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은 새로움을 이끈다. 도전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지만 그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발전으로 이어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움을 갈구하는 기업가들이 가장 많이 뛰어드는 분야는 정보통신기술(ICT)이다. ICT가 경제시장을 선도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진부하게 들리지만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능성이 도처에 깔려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떠난 이들 중 무사히 시장에 안착하는 기업은 얼마나 될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ICT 분야 유망 창업·벤처기업의 2018 상반기 성과를 조사한 결과 일자리 수, 매출액, 투자유치, 특허출원 건수 등에서 모두 성장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대상은 과기정통부가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평가해 선발한 ICT 창업 벤처 지원 사업 ‘K-Global 300’에 선정된 555개 기업이다.
유망 기업들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1677억 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51%(1608억 원) 증가했다. 그중 해외 매출액이 333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해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입증됐다. 투자유치액은 873억 원으로 전년도 상반기 대비 51%(578억 원) 증가해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 정책이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허 건수는 전년도 811건에서 48% 증가한 1198건으로 늘었다. 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적극적인 노력을 펼친 결과다.
일자리 창출 부분의 성과도 눈에 띈다. 6월 말 기준 재직 임직원 수는 4571명으로 전년도 4155명 대비 10%가 증가했다. ICT 유망 스타트업이 일자리 창출에 한몫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ICT 분야 유망 기업 대부분이 고유 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페이콕’도 성공적인 사례를 보유하고 있다. 페이콕은 단말기 없이 휴대폰 애플리케이션만 깔아도 카드결제가 되는 시스템을 개발한 핀테크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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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해원 페이콕 대표(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페이콕 직원들이 스마트폰에 있는 페이콕 체크 앱을 들어 보이고 있다 ⓒC영상미디어
10월 16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페이콕 사무실을 찾았다. 페이콕 직원 총 20명 중 비정규직 직원 3명을 제외하면 17명이 정규직이다. 비정규직 직원은 연봉이 높은 고급인력이라 기술 자문만 받고 있다. 2016년 페이콕이 첫 테이프를 끊었을 때 4명으로 시작해 3년 만에 초창기 멤버의 다섯 배로 직원이 늘어났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페이콕은 ICT 기업으로 드물게 주 40시간 근무제를 적용하고 있다. 달 보며 출근하고 별 보며 퇴근하는 ICT 기업에서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제조업은 근무시간과 생산량이 비례하지만 ICT 기업은 달라요. 집중할 때 집중하고 쉴 때 확실히 쉬는 게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주 40시간 근무를 도입해도 회사가 망하지 않은 걸 보면 직원들 능률이 많이 오르긴 한 것 같아요.”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는 분위기라 그런지 직원들의 표정도 밝았다. 개발팀에서 근무하는 이경무 씨는 “전에 근무하던 회사보다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폭이 넓어서 일이 재미있다”며 “무엇보다 야근이 없어서 페이콕에서 일하고 난 다음에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페이콕 같은 ICT 기업은 개발인력 위주로 회사가 운영된다. 개발인력을 뽑아 1~2년 정도 실무에 필요한 교육을 해놓으면 업무시스템에 적응했다 싶을 때 이직을 한다. 그렇게 페이콕을 거쳐 간 사람만 20명 정도다. 스타트업이라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처우가 좋지 못하다 보니 다들 기술만 배우고 회사를 떠난다. 아픔도 있었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멤버 전체가 교체되기도 했다. 권해원 페이콕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생 위주로 직원을 채용했다. 그리고 일을 차근차근 알려주면서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애썼다. 페이콕에서는 개발인력도 해외 미팅에 함께 참석한다. 국내 시장만 바라보지 말고 멀리 보는 안목을 키우라는 뜻에서다. 직원들에게 이런 기회를 조금씩 만들어주다 보니 어느덧 창업한 지 3년째에 이르렀다. 현재 페이콕에 근무하는 이들은 다 2년 이상 근무한 장기 근속자들이다.
주 40시간 근무를 도입한 권 대표는 우리나라 전자결제 산업 분야 1세대 엔지니어다. 아직 우리나라에 신용카드 사용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1994년 카드단말기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직하면서 전자결제 업계와 인연을 맺었다. 단말기를 고치러 소상공인을 많이 만나러 다니다 보니 그들의 고충이 보였다.
