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CNS의 사회공헌 사업 ‘코딩 지니어스’ 현장에서 학생들이 LG CNS를 제어하고 있다.│한겨레
돌도끼 만들던 석기시대 인류 아시죠?
돌 골라서 갈고 다듬어 연장으로 만든 지혜. 그들도 그때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겠죠. 2018년부터 중학교 코딩 교육이 의무화됐습니다. 올해부터는 초등학교 5~6학년으로 확대됐지요. 코딩을 뿌리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메이커 교육’의 핵심도 ‘생각하는 손’입니다. 교실 속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코딩과 메이커 교육,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어렵거나 문턱이 높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아이 스스로 고민해 만들어보는 경험.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힘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소프트웨어(SW) 교육이 한창이다. 2018년 중학교 코딩 교육 의무화에 이어 올해부터 초등학교 5~6학년으로 확대하면서, 코딩과 메이커 교육은 단연 교육계의 핵심 열쇳말이 됐다.
코딩(Coding)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다른 말이다. 시(C)언어, 자바, 파이선 등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코딩의 핵심은 창의력으로, 이 교육을 통해 논리력은 물론 문제 해결력까지 키울 수 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지능형 로봇, 빅데이터 분석 및 활용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모든 영역이 정보통신기술(ICT)에 뿌리를 둔 소프트웨어로 구현되기 때문에 코딩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필수 교육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이나 영국, 이스라엘 등 교육 선진국들은 코딩을 이미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했다. 특히 영국은 2014년 하반기부터 코딩을 초·중·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혼자 스스로 하기에서 함께 하기로
코딩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메이커(maker)’ 교육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나온 개념이다. 메이커는 말 그대로 ‘창작자’를 뜻한다. 미국에서는 전부터 차고에 놓인 철사나 목재, 타이어 등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구상한 로봇을 만들어보거나, 실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도구 등을 개발하는 이들을 메이커라 불렀다.
2005년 <메이크 매거진>을 발행하기 전까지 이들 대부분은 홀로 작업했는데, 인터넷 환경이 정비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 공유가 쉬워지면서 더 많은 메이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온라인 세상 속에서 메이커들은 서로의 기술과 제작 과정에 피드백해주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메이커들은 초기에 ‘혼자 스스로 하기(Do It Yourself)’에 집중했지만 ‘메이커 운동’이 시작된 뒤에는 ‘함께 하기(Do It-Together)’가 모토가 됐다. 거친 장비를 다루는 등 성인 중심의 메이커 운동이 가진 ‘창의력, 협업, 공유’ 등 4차 산업혁명에 부합하는 가치는 미국 초·중·고 교육과정에 메이커 교육을 적용하면서 학교 현장으로 전파됐다.
최근 교육 전문 박람회 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너는 코딩과 3D 프린터 관련 부스다. 논리력을 키워준다고 알려진 코딩 부스에는 아이 교육에 관심 많은 교사나 학부모들이,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3D 프린터 부스에는 아이들이 몰려든다. 자녀가 부쩍 3D 프린터 등 메이커 교육에 관심을 보이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에 구매를 고려하기도 한다.
한데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대, ‘이런 기계가 집에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아이를 달래 출구 쪽을 향하게 된다. 요즘 박람회의 흔한 풍경이다. 사교육업체의 비싼 교구 없이 코딩이나 메이커 교육을 해볼 수는 없을까? 공교육 현장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대전 동방여중 학생들이 ‘에듀 메이커보드’를 활용해 다이오드 및 모터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다.│한겨레
대전 동방여중 30여 명 머리 맞대고 실험
대전 동방여자중학교 교실 안에서 진행되는 메이커 교육 수업이 좋은 본보기다. “이번엔 8번 모터 각도를 45도로, 7번 모터 각도를 135도로 한 뒤 0.2초 간격으로 초록 불빛이 들어오게 해보자!” 이 학교 박현우 교사의 ‘정보-기술 교과 융합’ 시간. 이지연·임경란 양 등 학생 30여 명이 실습실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실험’에 한창이었다. 컴퓨터에서 ‘블록형 명령어’(이하 명령어) 스크립트를 작성해 ‘에듀 메이커보드’와 연결하니 이 양이 생각한 대로 초록 불빛이 0.2초 간격으로 반짝거렸다. 임 양도 이 양과 함께 팀을 이뤄 점등에 성공한 뒤 자신감을 얻었다. 임 양은 ‘거침없이’ 명령어를 수정해보고 빨간색, 노란색 전구를 차례로 연결하며 ‘한여름의 트리 불빛’을 만들어나갔다.
