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9일, 구글의 바둑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1년 후인 2017년 알파고는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 9단도 이겼다. 커제는 눈물을 흘렸지만, 커제의 나라 중국은 ‘인공지능의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 지난 10월 28일 아시안아메리칸기업가협회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중국의 카이푸 리 시노베이션 벤처스 대표는 “알파고가 커제를 이긴 후 인공지능은 지난 100년 동안 일어난 모든 변화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혁명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의 AI를 이끄는 건 알파고의 나라 미국이다.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전 세계의 디지털 플랫폼을 장악하고 데이터를 끌어모으고 있다. 인공지능 인재들도 실리콘밸리로 모인다. 플랫폼이 사람을 끌어모으고, 데이터가 쌓이고, 더 우수한 알고리즘이 생성되는 선순환 구조다. 중국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뒤처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미국을 뒤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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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트소프트에서 소프트웨어 사업본부를 이끄는 조성민 본부장 ⓒC영상미디어
한국은 IT 선진국이다. 초고속망과 모바일망 등 인프라가 촘촘히 깔려 있다.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강점을 보인다. 한국 역시 인공지능 산업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공지능 산업 현장에서 민관이 힘을 모아 인공지능 혁신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는 정책과제를 발굴하고 추진하기 위해 인공지능 정책 수요자와 현장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은 지난 8월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에서 ‘국가적 차원의 민관 전략 투자가 필요한 분야’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12월에는 민관 합동으로 ‘5개년 로드맵’을 수립하고 2019년에는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민원기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지난 10월 19일 인공지능 현장 소통을 위한 첫 행보로 이스트소프트를 방문해 현장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스트소프트는 1993년 설립된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이다. 대용량 파일을 전송, 보관할 수 있는 알집, 알툴즈 등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AI 연구소 AI PLUS Lab을 설립해 보안, 커머스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AI를 도입하고 있다. 이스트소프트에서 소프트웨어 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는 조성민 본부장을 만나 ‘한국 인공지능의 오늘’을 물었다.
시대의 변화, 기술의 변화, 기업의 변화
“인공지능(AI) 발전의 핵심은 ‘딥러닝(Deep Learning)의 알고리즘’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딥러닝이란 기계의 학습능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건데요.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축적된 데이터의 양도 많아지고, 사진이나 텍스트를 분석할 수 있는 힘도 커진 겁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별할 때, 인간은 직관적으로 구별한다. 컴퓨터는 다르다. 기존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은 수많은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 비슷한 것끼리 분류하도록 했다. 딥러닝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 뇌의 뉴런 신경망을 모방해 인간처럼 인공신경망을 갖추게 만들었다. 즉 데이터를 모으고 분류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과 커제를 이긴 방식도 비슷하다. 알파고의 인공신경망에는 3000만 가지 경우의 수가 들어 있었다. 그다음 한 달 동안 100만 번 이상의 자가 대국과 외부 대국을 통해 최적의 수를 찾아냈다. 다른 바둑 프로그램과 대결을 통해 500회의 대국을 펼쳤다. 한 선수가 1년에 바둑을 1000번 둔다고 가정하면, 알파고는 천 년 동안 바둑만 둔 셈이다. 인간의 직관이나 창의성 대신 알파고에게는 무한한 경우의 수가 축적돼 있다.
“이스트소프트는 이 딥러닝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2015년 딥러닝 연구소를 세웠습니다. 전문 인력을 30여 명 투입했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기술로 2017년 4월 한 기업에 ‘자재 내역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자재 내역 예측 서비스’는 업무 소요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존의 방식은 식자재를 주문할 때 품목리스트를 모른 채 유통사에 견적을 넣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때문에 담당 사원은 고객이 의뢰한 상품명을 품목리스트에서 찾고 다시 견적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소요했다. 반면 ‘자재 내역 예측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부 DB에서 가장 적합한 품목을 자동으로 추천해준다. 품목 매칭이 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업무에 비효율이 없다. 딥러닝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은 생활 깊숙이 들어온다. 이미 상용화되고 있는 챗봇이나 AI 스피커 등이 그렇다. ‘정우성이 주인공인 영화를 찾아줘’라든지, ‘안방 불 좀 꺼줘’ 등의 주문은 이미 일상의 인공지능이 해내고 있다. 번역 서비스는 또 어떤가. 점점 더 기계의 언어가 아닌 인간의 언어와 가까운 번역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선보인 콤마닷에이아이(Comma.ai)의 창업자 조지 핫츠는 “사람이 운전하면 자동차가 주행하는 법을 스스로 깨친다”고 말했다. 딥러닝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자동차는 4주 만에 인간의 운전 기술을 습득했다.
