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해인 기해년을 보내고 풍요와 재물을 상징하는 쥐의 해 경자년이 밝았다. 십이지의 첫 번째 동물인 쥐. 쥐띠 해는 육십갑자에서 갑자(甲子, 靑), 병자(丙子, 赤), 무자(戊子, 黃), 경자(庚子, 白), 임자(壬子, 黑)의 순으로 다섯 번 순행한다.
이 가운데 2020년은 경자(庚子)년에 해당하며 경자년의 십간(十干) ‘경(庚)’이 흰색을 상징해서 ‘흰 쥐띠 해’라 부른다. 자시(子時)는 오후 11시에서 오전 1시, 자월(子月)로는 11월이며, 자방(子方)은 정북(正北)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시간신(時間神)이자 방위신(方位神)이다. 흰 쥐띠의 해인 ‘경자년’을 맞아 쥐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풍요의 상징이자 미래 예견하는 영물
쥐는 ‘영리하다’ ‘재빠르다’는 일반적인 관념 외에 재앙이나 농사의 풍흉, 뱃길의 사고를 예견해주는 영물로 인식됐다. 재물·다산·풍요기원의 상징으로 구비 전승에도 두루 나타난다. 일부 해안도서 지방에서는 수호신의 하나로 쥐를 섬기기도 한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은 예부터 쥐를 현명함과 예지력의 상징으로, 쥐가 나오는 꿈을 다산과 재물의 상징으로 여겼다. 많은 사람이 쥐의 해를 풍요, 희망, 기회의 해로 인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사 속 다양한 문화적 상징으로 등장
쥐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적 표상으로 나타난다. 신라와 가야 지역에서는 집 모양의 토기가 여러 차례 출토됐다. 그 가운데 가야에서 출토된 집토기에 쥐와 고양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붕 꼭대기에 있는 고양이가 곡식 창고로 올라오는 쥐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신라시대의 능묘, 탑상, 생활용품 등에는 쥐가 새겨져 있다. 진덕여왕 능 주위에 부조된 십이지신들은 엄숙한 의례용 갑옷에 천의(天衣)를 곁들여 입고 있다. 그 가운데 정북 방향을 지키는 쥐는 다른 십이지신의 부조에 비해 단아한 형태의 갑옷과 부드러운 천의를 입고 있다. 조선시대의 그림에는 쥐가 많이 등장한다. 실제 사진과 비슷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부터 쥐가 들에서 수박이나 당근을 갉아 먹는 모습 등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동물인 만큼 쥐는 동화 속에 나와 재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전래동화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하루하루 먹고살던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아내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바느질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그 옆에서 낮잠을 자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의 콧구멍에서 팥알만 한 생쥐 한 마리가 기어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신기하게 여기며 주위에 있는 물건을 하나둘씩 가져왔다. 다리미판, 잣대 등으로 생쥐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주려던 것이다. 그러자 생쥐는 그 길을 지나 불상 안으로 쏙 들어갔다. 잠에선 깬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어디 갔다 오는 거요?” “생쥐 한 마리에게 길을 만들어주고 따라가 보았더니, 불상 안으로 그만 들어가버렸지 뭐예요.” “거기가 어디요? 같이 한번 가봅시다.” 부부는 생쥐가 들어간 불상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불상 안에는 황금 더미가 가득 쌓여 있었다. 생쥐 덕분에 재물을 발견한 부부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쥐불놀이’로 풍년 기원하는 풍속도 있어
정월대보름 전날 밤에는 쥐불놀이를 한다. 쥐불에는 논둑, 밭둑의 잡초를 태우는 ‘쥐불 놓기’와 이웃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서 불 싸움을 하는 ‘쥐불 싸움’이 있다. 이날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쥐불놀이를 하려고 미리 횃불을 만들어뒀다가 달이 떠오르면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놓는다. 그리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즐겁게 돌아다닌다. 이 놀이는 쥐를 없애서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강강술래는 정월대보름날에 여자들이 모여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놀이다. 강강술래 놀이의 한 부분에는 쥔쥐새끼놀이가 있다. ‘쥔 쥐’란 들쥐의 전라도 사투리다. 이 놀이는 들쥐들이 어미를 따라 한 줄로 뒤따르는 모양을 흉내 내며 노는 것이다. 앞사람의 허리를 껴안고 일렬로 늘어선 대열의 맨 앞사람이 맨 끝의 사람을 잡아떼어 내는 놀이다.
먹이사슬의 바탕… 의약 실험동물 공헌도
쥐는 사람에게 유익한 동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병을 옮기고, 곡식이나 음식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쥐가 나쁜 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쥐를 이용한 많은 실험으로 질병을 연구하고, 약을 만들기도 한다. 쥐를 자연계의 일원으로 보면 그 존재 의의는 더 크다. 쥐에게는 천적이겠지만 지구상의 육식동물들은 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오늘 당장 세상의 쥐가 모두 없어진다면 내일부터는 고양이고 족제비, 올빼미, 매고 함께 절멸되고 말 것이다. 이 거대한 먹이사슬을 지탱해주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 바로 쥐다.
글 강민진 기자
참고 자료·<동물민속학자가 들려주는 열두 띠 이야기>(리젬).
국립민속박물관 학술강연회 <쥐의 생태와 관련 민속>(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