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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 출범 뒤 에너지 정책의 화두는 ‘전환’이다. 원자력과 화석연료에 의존해온 에너지원을 안전하고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에너지 공급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춰온 에너지 수급 계획을 효율적 수요관리를 병행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소수 기업에 맡겨온 에너지 생산을 국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사업 형태로 전환하고, 새로운 에너지 설비의 입지 선정이나 투자 결정 과정에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환의 방향은 재생에너지의 비중 확대다. 2017년 기준 7.6%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린다는 게 문재인정부가 세운 목표다. 원자력과 석탄화력 발전 비중은 그만큼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재생에너지 가운데서도 수력·폐기물·바이오보다 풍력과 태양광에 투자를 집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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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정책 전환은 생명과 안전, 깨끗한 환경을 중시하는 국민 목소리에 따르는 것이다. 동시에 국제적 의무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에 따라 2020년부터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이행 기준 등이 더욱 강화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이래저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과제다. 지난 2년 동안 정부가 이런 과제를 어떻게 이행해왔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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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정부가 고시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15년 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 목표는 11.3%였다. 문재인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12월, 정부가 확정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2030년 20%로 바뀌었다. 11.3%에서 20%로의 상향 조정은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중장기 전력수급의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수립했다. 반면에 8차 계획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로의 전환’이 핵심 목표다.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전력수급 정책은 경제성 있는 전력설비를 구축해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을 기조로 삼아왔다. 제조업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고려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성이나 안정성보다 안전과 친환경을 더 중시하는 쪽으로 정책 기조가 바뀌었다. 국민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의무에 따른 정책 전환이기도 하다.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은 2020년부터 세계 각국에 본격 적용된다.
석탄 발전은 9.3%p, 원자력은 6.4%p 감소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설비 용량은 2017년 기준 15.1GW에서 2030년 63.8GW로 약 4.2배 늘어난다. 발전원별 구성비(에너지믹스) 변화를 살펴보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2030년 20%로 확대되는 대신 석탄 발전은 2017년에 비해 9.3%포인트(45.4→36.1%), 원자력은 6.4%포인트(30.3→23.9%)씩 줄어든다. 원전과 석탄 발전의 단계적 감축 계획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해 수명이 다한 월성 1호기는 2018년부터 전력공급 계통망에서 제외한 것을 비롯해 2023년부터 2030년까지 노후 원전 10기(발전용량 8.5GW)의 가동을 중단한다. 또 기존 계획에 잡혔던 신규 원전 6기(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등) 건설은 백지화하기로 했다. 석탄 발전의 경우 2022년까지 노후 발전소 7기(2.8GW)를 폐지하고, 당진에코 1·2호기, 태안 1·2호기, 삼천포 3·4호기는 2030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로 연료를 전환한다.
재생에너지 발전의 확대는, 정부가 2017년 12월에 확정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2018년부터 전방위로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기술력과 경제성, 입지 여건 등을 고려해 크게 네 가지 가닥으로 추진 방향을 잡았다. 폐기물·바이오 중심의 기존 재생에너지를 태양광·풍력 중심으로 전환,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등을 통한 국민 참여형 소규모 발전 사업에 대한 지원 강화, 계획입지제도 도입을 통한 난개발 방지, 관계부처 및 공공기관 협업을 통한 신규 사업 발굴 확대 등이다.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 방안도 나왔다. 지금까지 가격 중심으로 이뤄진 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쟁 구도를 친환경·고효율을 지향하는 품질 중심으로 전환하고, 지역 기반의 분산형 수요 생태계를 조성하는 한편, 세계 전력시장에 대한 맞춤형 진출 지원을 강화해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의 수출을 촉진한다는 것 등이 주요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게 정부의 기대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5단지 아파트는 주민의 전기료 부담을 줄이고 경비대원도 마음 편히 에어컨을 켤 수 있도록 2018년 6월 초 경비실 지붕 위에 태양광 모듈을 설치했다. | 한겨레
정보통신기술 활용해 통합 모니터링
