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13번 출구 앞에는 무료급식소 ‘따스한채움터’가 있다. 따스한채움터는 2010년 서울시가 노숙인의 인권과 자존감 회복을 위해 서울역 광장의 거리급식을 실내급식으로 전환한 곳이다. 광장에서 이뤄지는 거리급식이 급식 이용자의 자존감 상실은 물론 위생과 미관에도 좋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가 설치와 운영을 맡고 다양한 민간단체에서 급식을 지원하고 있다(기독교대한감리회 사회복지재단 위탁 운영).

▶ 따스한채움터의 주역들. 이들은 무료급식소를 방문하는 1000여 명의 노숙인을 ‘식구’라고 부른다. ⓒC영상미디어
따스한채움터의 급식소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100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당과 샤워실·세탁실·도서실·밴드연습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이용자는 하루 1000여 명으로 노숙인이 가장 많고 서울역 주변의 쪽방거주자와 독거노인 등으로 구성된다. 주 18회 급식(조식 8시/중식 12시/석식 5시)이 이루어지는데 무료급식소 중에 연중무휴 365일 운영되는 곳은 따스한채움터가 유일하다. 급식 시간이 다가오면 노숙인들이 급식소 조장과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따뜻한 분위기로 과격한 욕설이나 몸싸움은 없다. 급식소에서는 식사 외에도 샤워와 세탁이 가능하다. 샤워실 옆에는 재봉틀이 있는데, 노숙인들의 옷 수선을 위한 것이다. 옷이 마땅치 않으면 여벌의 옷도 구할 수 있다. 원한다면 일자리 안내도 가능하다. 따스한채움터의 대표번호는 ‘1666-7995’인데 소리 나는 그대로 ‘친구구호’를 목표 삼고 있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과정에서 잠시 이탈한 노숙인들이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름대로 노숙인들의 허기진 몸과 마음을 희망으로 따뜻하게 채운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느껴지는 건 따스한채움터 같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허기진 마음 채워줄 심리 지원도 필요하죠
노숙인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노숙인 관련 지원은 물질적인 부분에 집중되어서 심리적인 부분이 취약한 상황이죠. 이런 문제를 음악이라는 요소로 해결해보자고 만든 게 따스한채움터의 ‘노숙인예술학교’입니다. 2014년부터 시작했는데 악기를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씩 배워서 기타를 치고 색소폰을 불게 되면서 ‘우리 이야기 밴드’라는 이름으로 연 2회 이상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명절에 양평의 노인요양시설로 공연을 갔는데 연주를 하다가 눈물바다가 되었어요. 노숙인들은 부모님 생각이 나서 울고, 어르신들은 자식 같은 노숙인들이 짠해서 우신 거죠. 준비한 공연을 끝냈는데 어르신들이 “나중에 또 와줘!” 하셔서 밴드 멤버들이 엄청 놀랐어요. 노숙생활을 하다 보면 받는 데 익숙해지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도 뭔가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에 놀란 거죠. 노숙인들이 음악을 하고 취미를 갖는다는 게 사치일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울적할 때 악기를 다루며 음악을 즐기고 마음을 다스린다면 밥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숙인들로 구성된 ‘우리 이야기 밴드’, 앞으로 많이 사랑해주세요.

따스한채움터 박천송(37) 대리
여러분의 자투리 시간을 나눠주세요
우리 급식소는 하루도 쉬지 않고 1년 365일 돌아갑니다. 명절에는 더 바빠지는데 다른 급식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평소에 분산되었던 노숙인들이 따스한채움터로 몰리기 때문이지요. 고향에 갈 수 없는 노숙인들에게는 더 쓸쓸한 날이니 음식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서울역은 명절에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급식소는 사람이 부족해 아우성입니다. 급식소는 보통 단체의 자원봉사가 많은데 개인 단위의 자원봉사자들도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자투리 시간을 나눠주세요. 따스한채움터에서는 자투리 시간에도 충분히 자원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나눠준 잠깐의 시간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누리집을 통해 자원봉사 신청을 받기도 하지만 배식(조식 8시/중식 12시/석식 5시) 30분 전에만 급식소로 와주셔도 됩니다. 못해도 괜찮습니다. 전부 다 가르쳐드리니까 편한 마음으로 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오가다 잠시 들러주세요. 함께하는 것만큼 큰 힘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따스한채움터 김재환(66) 주임
따스한채움터는 마음을 주고받는 곳
저는 식당에서 급식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게 현장에서 총괄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급식소가 문을 연 2010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낍니다. 처음에는 싸움이 많았습니다. 노숙인들은 몸과 마음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 조금만 부딪히고 지나가도 공격적으로 변하거든요. 작고 사소한 일이 금방 싸움으로 번졌죠. 그런데 지금은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상처가 많지만 그만큼 정에 굶주린 사람들이라 작은 애정과 관심도 크게 느끼거든요. 밥을 먹는 곳이지만 마음을 더 많이 주고받는다고 느낍니다. 기초생활수급비가 입금되는 20일에는 밥값이라며 5만 원을 놓고 가시는 분도 계세요. 그 5만 원은 부자들의 5000만 원보다 더 큰돈이잖아요. 마음의 표시라며 1000원도 주시고, 100원을 주기도 하시죠. 여기서 봉사하던 한 학생은 장학금 받고 대학에 입학했는데 장학금의 절반을 급식소에 기부하기도 했어요. 돈을 떠나 고마움을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급식소에서 그런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따스한채움터 이수근(49) 조장
한 끼의 힘을 믿습니다
서울역에 노숙인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익명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상경하는 사람도 많죠. 따스한채움터는 신분증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서 뭐하겠어요. 물론 행색이 좋아 보이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급식소에 오던 노숙인 중에 덩치 좋고 멀쩡한 젊은이가 있었어요. 친해진 뒤에 “이제 일 해야지” 했는데 씩 웃고 말더군요. 그러다 어느 날 서울역에서 마주쳤는데 정신질환이 발병해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 상태였어요. 그 뒤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사람의 속사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마치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속사정은 절대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모두 이해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금 이 순간, 오늘의 한 끼에 충실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먹어야 걷는 힘도 생기고 대화하고 생각할 힘이 생기잖아요? 오늘의 한 끼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리라 믿습니다.

따스한채움터 강현(42) 선임팀장
노숙인에 대한 사회 편견이 바뀌어야
노숙인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에 살던 사람도 어느 날 빚더미에 앉아서 노숙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정상인도 잠재적인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 잠재적 노숙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외면하기보다 우리 이웃으로 생각하고 도와야 노숙인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노숙인에 대한 편견이 무척 견고합니다. 범법자도 아니고 사회에서 잠시 낙오된 것뿐인데 어쩌면 전과자보다 더한 실패의 낙인이 찍힙니다. 자활을 마치고 일자리를 얻어도 주변의 멸시와 냉대로 다시 노숙생활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가 따스한채움터를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노숙인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일상적인 인사에도 노숙인들은 당황하더군요. 어디서도 인사를 하고 반겨주는 곳이 없었으니까요. 노숙인들은 사회에서 상처받고 고립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웃의 관심과 사랑이 더욱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품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따스한채움터 박광빈(57) 소장
강보라 위클리 공감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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