“딥러닝은 기계가 인지할 수 있는 레이어(layer)가 더 많아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단층이 아니라 겹겹의 구조로 데이터를 축적하는 거죠.”
1993년 설립된 이스트소프트는 알툴즈, 알약 등을 만들어 3000만 명의 사용자를 둔 소프트웨어 기업이 됐다. 이들이 만드는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중심’이다. 사용자의 일상의 필요를 포착해 프로그래밍한다. 이스트소프트가 추구하는 ‘인공지능’의 방향도 ‘일상’에 맞춰져 있다. 이스트소프트는 2016년 ‘인공지능 기술의 사업화’를 선언했다.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게 이들의 과제다.
“현재 전 세계 대기업의 80%는 AI에 투자 중입니다.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공지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죠.”
AI 시대의 도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부터, AI가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하게 되리라는 공포까지 다양하다.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의 설 자리가 위태로워질까.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문용식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은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쳐오는 동안 일자리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서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혁신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의 산업과 기득권이 해체되는 대신 새로운 산업이 생겨난다. 데이터나 디지털을 다루는 새로운 직종들이 나타날 것이고, 개인화되고 스마트해진 세상은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AI,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다
“AI는 인간을 돕고 보필하는 도구입니다. 사용자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를 도와주는 기술이죠. 기업에 도입하는 이유도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고 비효율적인 부분을 줄이기 위해서죠. 이를 통해 삶은 더 편리하고 풍요로워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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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초구 이스트소프트 사옥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조성민 본부장(서있는 사람) ⓒC영상미디어
실제로 이스트소프트 역시 인공지능을 역점 사업으로 정한 뒤, 채용이 늘어났다. 이들이 개발한 인공지능을 사용화한 자회사도 생겼다. 이스트소프트가 기술지주회사라면, 이들의 기술을 현실화한 보안 시큐리티 업체와 포털, 자산운용회사는 자회사다. 인공지능 펀드 매니저는 딥러닝을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추천해 투자 종목을 선정한다. 하지만 이 회사를 운영할 인재들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다. 이스트소프트는 2016년과 2017년 우수채용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본사를 포함해 총 680명 정도의 직원이 이스트소프트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공계 출신의 프로그래머뿐 아니라 기획을 담당하는 문과 출신 직원도 많습니다. 특히 인공지능을 다루려면, 이를 잘 아는 인재에 대한 수요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을 다룰 줄 아는 건 기존의 프로그래밍과 또 다릅니다. 프로그래머의 언어뿐 아니라 영어 독해력, 수학적 이해도도 높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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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의 딥러닝을 이용해 ‘나에게 맞는 안경테’를 찾아주는 앱을 개발한 이스트소프트 ⓒ이스트소프트
이스트소프트가 구현하는 기술은 ‘시각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다. 휴대폰, 노트북, CCTV 등으로 촬영된 영상에서 사람과 사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사람의 얼굴을 식별해 이들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추천할 수 있다. 이때 얼굴을 분석하는 기술은 안경을 쓸 때도 활용할 수 있다. 이스트소프트에서 운영하는 커머스 중 하나가 ‘안경몰’이다. 안경은 실제 매장에 가서 써봐야지만 구입할 수 있는 ‘오프라인 중심’의 제품이다. 하지만 매장에서는 직원이 추천해주는 제품을 위주로 써봐야 하고, 써볼 수 있는 개수도 많지 않다.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하는 안경 커머스에서는 수많은 안경을 써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개를 돌리거나 안경을 올렸다 내리는 동작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반 기술을 상용화하려면 규제라는 벽을 넘어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아직 세상에 없던 기술이라 기존의 산업을 규제하는 항목들로는 제한할 수 없는 분야들이 있습니다. 마침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시행된다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규제 샌드박스’란 어린이가 즐겁게 노는 ‘모래 깔린 놀이터’처럼 신기술·신사업 분야의 새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주는 제도다. 민원기 제2차관은 “인공지능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4차 산업혁명의 근본 기술이다.