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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가 걱정이다.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사회에 나온 중년들은 또 다른 운명에 직면한다.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찾아야 한다. 수명 연장으로 이른바 ‘100세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예전처럼 60세를 전후해서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여생을 소일거리로 보내는 것은 사실상 전설이 됐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전의 세대에 비해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살아왔고,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물러야 한다. 100세까지 산다는 것은 100세까지 살아갈 자금이 있어야 하기에 100세 시대는 재취업이 필수가 되는 시대라는 뜻도 된다. 재취업을 하더라도 대부분 근로조건이 열악해지고, 임금 삭감도 감수해야 한다.
‘신중년’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등장했다. 신중년은 2017년 정부가 발표한 용어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50세를 전후로 퇴직해 재취업 일자리 등에 종사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완전한 은퇴를 준비 중인 과도기 세대를 일컫는 용어이다. 기존의 ‘고령자’ 등을 대신해 ‘활력 있는 생활인’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았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신중년은 부모의 부양비가 높아 가고,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서 경제적 부담이 높아질 때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신중년이 재취업을 통해 노동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은 낮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한 신중년이 좀더 안정된 노후를 보장 받는다.
▶어릴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백영란씨는 대기업 은퇴후 역사책방을 스스로 운영하며 오랜 로망을 실현했다.
역사책방 연 대기업 임원 출신 백영란 씨
인왕산에서 바람이 분다. 그냥 바람이 아니다. 무언가 역사의 내음을 듬뿍 담은 바람이다. 바람은 경복궁 담벼락을 타고 시내 중심가로 파고든다.
담벼락을 스치던 바람은 영추문(迎秋門)에서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 ‘가을을 맞이하는 문’이라는 시적인 의미와는 달리 이 문에는 역사의 어두운 흔적이 제법 서려 있다.
조선조 초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은 이 문을 통해 군대를 몰고 들어와 아버지 태조의 신하들을 제거했다. 그때 죽임을 당한 신하 가운데는 정도전도 포함된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갈 때 이 문을 통과했고, 고종은 일본의 압박이 심해오자 이 문을 거쳐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하며 아관파천의 슬픈 주인공이 됐다.
일제강점기에는 근처를 지나는 전차의 진동을 못 이겨 성벽 일부와 성루가 허물어졌고,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콘크리트로 영추문을 ‘마구’ 복원했다. 또 이 문 안쪽에 30경비단을 주둔시켜 청와대를 경호하게 했다. 이 문은 2018년 비로소 일반에게 공개되는 곡절을 겪었다.
▶역사책방의 상징물이 수레바퀴 서가 앞에서 한 젊은이가 맥주를 마시며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역사 덕후’들의 사랑방으로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백영란(54) 씨가 영추문 가까이에 굳이 책방을 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대문 안에 책방을 열고 싶었다. 그 책방에는 역사책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이름도 ‘영추문 앞 역사책방’으로 지었다. 그냥 ‘역사책방’보다는 앞에 영추문을 붙이니 뭔가 있어 보였다. 진열장 한가운데는 한쪽에 둥근 수레바퀴 모양의 서가를 만들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연상시키길 바랐다.
“매우 무모한 충동이었어요.” 평생 대기업에서 직장인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하고 책방을 연 이유에 대해 백 씨는 ‘충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것도 ‘무모한 충동’이라고 표현했다. 솔직하다. 책방을 연 지 1년이 지나도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그리 표현하는 것일까?
“이제는 무모함을 관리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어요. 책방을 열기로 한 것이 터무니없는 오판의 결과는 아니라고 판단돼요.” 차분하다. ‘무모함을 관리’할 수 있다고 한다.
백 씨는 서울대 국사학과 83학번이다. 석사까지 딴 뒤 미국에 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해서 학생을 가르치기보다 치열한 직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NHN(네이버)을 거쳐 2010년부터 LG유플러스에서 일했다. LG유플러스에선 부장급으로 입사한 지 2년 만에 상무로 승진을 했다. ‘사내 첫 사업 담당 여성 임원’이 되며 ‘유리 천장을 깬 여성 직장인의 롤 모델’로 꼽혔다. 백 씨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여성이었다.
그런 백 씨이기에 책방을 내더라도 대형 인터넷서점이 어울릴 듯하다. 하지만 백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 관련 서적 5000여 권이 있는 ‘재래식 동네 책방’을 열었다. 자신의 퇴직금을 썼다. 문을 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명문대, 대기업 출신의 여성 은퇴자가 문을 연 역사 전문 서점. 역사에 관심 있는 젊은 역사학도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서점을 찾아온다.
백 씨는 서점 한쪽에 카페도 차렸다. 책을 보거나 사러 왔다가 음료수를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마음껏 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든 것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책도 볼 수 있다. 이른바 ‘책맥’이다. 맥주를 주문해 마시면서 책에 빠진다. 낭만이 넘친다. 실내 지붕이 높아서 다락방도 만들었다. 좀 더 편한 자세로 책을 볼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틈나는 대로 문화 활동도 연다. 화제의 책을 쓴 저자를 초대해 북 콘서트도 진행한다.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성지’로 자리 잡았다. 입소문이 크게 나면서 ‘역사 덕후’들의 사랑방이 된 셈이다.
“로망이었어요.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로망’을 은퇴와 동시에 현실화했다고 한다. 로망이었기에 많은 현실적 계산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서점을 직접 열고, 운영하고 싶었다고 한다.
▶역사책방에는 다락방도 있어 편히 책을 볼수 있다.
대화·강연…,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어린 시절, 저의 부모님 세대는 전집류를 구입하셨어요. 그 시대 대부분의 집에는 전집들이 안방과 응접실 벽을 장식했어요. 청소년이 되어선 ‘삼중당 문고’ 같은 작은 문고판 책이 유행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나만의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았어요. 그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현실이 고맙죠.”
백 씨는 지난 1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10시 30분에 문을 열었고, 밤 10시에 문을 닫았다. 몸은 고단했다. 집안일은 남편의 몫이 됐다.
“사실 주부의 역할을 해보지 않았어요. 솔직히 잘하지도 못해요.”
책을 주문하고, 서가에 꽂고, 카페의 음료 주문을 받고, 주문받은 음료를 만들어 손님에게 내주고, 안 팔리는 책을 골라 반환하고, 독자들의 관심사를 찾아 주문하고….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이 사실상 육체노동입니다. 몸뚱이로 하는 것이죠. 하지만 자본투자를 크게 하지 않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어서 위험 부담이 없어요.”
책방을 연 지 13개월이 지난 백 씨는 “불행하지는 않다”고 현재의 삶을 표현한다. “서점을 찾는 수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요. 한 달에 몇 번씩 강연을 듣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받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마침 책방 앞에 나오니 비 온 뒤 맑은 인왕산이 크게 웃는다. “이런 분위기가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요.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데요.”
글·사진 이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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