정부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확대 정책은 시행 첫해부터 뚜렷한 성과를 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집계한 2018년 재생에너지 설비의 신규 설치 규모는 발전용량 기준으로 2989㎿에 이른다. 이는 신고리 원전 4호기(1400㎿) 발전용량의 두 배를 넘는 규모이며, 정부 목표치를 72% 초과 달성한 것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의 보급 증가율은 연평균 8.9%였는데, 2018년에는 19.8%로 높아졌다. 2018년 신규 보급된 재생에너지 설비의 67.8%는 태양광, 5.6%는 풍력이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정부의 보조금 지원 예산이 크게 늘어나 주택과 건물 12만 5400개소에 재생에너지 설비가 설치됐다. 2017년 대비 2.8배나 늘어난 규모다. 주택과 건물을 대상으로 한 재생에너지 보급 지원을 위한 정부 예산은 올해도 전년 대비 17.8% 늘었다. 다만 일반 태양광 설비는 보조율이 기존 50%에서 30%로 낮아진다. 태양광 보급 확대로 경제성이 개선돼 초기 설치비가 최근 10년 동안 67% 줄어든 점을 고려한 것이다. 정부는 이처럼 재생에너지 설비 지원 보조율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대신, 보조금 지원 대상은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사업은 올해부터 공공기관과 도시 유휴공간으로 확대된다. 정부세종청사, 전국 경찰서와 파출소, 우체국 등에 자가 소비용 태양광 설비가 연내 설치되고,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마을 주민의 공동활동 공간에도 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을 펼친다. 아울러 산업부는 각 지역에 설치된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해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설비 소유자나 관리자가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발전효율과 발전량의 통계, 고장 등 설비 상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효율적 관리가 가능하다. 여러 정보를 빅데이터로 가공해서 정부도 재생에너지 정책 수립에 활용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부처 간 협업 사업으로도 추진된다. 산업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재생에너지 보급 사업의 집중 지원 대상을 선정할 때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과 연계하기로 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시범 대상이 선정되면 구역 내 복합지원 사업에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원 전환이 포함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설비의 보급 확대와 함께 노후 건물의 에너지 성능 개선, 에너지 자립마을 구축 등이 사업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사업은 정부가 지원하고 지자체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에너지 전환이 포함된 융복합 지원사업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원전과 석탄 발전의 감축,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요약되는 에너지전환 정책은 정부가 상반기 내에 확정할 예정인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된다. 에너지전환 정책의 입지가 더욱 굳건해지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의 헌법’으로 불리는 에너지 기본계획은, 20년을 계획 기간으로 설정해 5년마다 수립·시행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3차 계획에는 올해부터 2040년까지의 에너지 정책 비전과 목표 등이 담기는데, 산업부 에너지위원회의 심의(5월 10일) 절차를 마쳤으며 국무총리 소속 녹색성장위원회 심의(5월 17일)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한다. 산업부가 최근 공청회를 통해 공개한 계획안에는 2040년까지 전체 발전 부문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최대 35%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30년 20% 달성에 이어, 그 뒤 10년 동안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를 최대 15%포인트 더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의 수용성과 경제적 부작용 등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며 무리한 목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세계 주요국에 비교하면 한참 낮은 목표치다.
OECD 회원국 2030년 목표는 36.4%
국제에너지기구(IEA) 분류 기준을 적용해 2016년 재생에너지 발전용량 비중을 보면 독일 29.3%, 영국 24.7%, 프랑스 17.3%, 일본 15.9%, 미국 14.9% 등이다. 우리나라는 2.2%에 불과하다. 또 2017년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액 가운데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은 95.8%로,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는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IEA가 주요국의 정책 목표를 반영해 추정한 결과, 2025년이면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이 원전 발전량을 앞지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는 36.4%이다. 크게 상향 조정하긴 했지만 2030년 20%, 2040년 최대 35%라는 우리 목표는 국제사회에선 사실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리 기업들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향한 세계적 흐름에 한참 뒤처진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100%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다국적 민간 캠페인 ‘RE100’에는 4월 말 현재 세계 각국의 169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애플, 구글, 폭스바겐 등은 스스로 RE100 약속 이행에 그치지 않고 자사와 거래하는 협력업체에도 서약을 받고 있다. RE100 캠페인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사회책임경영(CSR) 활동 차원을 넘어 친환경 이미지를 내세워 경쟁력 강화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8년 10월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서울 태양광 엑스포’에서 대학생들이 태양열전지차를 시연하고 있다.| 한겨레
‘100% 재생에너지’ 동참 한국기업 없어
국내 기업 가운데 이 캠페인에 참여를 선언한 기업이 아직 없다. 상대적으로 값싼 전기요금의 혜택이 캠페인 참여를 꺼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전력 소비량이 많은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지 않으면 에너지전환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며, 기업이 직접 재생에너지 전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전력구매계약제(PPA)를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
전기, 가스, 난방 같은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에는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대기오염, 예기치 못한 사고 위험과 불안,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는 폐기물 처리 등이 바로 그런 비용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비용의 발생을 부정적 외부효과(외부불경제)라고 한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서 생기는 외부효과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정부와 기업은 물론, 국민 모두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적극 나서는 것이다.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비용은 언젠가 모두의 재앙으로 돌아온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