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신제품이나 신서비스의 활성화를 위해 규제 개선 플랫폼인 규제 샌드박스 법을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인공지능, 데이터, 수소경제 등 3대 전략 분야를 ‘혁신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혁신성장의 예산은 경쟁력 있는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쓰인다. 이를 위해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스마트 공장, 자율주행차, 드론, 핀테크 등 8대 선도 사업에 총 5조 1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까지 7만 개의 법인이 새로 생기고, 2조 2000억 원의 신규 벤처투자가 이뤄졌다. 모두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특히 신규 벤처투자가 대폭 늘어났다”고 말했다. 혁신성장 핵심 사업에 대한 지원은 2022년까지 일자리 30만 개 창출이 목표다. 인공지능 분야에 필요한 인력은 인공지능을 실행할 뿐 아니라 설계할 수 있는 인재다. 신산업 분야의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해외에서 들여온 장비나 기술을 매뉴얼대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낼 창의적인 설계 역량이 필요하다. 하드웨어만큼 중요한 게 소프트웨어다. 국내 인력이 개념 설계 역량을 키우기 위해 글로벌 선진 사례를 체득하고 확산하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는 이를 위해 ‘1만 혁신 인재 양성’의 일환으로 해외 유명 연구소뿐 아니라 기업, 대학 등과 공동 프로젝트를 지원해 글로벌 핵심 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알쏭달쏭 AI 용어 풀이
머신러닝 vs 딥러닝 머신러닝은 1959년 아서 사무엘이 ‘일일이 지시(프로그램)하지 않아도 학습이 가능한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인공지능의 구현 방법이다. 대부분 인공지능은 학습을 통해 지능을 확보하지만 일일이 지시하는 규칙 기반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1986년 리나 교수가 처음으로 사용한 딥러닝은 머신러닝을 구현하는 기술 중 하나다. ‘딥(deep)’은 기술적인 용어로, 사람의 뇌세포를 모방한 인공신경망이 여러 개의 층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기존의 머신러닝 방법은 주로 전문가들이 데이터 속에 존재하는 특징을 추출한 후에 머신러닝을 통해 분류나 판단을 하는 식이었다면 딥러닝에서는 데이터만 넣어주면 깊은 망을 통해 스스로 데이터의 특징을 찾아낸 후 분류나 판단까지 수행해 매우 편리하며 정확도가 크게 개선된다. 정리하면 인공지능이 가장 광의의 개념이고 그 안에 머신러닝이 있으며, 딥러닝은 모두의 부분집합이 된다.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 용어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에서 언급됐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새로운 산업 시대를 대표하는 용어가 되었다. 컴퓨터,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제3차 산업혁명(정보 혁명)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혁명으로도 일컬어진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모바일 등 지능정보기술이 기존 산업과 서비스에 융합되거나 3D 프린팅, 로봇공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등 여러 분야의 신기술과 결합되어 실세계 모든 제품·서비스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사물을 지능화한다.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에 더 빠른 속도로 크게 영향을 끼친다.
데이터 사이언스 빅데이터를 이용해 결과를 도출하는 학문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기반이 된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의 성공에는 데이터 사이언스가 있다. 시청자가 가입할 때 기록한 기본 인적 사항에 더해 ‘사용자 행동(user action)’이라고 불리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했다. 예를 들어 개개인이 언제 공포 영화를 보는지, 언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지를 기록한다. 드라마를 볼 때도 몇 시에 보기 시작하는지, 어디서 시청을 그만두는지, 티브이로 봤는지 아이패드로 봤는지 등을 남겼다. 어떤 영화들을 봤는지 그 내역은 말할 것도 없고 각각에 매긴 평점까지도 기록에 남겼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하우스 오브 카드’ 감독과 주연배우를 결정했다. 감독인 데이빗 핀처와 주연인 케빈 스페이시의 과거 작품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분석해서 드라마 시나리오 등에 적극 반영했다. 시청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알고리즘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되면서 코딩 교육과 컴퓨팅 사고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알고리즘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 명령어를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전체 과정에서 볼 때 알고리즘을 짜는 것은 계획 단계다. 프로그램이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는 알고리즘이 완성되면 이를 프로그램 언어로 바꾸어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알고리즘은 논리 요소와 통제 요소로 구성되는데, 여기서 논리 요소가 알고리즘의 의미를 결정한다면, 통제 요소는 알고리즘의 효율성에만 영향을 준다. 즉 알고리즘의 논리 요소는 바꾸지 않고 통제 요소만을 개선함으로써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