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주촌면에 자리한 스맥 본사 전경
2016년 12월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문을 연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지하철을 타듯 스마트폰을 찍고 매장에 들어가 물건을 골라 담은 뒤 그냥 나오면 된다. 스마트폰 앱에 등록된 신용카드로 물건값이 자동 결제되기 때문에 하이패스처럼 가게를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인 사물인터넷(loT)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 무인화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모든 사물을 연결해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간에 정보를 소통하는 지능형 기술 및 서비스인 loT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 시티, 스마트팜, 스마트 스토어는 비슷한 개념이다.
공장에 사물인터넷이 적용된 개념은 스마트 팩토리(스마트공장)다. 스마트 팩토리의 선구자 격인 독일 글로벌 전기·전자회사 지멘스 암베르크 공장은 무려 1000여 개의 사물인터넷 센서로 설비를 연결해 불량품을 발견했을 때는 즉시 생산 라인이 멈춘다. 바로 부품을 교체할 수 있게 한 결과 불량률은 감소하고 생산량은 증가했다. 국내에서는 전남에 있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스마트 팩토리가 적용된 대표적인 제철소다. 공정마다 수백만 개에서 수억 개의 데이터가 수집돼 불량품 여부를 점검하고 불량이 생기면 어디서 비롯됐는지 판단한다. 포스코는 7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세계의 ‘등대공장’에 국내 최초로 뽑혔다. 밤하늘에 등대가 불을 비춰 길을 안내하듯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을 적극 도입해 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혁신적으로 이끄는 공장이 등대공장이다.
▶공작기계를 생산하는 조립 라인이 가동중이다.
산업용 사물인터넷 기술 개발
국내에도 스마트 팩토리 구축 사업을 하는 중견기업이 있다. 공작기계에서 출발해 스마트 팩토리 구축 사업에 뛰어든 ‘스맥’이다. 2018년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중견기업 성장의 롤 모델인 ‘월드클래스 300’에 선정한 스맥은 정부의 스마트 팩토리 육성과 더불어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월드클래스 300 사업은 정부가 성장 의지와 잠재력을 갖춘 우수 중소·중견기업을 ‘글로벌 히든 챔피언’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1년 시작된 것으로 연구개발비를 4년간 최대 60억 원 지원한다. 2018년 매출 1505억 원, 영업이익 28억 원을 기록한 스맥 본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에 자리한다. 9월 11일 만난 안승일 스맥 경영기획팀장은 “최근 트렌드인 다품종 소량생산에 맞춰 한 제품을 한 대의 장비에서 완성 가능한 복합 가공기의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월드클래스에 선정된 스맥은 2018년 홍보와 연구개발비 등으로 5억 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1999년 삼성테크윈의 기계사업부가 분사돼 설립한 스맥의 시작은 공작기계였다. ‘기계를 만드는 기계’라고도 불리는 공작기계는 절삭·연삭처럼 금속 등의 재료를 가공해 필요한 모양을 만들어내는 기계를 말한다.
▶2018년 9월 10~15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공작기계 전시회인 IMTS에 참가해 자사 제품을 선보였다.│스맥
공작기계에서 출발한 스맥은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스맥이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공작기계에서 현금 창출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스맥의 4개 사업부 가운데 매출의 80% 이상은 기계사업부에서 확보된다.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연구개발(R&D)을 진행했다. 연구개발비로 2016년 47억 원, 2017년 43억 원, 2018년 46억 원을 투입했다.
