 이 씨가 말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씨름의 부흥에 한몫을 하게 된 과정이다.
아무리 개인방송이 추천한다 해도 씨름 자체가 매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산배 단체전 결승 김원진 선수와 황찬섭 선수의 경기 영상은 2020년 1월 13일 기준으로 조회수 240만 회를 넘겼다. 달린 댓글만 해도 1만 6000개가 넘는다. “이 좋은 걸 할배들만 보고 있었네” “샅바 잡듯이 내 마음도 잡았네” 등 댓글은 씨름의 인기가 우연이 아니라 화려한 기술과 선수들의 수려한 외모, 빠른 경기 속도 등 씨름 특유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물론 과거에도 개인방송에서 만날 수 있는 씨름 영상은 차고 넘쳤다. 씨름이 인기를 잃어도 경기는 두 달에 한 번꼴로 열렸다. 경기 대부분이 스포츠 채널로 중계되고 중계 영상은 다시 편집해 개인방송에 게재된다. 씨름 관련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도 많다. 그러나 주요 경기의 승패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중계는 선수들의 개성(캐릭터)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장 진행자의 진행에 해설자의 설명이 더해지는 중계 방식도 과거의 씨름 중계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큐멘터리 역시 감동을 부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씨름 영상이 인기를 얻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한계는 2019년 씨름인들이 운영하는 씨름 전문 개인방송이 등장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씨름 전문 개인방송은 운영자의 해박한 씨름 지식과 인맥 등을 바탕으로 시청자와 호흡하고 씨름 현장의 수요를 충족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상을 선보였다.
전문 지식과 인맥으로 전문성과 대중성 갖춰
아싸두잇 운영자 이용호 씨는 대학과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영남대학교 씨름단 코치로 일하는 씨름인이다. “씨름을 알리기 위해” 직접 촬영과 편집을 배웠다. 2019년 5월 본격적으로 개인방송을 운영하기 시작해 2020년 1월까지 159편의 영상을 올렸다. 경기 영상은 물론 선수들의 훈련 모습과 인터뷰, 기술 해설,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망라된 영상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영상과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래픽과 자막을 더하고 운영자가 자신을 드러내며 경기 설명도 해준다. 댓글에는 어김없이 답글을 달고 이벤트도 자주 열어 시청자를 초대하기도 한다. 아싸두잇의 누적 조회수는 420만 회가 넘는다. 2019년 9월 열린 영암 추석장사씨름대회 금강장사 결정전 임태혁 선수와 황재원 선수의 경기 영상은 조회수 146만 회를 넘어서기도 했다. 임태혁 선수 인터뷰와 훈련 모습까지 담은 영상이 시청자의 큰 호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씨름TV 운영자인 이학필 씨도 강원도 횡성군 성복초등학교 씨름부를 지도하고 있는 현역 감독이다. 이 감독은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경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촬영과 편집을 배웠다. 이 감독이 개인방송 창작자(크리에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19년 5월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 경기부터였다. 활동 기간이 1년이 채 안 된 씨름TV에 올라온 영상은 362편이나 된다. “대부분의 중계가 주요 경기 중심으로 이뤄져요. 예선전 등은 영상 기록이 남지 않아요.” 이 감독은 예선전을 비롯해 중계가 되지 않는 경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선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씨름 채널에서 보기 어려운 어린이와 일반부 경기 영상을 씨름TV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수 중심으로 편집해 찾아보기 쉽게 하는 것이 목표지만 늘 부족한 시간이 문제다. 촬영도 촬영이지만 편집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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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씨름협회가 만든 홍보 동영상 ‘나는 씨름 선수다’ 동영상 화면 갈무리
화려한 씨름 기술 선보인 영상도 열기 살려
개인방송에서 씨름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대한씨름협회가 만든 홍보 동영상 ‘나는 씨름 선수다’도 조회수를 늘리고 있다. 경량급 선수들이 선보이는 화려한 씨름 기술을 비롯해 선수들의 근육질 몸과 수려한 외모는 ‘씨름이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있다. KBS <씨름의 희열> 제작진도 ‘나는 씨름 선수다’ 홍보 동영상을 본 뒤 프로그램 제작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씨름이 인기를 끌면서 씨름 경기장에 아이돌에게 집중되던 ‘대포 카메라’(렌즈가 크고 길쭉한 고급 카메라)가 모여들고 씨름 관련 영상을 게재하는 개인방송 크리에이터도 늘고 있다. 학산배 경기 영상에 영어 댓글이 늘어나는 등 씨름 영상의 세계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씨름의 세계화는 씨름계의 숙원이기도 하다. 이제 씨름 경기장에서 개인방송 크리에이터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윤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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