에듀 메이커보드(이하 메이커보드)는 대전광역시교육청 산하 대전교육정보원 민한식 연구사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함진호 책임연구원과 만든 메이커 교육용 교구다.
이를 이용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메이커 교육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표준화된 소프트웨어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부모·교사·학생 등 모든 사람이 프로그램의 기초와 코딩을 쉽게 배울 수 있다. 블록 형태의 프로그래밍 언어인 스크래치, 엔트리, 아두이노 스케치로 모터, LED 등의 하드웨어를 제어하는 경험을 통해 생활 속 아이디어 구현을 돕는다.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고가의 장비를 활용한 메이커 교육도 필요하지만 ‘만들기’에 대한 토대를 다지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게 민 연구사의 생각이다.
▶대학생 코딩 전문 동아리 ‘멋쟁이 사자처럼’의 대학생 강사들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키즈 카페에서 어린이들에게 코딩 수업을 하고 있다.│연합
배선 원리·전기회로 이론 스스로 익혀
메이커보드는 학교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와 ‘엔트리’를 연동해 제작했다. 설계도 및 교재는 소프트웨어 교육 활성화를 위해 무료로 공유하고 있다. 민 연구사는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도 누구나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코딩 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누리집(cafe.daum.net/EDUMakerBoard)에 자료 등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아이들은 어떤 경로로 코딩에 빠지게 됐을까? 이 양은 크리스마스 시즌, 집에서 트리를 설치하다 뜻하지 않던 고민에 빠졌다. 온갖 장식을 단 트리에 색깔별 전구를 걸친 뒤 코드를 연결했는데 일부 전구에는 불빛이 들어오지 않았고, 점등 시간 간격도 일정치 않았다고 했다. 이 양은 “거실에 놓인 트리 불빛이 내 뜻대로 반짝였으면 좋겠는데, ‘이미 만들어진’ 전구를 구입한 거라 점등 시간과 횟수 등을 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입력한 명령어에 따라, 초록색이나 빨간색 등 원하는 불빛 색깔을 0.2초, 0.5초 간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기술 과목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배선 원리나 전기회로 이론 등을 접하며 실제 구현해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프로그래밍 언어가 제법 눈에 익자, 아이들은 또 다른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수업을 통해 메이커보드를 알게 되면서 이 양은 전기자동차를, 임 양은 급식 나눠주는 로봇 만들기를 상상했다. 이 양은 “메이커보드에 모터와 ‘버저’를 달아 로켓발사대, 세탁기, 전기자동차까지 만들어볼 것”이라며 발명가의 면모를 뽐냈다. 스스로 메이커가 되어 머릿속 아이디어로만 간직했던 다양한 기계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도 덧붙였다. “상상한 대로 모터가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제어되면 바로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보고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답을 구해나가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박현우 교사는 “메이커 교육은 단순히 암기한다고 되는 공부가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내 손으로 해본 경험’의 즐거움을 알려주면 아이들도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메이커보드 수업 뒤 아이들이 ‘휴대전화 벨 소리는 어떻게 울릴까?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원리는 뭘까?’ 등 평소라면 지나쳤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도전 정신과 문제의식이 생기면서 ‘직접 해결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며 “가령 휴대전화 벨 소리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전선을 연결해야 할까? 사운드 카드를 활용해볼까?’ 등을 고민하는 능동적인 메이커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 교육방송의 코딩 교육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이 코딩 단어 카드를 활용해 로봇에게 부여할 동작 순서를 배치하고 있다.│한겨레
너와 나 생각 모두 정답 가능 깨달아
교실 속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메이커 교육.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성된 명령문을 비롯해 번듯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주는 교육적 의미도 크다.