“세계 어디를 다녀도 우리나라처럼 신용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곳이 없어요. 배달음식 문화도 발달해 있죠. 그러다 보니 소상공인들이 창업을 할 때 카드단말기는 필수예요. 하지만 카드단말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듭니다. 이런 문제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해결해보려고 시작한 게 페이콕이죠.”
이미 모바일결제시스템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카드번호나 계좌를 휴대폰에 등록하면 실물 신용카드가 없어도 돈을 지불할 수 있다. 소비자는 기술발전으로 편리함을 누리지만 소상공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여전히 결제를 하려면 반드시 카드단말기가 있어야 한다. 페이콕은 카드단말기가 없어도 카메라와 QR코드 스캔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업무시간 채우기보다 능률 올리는 일자리
페이콕 기술의 핵심은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광학 문자 인식) 기술이다. OCR는 글자의 이미지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OCR 기술을 기반으로 ‘통합 인식 관련 특허’를 땄다. 인식률은 99.7%로 굉장히 높다. 그렇다면 보안에는 문제가 없을까? 국내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KTC 인증을 받아서 무리 없이 법을 통과했다. KTC 인증을 받으면 IC카드 단말기를 사용하는 것과 보안 수준이 비슷하다.
결제까지 걸리는 시간도 IC 단말기를 쓰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신용카드를 꺼내 권 대표에게 내밀었다. 권 대표는 카드를 받자마자 페이콕 체크 앱을 켰다. 결제 금액을 입력하고 ‘다음’을 누르니 카메라가 카드를 인식하는 창이 떴다. 이때 카드번호를 인식하는 영상처리기술이 쓰인다. 카메라가 카드를 인식하자마자 결제 완료 문자가 날아왔다. 카드를 받아서 결제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카드 결제뿐 아니라 NFC, QR·바코드 결제 모두 가능하다.

▶ 페이콕 체크 앱은 OCR 기술을 도입해 신용카드, 바코드·QR코드, NFC 방식 모두 결제할 수 있다. ⓒC영상미디어
기술력이 뛰어나 벌써 라트비아, 이란,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권 대표는 지난주에도 중국에서 바이어들과 미팅하고 왔다고 말했다. 권 대표 사무실에 있는 스케줄 표에는 한 달 내내 비어 있는 공간 없이 일정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대부분이 해외 출장이었다.
하지만 해외시장 개척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국내시장 기준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규제가 많이 개선됐지만 국내는 핀테크 기업이 움직일 운동장이 좁다.
“해외 바이어를 만나면 반응이 참 좋아요. 제가 사인만 하면 바로 진출할 수 있는 나라도 있을 정도죠. 하지만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요. 보통 해외 바이어를 만나면 국내에는 규제가 얼마나 풀려 있는지를 물어요. 그러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죠. 그들에게 한국에서도 시장이 잘 정착됐으니 당신들도 규제 완화를 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규제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죠.”
핀테크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 보니 사세를 확장하는 것도 힘들다. 페이콕은 아직 반쪽짜리 서비스라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좀 더 투자 지원을 받아야 해외 진출을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다. 기술 이전을 원하는 나라에 개발인력이 갈 수도 없다. 대체인력이 없다 보니 한 명만 빠져도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중소벤처기업부의 TIPS 프로그램으로 개발인력자금을 지원해주는 기업으로 선정돼 짐을 덜 수 있었다.
“미래차, 반도체 같은 산업처럼 ICT 업계에도 인재가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핀테크를 포함한 ICT 기업이 성장하려면 규제 완화는 필수예요. 다행히 작년부터는 정부에서 기술벤처를 밀어주는 분위기라 많은 기업이 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지난 8월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 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을 실천하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규제 개혁이 시행되면 페이콕도 머지않아 전 세계에 진출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ICT 유망 기업 맞춤형 지원은?
정부는 ICT 유망 기업으로 선정된 스타트업에 성장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한다. 창업 단계에는 CEO 출신 멘토를 중심으로 한 창업 멘토링,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에는 법률, 특허, 회계, 마케팅 분야의 전문 컨설팅과 사업자금 지원 등 경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적극 지원한다. 또한 산업 분야별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투자 지원을 아끼지 않고 각 분야별 전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R&D(연구개발)센터 등을 설립할 계획이다. 기업이 어려움 없이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규제·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앞장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오정택 사무관은 “앞으로도 꾸준히 우수한 기술력과 시장성을 갖춘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지원을 펼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