스마트 팩토리는 기존의 공장자동화 개념과는 다르다. 스마트 팩토리의 핵심은 결국 기계와 통신의 융합을 얼마큼 완벽히 구축하느냐에 달렸다. 스맥은 산업용 loT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2017년 융복합사업부를 신설했다. 안 팀장은 “스마트 팩토리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로 기존 제조업에 정보통신 기술(ICT) 을 융합해 전 공정 및 공급망을 지능화·최적화하는 미래형 제조산업이다. 산업 전반에 적용할 수 있고, 고도화 작업으로 더욱 업그레이드된 솔루션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 지능형 로봇, 지능형 공작기계, 지능형 자동화 생산시스템, 자율주행 물류로봇, 산업용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첨단 ICT를 통해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2010년 통신회사를 인수해 통신 기술을 전부 제어 기술로 내재화한 점도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산업용 IoT 솔루션은 쌍방향 통신으로 공장 내 관리자가 없어도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으로 장비 가동 상태와 생산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제어 명령을 통해 제조 설비의 생산 데이터를 수집, 관리해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2018년 스맥은 ‘산업용 IoT 솔루션(IIoT)’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을 출시했다.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기계를 조정할 수 있는 장치로, 기계의 수명뿐 아니라 가공 상황도 파악할 수 있다. 출력 속도를 낮춰 생산량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시스템은 모든 공작기계 라인에 적용할 수 있다. 스맥은 5년 이내 전체 매출액의 30%까지 스마트 팩토리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최영섭 대표
태블릿 PC·스마트폰으로 기계 조정
스맥은 스마트공장 보급사업에 힘쓰는 정부 사업에 참여했다. 2018년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공장 구축사업에 참여해 5월, 방산 및 자동차 부품 제조사 등 5개 기업에 자체 개발한 솔루션을 공급했다. 안 팀장은 “기존 수작업으로 진행된 생산량 관리, 설비 관리 등의 업무가 모두 자동 집계되고 모니터링되어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직관적인 그래픽 사용자 환경을 제공해 관리자와 생산자 모두 쉽게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맥은 의료 분야에도 진출을 시도했다. 2018년 11억 원 규모의 의료용 로봇치료대를 중국 상하이 응용물리연구소에 공급한 것. 스맥에서 의료용 로봇치료대를 공급받은 응용물리연구소는 양성자를 이용한 치료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스맥은 중국 공급을 계기로 국내외 로봇치료대 판로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는 직원들
시장 상황도 우호적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2조 3000억 원을 투입해 스마트공장 3만 개를 보급하고 스마트 산업단지 10곳을 조성해서 중소제조업 50%에 스마트공장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목표를 2018년 발표했다. 정부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공장 보급과 함께 제조혁신·연구개발·표준화 등을 종합 지원하는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출범하기도 했다. 중기부는 7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박영선 장관과 스마트공장 관련 유관 기관장, 스마트공장 보급사업 참여기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진단 출범식을 열었다. 중기벤처부는 올해 스마트공장 보급사업에 총 3428억 원을 투자한다. 주요 사업은 Δ스마트공장 구축 및 고도화 Δ로봇활용 제조혁신 지원 Δ스마트 마이스터 Δ스마트화 역량 강화 Δ스마트화 수준 확인 등이다. 스마트공장 구축 및 고도화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은 총 사업비의 50%, 최대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스맥은 2018년 11월 1일 한국전력과 EIoT(Energy Internet of Things) 분야의 협약을 체결했다. 한국전력이 필요로 하는 신재생 에너지 분야의 무선원격 감시시스템 구축 사업을 위한 시스템 개발을 시작했다.│스맥
사람 대체 아닌 사람을 높이는 기술
스맥의 해외 경쟁력 역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8년 매출액 1505억 원 가운데 해외 매출은 759억 원(50.4%)에 달했다. 해외 수출 국가도 60개국으로 다양하다. 특히 가장 큰 공작기계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는 2018년 법인을 설립해 셰일 가스 등 자원개발용 공작기계, 자동차 부품 제작 공작기계 등을 공급했다. 유럽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 2018년 유럽 지사를 설립해 2017년 대비 30% 이상의 높은 성장을 기록했다. 올해는 유럽 지사를 법인으로 변경 설립해 독일, 이탈리아, 터키, 러시아 등 각 지역으로 진출했다.
스마트 팩토리가 무인화와 더불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최영섭 대표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증기기관이 발명되었을 때도 인간의 일자리 위협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단순한 일자리가 감소하고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일자리가 창출됐다. 스마트 팩토리를 통한 제조공장의 무인화가 진행되면 단순 집약적 노동보다는 높은 기술력을 가진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고, 현장 인력 투입이 최소화되는 만큼 산업재해 등 안정성 측면에서도 발전이 일어날 것이다. 스마트 팩토리는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이끌 것이라 예상한다”고 밝혔다.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높이는 기술을 만드는 것이 스맥의 목표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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