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이 지난해 12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하고 있다.│한겨레
정부가 기초연금을 올리거나 국민연금을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월 100만 원 안팎의 노후소득 보장에 초점을 맞춘 국민연금 개편안 네 가지를 지난해 12월 14일 내놓았죠.
1안은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와 보험료율 9%는 그대로 두는 ‘현행 유지 방안’이고, 2안은 현행을 유지하되 기초연금을 2022년까지 40만 원으로 올리는 ‘기초연금 강화 방안’입니다. 3안과 4안은 더 내고 더 받는 ‘노후소득 보장 강화 방안’이죠. 3안은 소득대체율을 2021년까지 45%로 올리되 보험료율을 5년마다 1%포인트씩 높여 2031년 12%로 만듭니다. 4안은 소득대체율 50%(2021년까지), 보험료율 13%(2036년까지)를 제시했습니다. 1~4안 모두 월 250만 원을 버는 국민이 국민연금을 25년간 납입하면 노후에 월 86만 7000~101만 7000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재정 안정화 외면했나
이번 연금 개편안이 ‘노후생활 안정’에 신경을 쓴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정부가 국민 여론을 의식해 ‘재정 안정화’에 눈을 감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번 안에는 지난해 8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제시한 ‘70년 뒤 국민연금기금 적립배율 1배’ 유지라는 ‘재정 목표’가 빠졌어요.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중간보고됐던 정부안 5가지 가운데 보험료율을 15~18%까지 인상하는 ‘재정 안정화 방안’ 두 가지도 빠졌지요.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대체율을 40%로 해도 보험료율을 17% 올려야 후세대가 큰 무리 없이 국민연금을 운영할 수 있는데 보험료율을 12∼13%로만 올린다는 것은 미흡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70년 동안 기대수명, 퇴직 연령 등 경제·사회적 변화가 얼마나 극심할지 알 수 없어 재정 목표의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재정 안정을 위해 천 리 길을 가려면 국민이 수용할 만한 방안으로 첫발이라도 내디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일단 출발을 해야 10년, 20년 뒤에라도 재정이든 소득대체율이든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죠. 300여 개 단체가 모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도 “5년마다 건강검진인 재정계산을 하는데도 매번 70년간의 해법을 한꺼번에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냐”면서 “국민연금이 노후를 든든히 보장한다는 신뢰가 형성돼야 재정적 지속성도 담보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험료는 상당 기간 낮은 수준으로 차근차근 올려야 하고, 정부안에는 실현 가능한 안을 담아야 하기에 13%까지만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의 이번 방안이 시행됐을 때 국민연금기금 소진 시점은 1·2안 2057년, 3안 2063년, 4안 2062년으로 추산됩니다.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있을 때마다 “기금이 고갈된다”는 식의 공포감 조성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죠. 이에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국가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기로 했습니다. 박 장관은 “3·4안처럼 10∼15년에 걸쳐 보험료율이 12∼13%로 인상되면 일정 기간 휴지기를 두고 2차로 15∼16%로 인상하면 유럽 선진국의 보험료율에 거의 근접하고, 기금이 고갈되지 않는 안정적인 틀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사지선다로 책임 회피했나
일부에서는 이번 네 가지 방안이 각계가 제기한 주요 방안을 모아놓은 것에 그쳐 정작 정부는 책임을 비켜갔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국민들의 다양하고 상반된 의견이 있어 하나의 통일된 대안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복지부가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현행 보험료가 부담된다’는 의견이 63.4%에 달했습니다. 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현 제도 유지’ 47%, ‘더 내고 더 받는 방안’ 27.7%로 절반 가까이 현행 유지를 원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현행 유지안’을 네 가지 선택지 중 하나로 추가했습니다. 박 장관은 “이번 시기에 해야 할 연금개혁의 목표는 노후소득을 안정시키고, 제도 지속성을 위해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이라며 “다만 다수의 국민은 현행 유지를 원하니 그것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양한 안을 동시에 제시해 자신이 선호하는 안과 다른 안들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비교해보면 하나의 안으로 수렴되기 쉬울 것이라는 얘기죠.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은 지난달 24일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앞으로 국민연금 개편안은 노·사·정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연금특위의 사회적 합의와 국회 논의를 거쳐 입법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연금특위는 오는 7월 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어요. 국회는 연금특위의 논의 결과 등을 종합해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게 됩니다. 노후소득 보장 강화와 재정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기성세대와 현세대, 미래세대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합니다.
스웨덴(15년), 영국(10년), 일본(4년) 등 외국에서도 연금제도를 개선하기까지 오랜 사회적 논의와 국민 토론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한광덕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