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환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이 9월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콘텐츠 코리아랩(CKL) 기업육성센터에서 <위클리 공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부지런해야 성장했습니다. 불도저처럼 추진력 있는 사람이 막 밀어붙이고, 세계를 뛰어다니며 계약을 따왔어요. 한국 사람의 근면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압축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좀 게을러도 창의력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장하는 혁신성장 시대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콘텐츠산업 혁신전략 보고대회를 앞두고 9월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콘텐츠코리아랩(CKL) 기업육성센터에서 만난 김현환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은 ‘왜 콘텐츠산업이냐’는 질문에 시대의 변화부터 이야기했다. 그는 “혁신해야만 성장하고, 혁신하면 성장할 수 있는 혁신성장 시대에 콘텐츠산업은 우리의 신성장 산업”이라며 “한국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절대 뒤지지 않기 때문에 세계 무대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역수지도 콘텐츠 시장은 계속 흑자”
-혁신성장 시대에 콘텐츠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세계 산업에서 콘텐츠 시장은 성장세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으로 2조 3000억 달러 규모인 세계 콘텐츠 시장은 2022년까지 연평균 4.4% 성장할 거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이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3% 안팎)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또 기존 일자리들은 인공지능, 자동화 등으로 줄어들지만, 콘텐츠 관련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다. 인간의 창의력, 상상력, 감성이 바탕이 된 산업이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콘텐츠산업만 본다면 매출, 수출, 고용 모두 성장세다. 매출은 2014~2018년 5년 동안 연평균 5.8% 늘어 전체 산업 평균 성장률 3.25%보다 높았다. 특히 수출은 16%나 성장해 전체 산업 평균 성장률 1.38%의 10배 이상이었다. 만성 적자인 무역수지도 콘텐츠 시장은 계속 흑자다. 말 그대로 효자 종목이다.
-최근 세계 콘텐츠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이 장르별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영상 분야의 ‘넷플릭스’가 가장 대표적 사례다. 가입자가 190개국에 1억 5000만 명이나 된다. 과거에는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필름마켓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계약해야 했는데, 지금은 넷플릭스에만 올리면 1억 명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변화는 5세대(5G) 이동통신이 상용화하면서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콘텐츠들이 일상에서 소비되고 있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혼합현실(MR) 등 실감콘텐츠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경쟁이 붙었다.
-정부 정책은 어떤 방향인가?
=강점과 기회는 살리고, 약점과 위기는 보완하자는 것이다. 기술, 산업 트렌드, 소비 패턴 등 세계 변화의 흐름을 잘 읽고 선도적으로 투자하려 한다. 아무래도 기업들은 투자에 신중하기 때문에 정부가 선도적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정부의 정책 방향으로 시장이 따라오기 때문에 정부가 세계의 흐름에 맞게 정책 방향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강점이라고 하면 콘텐츠 생산 능력, 바로 풍부한 인재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그동안 사람으로 모든 것을 일으켜왔다. 영화, 음악,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점과 위기는 다음 세 가지가 나왔다. 시작하려고 해도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 연구개발(R&D) 등 첨단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것, 한류를 수출산업과 연계하는 활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혁신하기 위해 준비한 게 이번 3대 혁신전략이다.
-혁신전략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재정부 등 여러 부처가 함께 준비하면서 조율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콘텐츠산업의 성격 자체가 융·복합적이기 때문에 여러 부처가 협의할 수밖에 없는데 과거보다는 협의가 쉬웠다. 실감콘텐츠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거의 5 대 5로 함께 준비했다. 실감콘텐츠를 우리는 게임장 등 놀이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과기부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니까 국방이나 의료에 응용하더라. 예를 들어 건물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 훈련을 과거 같으면 불이 났다고 가정하고 훈련했을 텐데 그걸 VR로 구현하니 훨씬 현실 적합도가 높고 도움이 됐다.
