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를 국빈방문하며 한반도 평화·번영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4·27 남북정상회담, 5·26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 후 첫 정상외교 행선지가 된 러시아는 한반도 주요 주변국으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한러관계는 1990년 수교(구 소련)를 맺으며 시작됐지만 상호 의존성, 지정학적 중요성에 비해 다소 소극적인 관계가 유지돼왔다. 우리 대통령의 러시아 국빈방문이 19년 만에 이뤄진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2일(현지 시간) 공동언론 발표문을 통해 “우리는 한반도와 유라시아가 함께 평화와 번영을 누리도록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며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을 대비해 한러 양국이 우선 할 수 있는 사업을 착실히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한국의 역할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9개 다리’ 전략 통해 협력 강화

▶ 러시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2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소규모 회담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한러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나가기로 했다. 이날 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32개 항이 담긴 공동성명에 합의하며 그 의지를 확인했다. 양국은 한국-러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망 구축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다. 우호적 여건이 확보되는 대로 나진-하산 철도 등 다양한 철도 사업을 협력하기로 했다. 또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과 관련한 공동 연구 및 기술·인력 교류 협력을 지속해나가기로 합의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한국 공급이 확대된다. 양국은 에너지 분야 협력을 지속하며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공급과 관련해 공동 연구와 더불어 동북아 전력망 연계를 위한 정부 간 협력을 계속해나가기로 했다.
한러는 서비스·투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을 조속히 개시하기로 했다. 또 국제교역 장벽 철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양국 교역 자유화 조건에 대해 논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양국민의 건강 증진과 보건의료시스템 발전을 위한 보건·의료 분야 협력도 추진할 예정이다. 양국은 한국 의료기관의 모스크바 국제의료특구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과 한러 기업 간 e-헬스(health) 협력 등을 높이 평가했다. 미래형 의료협력이 시작되면 시베리아횡단철도 객차 안에서 모바일 진단기로 원격 진료도 가능하게 된다.
국제사회에서 한러의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양측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발전을 위해 다자간 지역협의체뿐 아니라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도 협력을 계속해나가기로 했다. 또 핵확산금지조약(NPT)·화학무기금지협약(CWC)·생물무기금지협약(BWC) 같은 다자 조약을 지속하고 비확산체제 강화를 위해 국제사회가 통합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한편 수교 30주년을 맞는 2020년을 ‘한러 상호 교류의 해’로 선포하고 기념행사 추진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 문화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한러 정상은 우주활동 분야 협력, 한국 원자력발전소용 핵연료주기 관련 제품·서비스 공급 지속, 지식재산 보호 관련 특허 협력, 중소·벤처기업을 위한 혁신 플랫폼 구축, 농업 분야 비즈니스 대화 정례화, 호혜적 북극 협력 발전 등에 합의했다.
한국 대통령 최초 연설, 30초 기립박수

▶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2일(현지 시간) 한러 비즈니스 포럼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문재인 대통령은 ‘9개 다리(나인 브릿지)’ 전략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9개 다리’ 전략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동방경제포럼에서 유라시아와 극동 지역의 평화·번영 비전으로 제시한 한러의 아홉 개 분야 협력 방안이다. 문 대통령은 “철도, 전력, 가스, 조선, 항만 등 9개 분야 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면서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9개 다리’ 행동 계획이 조속한 시일 내에 채택되어 협력이 가속화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1일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러시아 하원 의회에서 연설했다. 본회의장에는 하원의원 410명과 주요 언론이 참석해 발언 내용에 주목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에는 러시아와의 ‘공감’ 형성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문 대통령은 문학, 우주개발 등의 분야에서 러시아가 이룬 저력을 높이 샀다. 그 저력이 러시아 국민의 힘이 됐다고 평가하며 한국 국민도 강인한 정신을 갖고 있음을 설파했다. 양국의 정책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이뤘다. 문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은 평화와 공동 번영의 꿈을 담은 유라시아 시대의 선언”이라면서 한국의 신북방정책이 궤를 같이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푸틴 대통령의 ‘2024 러시아연방 국가발전 목표’와 우리 정부의 ‘사람중심 경제’가 공통의 지향점을 갖고 있음을 설명했다. 20분 연설에서 터져 나온 박수는 총 일곱 차례. 연설이 끝난 후에는 약 30초 동안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연설 중 일부 러시아 의원들은 연설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이번 한러정상회담에 대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반도 정세가 호전되면서 남·북·러 3각 협력이 앞당겨질 수 있게 됐다”며 “최근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에 따라 한러관계는 기존의 경제적 호혜관계를 넘어 안보 분야에서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언론은 문 대통령의 방문을 한러관계가 개선되는 중요한 순간으로 보도했다. 한러정상회담 공동성명 발표와 문 대통령의 러시아 하원 연설을 생중계하며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남·북·러 3각 협력’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러시아 역할’에 큰 관심을 보였다. 러시아 투데이(RT)는 “이번 연설은 한러관계사의 이정표로 양국 협력의 구체적 방향을 공식적으로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또 과거 느슨했던 양국 관계를 종결하고 나아가 남·북·러 3각 협력으로 가는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문 대통령의 노력을 긍정 보도했고 <코메르산트 데일리>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러시아의 역할과 지지가 강조된 점을 부각했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오는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동방경제포럼에 문재인 대통령을 초청했다. 문 대통령이 참가한다면 국제무대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높아진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동방경제포럼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