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월 1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를 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일부 기업인들과 본관 앞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5대 그룹 총수 등 기업인 130여 명 청와대서 타운홀 미팅 간담회
커피 보온병 들고 경내 산책하기도 자영업자와 민노총도 만날 채비
새해 들어 경제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1월 7일 중소·벤처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 이어 1월 15일에는 5대 그룹 총수를 포함한 대기업·중견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마련했다.
15일 오후 청와대 영관에서 열린 ‘2019년 기업인과의 대화’는 사전 시나리오 없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과 함께 투자와 혁신을 당부했고, 기업인들은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는 우리 경제의 최대 당면 현안”이라며 “앞으로도 일자리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고용 창출에 앞장서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 기업이 올해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아는데 정부도 전담 지원반을 가동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기업 투자, 정부 전담 지원반 가동”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 후 진행을 맡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토론에 앞서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 웃옷을 벗자고 제안했고, 참석자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본격적인 토론을 이어갔다.
기업인들의 요구는 특히 규제개혁 부문에 집중됐다. 가장 먼저 발언한 황창규 KT 회장은 4차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꼽히고 있는 5G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관심을 촉구했다. 황 회장은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에서 데이터는 ‘쌀’이라고 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풀면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종태 퍼시스 회장은 “기업이 규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 호소하고 입증하는 방식보다는 공무원이 규제를 왜 유지해야 하는지 입증하게 하고 이에 실패하면 규제를 자동 폐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우리나라 법·제도는 ‘무엇이 되고 다른 것은 안 된다’는 포지티브 방식이라서 창의성을 갖기 어렵다”며 “이를 ‘무엇은 안 되고 나머지는 다 된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규제샌드박스가 실현되면 제한적으로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실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경과를 봐서 최대한 규제 체계를 바꾸는 데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공무원이 할 수 있다고 규정된 것 외에 행정적인 행위를 할 경우 나중에 감사원에서 ‘왜 근거 없는 행정을 했느냐’라고 문책해 소극적 행정을 하게 되는데 이는 감사원에 협조를 구해 소극적 행정을 문책하는, 그래서 적극 행정을 더 장려해 나가는 행정 문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최태원 SK 회장도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실패를 용납하는 문화가 정책 추진 단계부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그러면서 “혁신성장이 산업화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덜 들어가는 환경을 정부와 사회, 기업이 같이 만들어야 하며, 최고의 인력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실패를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최 회장) 말씀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실패할 수도 있는 과제에 과감하게 연구·개발 자금을 배분하는 등 실패를 성과로 인정할 수 있는 부분에 부처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질 좋은 일자리는 기업 의무“ 화답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을 향해 기업인들도 화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한민국 1등 대기업으로서 작년에 숙제라고 말씀드린 ‘일자리 3년간 4만 명’은 꼭 지키겠다”며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고 그것이 기업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중한 아들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중간에 박용만 회장이 “기업인들만 질문하는데 대통령께서 기업에 질문하실 거 없으시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미세먼지 때문에 큰 걱정인데 기업에서는 어떤 준비를 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기업인과의 대화가 끝난 뒤 대통령과 기업인들은 청와대 경내를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삼성전자와 LG, SK, 현대자동차 등 4개 기업,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은 커피를 든 보온병을 들고 동행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현정은 회장에게 “요즘 현대그룹이 뭔가 열릴 듯 열릴 듯하면서 열리지 않아 희망 고문을 받고 있다”면서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을 가리키는 듯한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하지만 결국은 잘될 것”이라며 “(정부도) 속도를 내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문 대통령의 인도공장 방문을 언급하며 공장이나 연구소를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삼성이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을 짓는다거나 연구소를 만든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고 답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삼성과 LG, SK, 현대자동차, 롯데 등 5대 그룹 총수를 비롯해 대기업에서 22명, 중견기업에서 39명 등 총 130여 명이 참석했다. 오후 2시에 시작된 간담회는 예정 시간을 40분 초과해 120분간 진행됐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10대 그룹 총수를 한자리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달 중 자영업자들과 별도 간담회를 준비 중이고, 민주노총과의 면담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는 15일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기업인들이 제기한 현안 문제에 대한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6일 춘추관에서 정례브리핑을 갖고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투자프로젝트 신속 실행 지원, 신산업 육성,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규제혁신 등을 약속했다”며 “수소경제·미래차·바이오·에너지신산업·비메모리반도체·부품소재장비 등 신산업 분야별 육성방안을 수립하고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또 동남권 원전 해체 연구소를 만들어 원전 해체 산업 육성 방안을 마련하고, 기재부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규제개선 추진단을 꾸려 규제개선을 확대하도록 했다.
김 대변인은 “어제 현장에서 기업인 총 16분의 현장건의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일부 답변이 이뤄졌지만 소관 부처가 충실히 검토해 공식답변을 주기로 했다”며 “장관이 직접 기업인들에게 서신 형태로 답변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청와대는 대한상의를 통해 받은 30건의 사전 질문에 대해 답을 모두 보내기로 했다. 김 대변인은 “30건의 사전 질문을 받았는데, 12건은 어제 현장 질의에서 소화했고, 나머지 18건은 산업 관련 8건, 기업 지원 3건, 고용 관련 2건, 세제 관련 3건, 환경 관련 2건 등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답을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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