▶9월 17일 서울시 동대문구콘텐츠 인재캠퍼스에서 나영석 PD가 ‘한국 콘텐츠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감콘텐츠는 공익적으로도 큰 의미”
-여러 부처가 협업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도 보게 된 것인가?
=다른 부처와 협의하다 보니 실감콘텐츠가 공익적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건 민간기업이 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정부가 달려들어야 한다. 지금 웹툰 업계에서 문제가 되는 저작권도 정부가 나서서 노력해야 한다. 작가들이 정말 고생해서 올린 웹툰이 다음 날이면 암시장에 공짜 만화로 돌아다닌다.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어 추적이 쉽지 않은데, 유통 구조처럼 개인이 노력해서 안 되는 부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긴밀한 협의를 시작했다. 콘서트 티켓 사재기와 암표 문제도 사이버수사대와 협업하고 있다. 온라인 예매는 1인 2표로 제한하는데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 사재기해서 비싼 값으로 암표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온라인 예매 업체들은 표만 팔면 되니까 신고하지 않고, 팬들은 어떻게든 콘서트를 봐야 하니 비싼 값을 치르면서 암표를 사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누군가는 나서서 끊어야 한다. 과거에도 현장이 앞서나가고 법이 쫓아가는 형국이었지만, 지금은 워낙 흐름이 빠르기 때문에 쫓아가기 더 힘들어졌다. 그만큼 부처 간 협업이 더 중요하다.
-다른 부처들은 콘텐츠산업을 어떻게 보고 있나?
=10여 년 전 여기 콘텐츠정책국(당시 문화산업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콘텐츠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정책금융의 대표적인 게 모태펀드(민관 공동 투자)와 완성 보증보험(프로젝트 담보 보증)이다. 모태펀드는 2006년, 완성 보증보험은 2009년에 시작했는데 둘 다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다른 부처에서 걱정이 많았다. 지금은 규모가 커졌고 평가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10년 사이에 다른 부처의 이해도가 매우 높아졌다. 방탄소년단(BTS)이나 영화 <기생충>의 성공을 보면서 콘텐츠산업이 우리의 방향이라는 걸 공감하고 있다. 물론 정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실감콘텐츠 등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정부가 서둘러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시범 사업의 결과를 본 뒤 차근차근 가자는 반론도 있다. 저는 정부에서 선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오류가 있더라도 민간에서 그걸 보고 자신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기 때문이다.
-민간이 자생적으로 이룩한 한류에 정부가 나서는 것에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정부가 한류에 기여한 바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한류의 기폭제가 된 사건으로 꼽히는 게 2011년 프랑스 파리의 제니트 공연장(Le Zenith de Paris)에서 열린 SM타운 공연이다. 보통 큰 공연장은 2~3년 전에 예약해야 하는데 당시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이 일단 잡아놓고 나중에 K-팝 공연으로 결정했다. 접촉했던 기획사 가운데 SM엔터테인먼트가 정부 지원을 요청했지만 예산은 전년도에 다 정해지기 때문에 지원이 쉽지 않았다. 마침 ‘한국 방문의 해’ 공동사업으로 예산을 지원했다. 공연은 물론이고 프랑스 팬들이 루브르박물관 앞에서 벌인 플래시 몹이 큰 화제가 됐다.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정부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한류가 조금은 늦어지지 않았을까? 이처럼 시작 단계라 주목받지 못할 때 정부의 마중물이 필요하다. 1990년대 말 만화계 인사들도 산업으로 키울 생각을 안 하던 대본소 만화 시절, 만화에 꽂힌 문화산업국 선배들이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전 등에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며 만화산업으로 키우려 노력했고 그 뒤에 젊은 만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열어 인재를 키우면서 잘되지 않았나? 문화산업이란 말도 없을 때 문화산업국을 만들어서 긍정적 결실을 낳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제가 그 출발점을 알기 때문에 부작용도 개선하는 콘텐츠 정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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