민 연구사는 “뉴스에서 로켓 발사 성공 소식을 접하고, 색종이 한 장으로 로켓 추진체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로켓’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그것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를 머리를 맞대고 그려본다”고 했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통해 설계도를 그렸다가 수정하고, 발사대 모터의 원리에 관해 토론합니다. ‘오픈 소스’를 활용해 명령어를 다양하게 변주해보는 경험도 가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너와 나의 생각이 모두 정답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더군요. 메이커 교육은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지식 공유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국내에 메이커 교육을 적극적으로 알린 이지선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과 교수는 “메이커 교육의 핵심은 ‘공유’ ‘협업’”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 교수는 “과거 교육과정에서 각종 실험·실습 등 만들기 교육은 과학 영재를 대상으로 한 것이 많았지만 메이커 교육은 다르다. 뜨개질하거나 요리하는 사람 등 스스로 ‘만들기 아이디어’를 내고 하나씩 손끝으로 구현해내는 과정 자체를 중시한다”고 했다. “이제 학교나 사회 모든 영역에서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수평적 관계로 팀을 이룬 뒤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 돕는 메이커’가 주목받는 때입니다. 협업에 능한 이타적 창작자를 키워내는 것이 코딩·메이커 교육의 목표입니다.”
김지윤 <한겨레> 기자
▶아이들이 코딩 단어를 활용해 ‘댄싱 로봇’에게 춤을 추게하고 있다.│한겨레
몸으로도 신나는 댄싱 로봇 코딩
집에서 해보는 언플러그드 교육
코딩과 메이커 교육, 사양 좋은 컴퓨터나 기계가 있어야만 가능할까? 소프트웨어 교육 전문가들은 ‘색종이와 가위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코딩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기계에 전선을 연결하지 않아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언플러그드 교육’이라고도 한다. 색종이, 가위, 색연필, 이마저 없으면 ‘몸’만으로도 가능한 게 코딩 교육이다. 코딩의 핵심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즉 ‘창의 사고력’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코딩 등 소프트웨어 교육을 일찍부터 도입한 IT 강국 스웨덴에서는 교육방송 우에르(UR)를 통해서도 언플러그드 교육을 진행한다. ‘코딩 단어 카드’(이하 카드)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부모나 아이가 로봇으로 분해 ‘손 올리기’ ‘고개를 좌우로 연속 세 번 움직이기’ ‘5초 뒤 제자리뛰기 두 번 하기’ 등 카드에 직접 명령어를 써보면서 코딩의 뿌리 개념을 익힐 수 있다. 카드 순서에 맞춰 몸을 움직여보면 코딩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도의 개념을 쉽게 체화할 수 있다.
가정에서는 이렇게 해보자. 아이에게 점착식 메모지나 색종이를 5~6장 나눠준 뒤 ‘댄싱 로봇’이 수행해야 할 다양한 춤 동작을 그림으로 그려보게 한다. 춤 동작을 떠올리며 그리고 써보면서 아이는 자연스레 알고리즘을 깨달을 수 있다. 아이가 직접 손 글씨로 적어낸 코드에 맞춰 부모 중 한 명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이 자체로도 훌륭한 언플러그드 교육이다. 코딩 교육이 ‘컴퓨터가 꼭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은 오해라는 말이다. 이때 부모가 종이 가면 등을 만들어 로봇처럼 변신한 뒤 진행하면 더욱 흥미를 끌 수 있다.
민한식 대전교육정보원 연구사는 “특히 컴퓨터나 태블릿 PC 등 전자기기 혹은 관련 교구를 꼭 갖춰야만 한다는 건 코딩 교육에 대한 고정관념에 가깝다. 어린이 코딩 교육 저변을 확대하려면 가정에서 손쉽게 해보는 언플러그드 교육에도 관심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창의 사고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4차 산업혁명 시대. 집에서 부모와 자녀가 간단히 해볼 수 있는 언플러그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입력한 명령어대로 출력되는 결과물(몸동작)을 보면서 논리력을 키울 수 있다. “메모지나 칠판을 활용해 ‘앞으로 여섯 걸음 걷기, 오른팔 들기, 왼쪽으로 돌아 세 걸음 돌아오기’ 등 즉석에서 입력값을 만들어 서로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하는 활동 등은 아이들한테 반응이 좋습니다. 어떤 동작이 코딩 과정에서 잘못 반영됐는지 살펴보거나 특정 동작을 2~3회 반복하게 하고 싶다는 등의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관찰력, 논리력도 키울 수 있지요. 평소 가족들이 모였을 때 ‘댄싱 로봇’ 코딩 놀이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