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한겨레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튼튼한 체력이 확인되며 예상보다 상당히 잘 극복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지 100일이 지났는데도 일본 불매운동(NO 재팬)을 이어가는 우리 국민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대응을 높이 평가한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은 경제제재를 할 땐 통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상당히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 양자협의에 대해서는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재판에 가도 이길 가능성이 있고, 비관적이지 않다”고 전망했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지 100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굉장히 우려가 컸다. 핵심부품의 90% 이상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데,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면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 거 아니냐는 우려다. 그런데 국산화 속도가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다. 중소기업은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상당히 추진하고 있고, LG 같은 대기업은 반도체 생산에 핵심적인 에칭가스를 이미 국산화했다. 다른 소재도 수입처를 다변화하면서 잘 극복해왔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도 국내 생산량을 더 늘리면서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가 직간접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튼튼한 체력이 확인되며 예상보다 상당히 잘 극복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연말쯤 재고 부족으로 인한 여러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이걸 관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청와대는 8월에 이미 대책반을 설치해 여러 중소기업, 대기업과 함께 세제, 재정, 기술 국산화 부분에 대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만점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관광 자제로 일 지역경제 타격 심각”
-한국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국산화해 산업 체질을 개선하자는 입장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의존적인 게 아니라 한국의 대기업과 일본 중소기업 또는 일본의 대기업이 상호의존적 관계였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에칭가스는 오사카에 있는 100년 된 기업에 의존할 정도로 가장 중요한 핵심부품까지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다. 독일이 왜 강하냐 하면 핵심부품은 절대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중앙정부가 집중적으로 투자해 강소기업을 키워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상호의존적 무역에 따른 상호 번영은 기본이지만, 적어도 핵심적인 부품을 한 국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것은 기술 주권의 문제다. 정부가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1조 원씩, 3년 동안은 집중적으로 5조 원씩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또 독일과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협력 약정을 맺었다. 조금 늦었지만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등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기업과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일본 불매운동(NO 재팬)이 100일 넘게 이어지는데, 일본은 어떤 상황인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관광 자제에 대해 우리 국민이 얼마나 현명한지 높이 평가한다. 계속 지속하면서도 한일 국민 간에 마찰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 국민이 개인적인 판단으로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맥주는 99% 수입이 급감했고, 일본 자동차 브랜드 가운데 60% 감소한 것도 있다. 일본 기업에 상당히 타격을 주고 있는 상태다. 특히 한국인 관광객에 주로 의존하던 일본의 지역경제가 심각하다. 그동안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한 해 700만 명 이상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현금을 쓰니 그게 일본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경제 인프라였다. 규슈의 후쿠오카나 유후인, 대마도, 홋카이도, 오키나와 등은 한국 관광객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아우성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통해 민원이 총리 관저나 외무성에 들어가고 있다. 그 정도로 일본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일본은 경제제재를 할 땐 통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상당히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아베 총리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WTO 양자협의 합의 가능성 낮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선언에 대해 일본 내 반응은 어떤가?
=북한에서 지난번에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다. 그런데 발사 횟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일본의 정보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반면 한국은 북한과 가깝고 레이더망이 있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이 어디서 어느 시점에 발사됐고, 발사 각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소미아를 통해 그동안 정보를 공유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최근 일본 내에서 일본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이 한국을 수출규제하고, 백색국가에서 배제할 때 든 이유가 안보상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러고 나서 지소미아는 유지하자는 거니 상충하는 거다. 말이 안 되다 보니 일본 내에서도 무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자꾸 나온다.
-한국 정부가 WTO에 일본을 제소했고, 그 첫 단계로 양자협의가 최근 시작됐다. 어떻게 전망하나?
=60일 안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재판에 들어가는데, 지금 상태로는 60일 안에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실질적으로는 경제보복인데도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소재의 최종적인 용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출됐고, 3년 동안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는데 한국 쪽이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몇 차례 일본과 이 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어나가자고 제안했지만, 일본이 일방적으로 거절하고 있다. 다시 한번 에칭가스를 포함한 전략물자에 대한 통제 관리에 대해 한일 양국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정리하고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같이 강구해나가자고 제안하고, 그럼에도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지 않고 백색국가 배제를 방치한다면 재판에 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본과 네 번 싸워 네 번 다 이겼다. 이번에도 이길 가능성이 있고, 비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원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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