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성수동이 신흥 벤처 1번지로 뜨고 있다. 과거의 낡음과 현재의 멋스러움이 공존하는 문화에 창조와 예술, 문화와 혁신의 아이콘이 더해지며 차세대 벤처 밸리로 도약 중이다. 2014년 열두 곳으로 시작한 소셜벤처기업은 현재 250개로 늘어 여기서만 3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성수동에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기업과 이들의 창업과 자립을 돕는 중간 지원조직, 재정을 지원하고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기관이 어우러지며 소셜벤처 생태계가 형성됐다. 이로써 투자는 물론 상품과 서비스 판매 등 창업의 모든 것이 한자리에서 해결 가능하다. 신흥 벤처 1번지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셜벤처는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의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창업 형태다. 해외에서는 소셜벤처기업이 새로운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은 지 오래다. 대표적으로는 신발, 의류 등을 판매하는 탐스(TOMS)와 지하철역 근처에서 만날 수 있는 잡지 <빅이슈(THE BIG ISSUE)>를 꼽을 수 있다. 탐스는 ‘ONE FOR ONE’이라는 슬로건 아래 고객이 신발 한 켤레를 사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한 켤레를 기부하는 방식이고, <빅이슈>는 유명인의 재능 기부로 잡지를 제작하고 판매권을 노숙인들에게 부여해 그들의 자활을 돕는다. 윤리적 목적의식과 비즈니스를 융합한 소셜벤처기업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소셜벤처기업이 국가 주도의 복지모델 한계를 보완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소셜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사회혁신가로 불리기도 한다. 소외 계층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자선사업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단순 시혜가 아닌 자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결이 많이 다르다. 소셜벤처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 시대를 사는 청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며 윤리적 부까지 창출하는 21세기형 수익 모델이다.
소셜벤처, 뭉쳐야 뜬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제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이 발표됐다. 이날 정부는 1000억 원 규모의 소셜벤처 전용 투자펀드 조성, 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를 통한 소셜벤처 육성, 공공기관의 사회적 경제기업 판로 지원 등 다양한 지원책을 발표했다. 소셜벤처로 대표되는 사회적경제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위해 집중 투자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날 회의가 열린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역시 소셜벤처들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지하 2층, 지상 8층의 대형 코워킹(Co-working) 공간을 가진 헤이그라운드에는 80여 개의 소셜벤처가 입주해 있다. 2017년 6월 입주를 시작한 헤이그라운드는 공간과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과정부터 남달랐다. 건축 단계부터 ‘그라운드빌딩프로세스’라는 일종의 간담회와 같은 작업을 2년여 동안 준비한 것이다. 기획 단계부터 실제 일하고 생활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하고 공간 구성을 위해 의사소통하며 입주자들의 생각을 공간에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이런 소통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의 많은 부분을 공용 공간에 녹여냈다. 2층과 4층의 멤버 전용 라운지에서 손님을 맞이하거나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고, 6층 계단형 라운지에서는 강연, 토크콘서트 등을 열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잠재 입주사들에게 헤이그라운드에 대한 소속감을 만들어줬고, 이것이 현재 헤이그라운드 커뮤니티의 기반이 됐다.
문화예술 플랫폼 ‘위누’의 허미호 대표는 “성수동에서는 소셜벤처기업인들이 모여 체육대회나 파티를 열기도 한다”며 “다양한 소셜벤처기업이 모여 있다 보니 근황이나 안부를 묻다가도 자연스럽게 협업으로 연결될 때가 많다. 함께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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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장식된 마리몬드 매장. 자기만의 색과 향을 발산하는 꽃이 마리몬드의 메시지와 통한다는 생각이다. ⓒC영상미디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리몬드’의 윤홍조 대표는 협업의 사례를 들며 함께하는 이점을 설명했다. “연예인 수지 씨가 우리 제품을 착용하면서 배송 대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어요. 주문이 너무 많아 공중에서 택배 송장이 날아다닐 정도였는데 옆에 입주한 두손컴퍼니 박찬재 대표님께서 택배 배송을 맡아주겠다고 나서주셔서 급한 불을 끌 수 있었습니다.”
노숙자의 자활을 돕는 두손컴퍼니는 컵과 옷걸이 등의 소품 만드는 일을 하다가 마리몬드와의 일을 계기로 물류배송 전문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됐다. 옆 사무실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업종을 변경하거나 투자를 받는 우연이 일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같은 동네에서 쌓은 관계와 신뢰 덕에 투자가 더 용이해지는 측면도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으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성장을 도모할 여지가 드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변화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다.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모이는 일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입주자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하면서 소셜벤처 거점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동구에는 헤이그라운드 외에도 소셜캠퍼스온(溫), 카우앤독(Cow&Dog), 성동소셜벤처허브센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창업공간부터 자금·판로까지 전방위 지원
서울 성수동의 부상은 편리한 교통과 강남과의 접근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동구는 지난해 9월 전국 최초로 ‘청년 소셜벤처기업 지원 육성 및 생태계 조성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소셜벤처기업을 법적으로 정의하고, 지원정책의 원칙과 체계를 세운 최초의 법규다. 이후 소셜벤처 전담조직을 만들어 ‘제1회 서울숲 청년 소셜벤처기업 엑스포’, ‘성동지역협력기금’ 등의 지원도 진행했다. ‘성동지역협력기금’은 소셜벤처 투자기관, 사회적 금융 등 5개 기관과 협력으로 13억 원 규모로 기금을 조성해 서울숲 주변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마을기업, 소셜벤처에 연 2% 이하의 융자를 지원한다.
지식산업센터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용적률 완화, 취득세 50%, 재산세 37.5% 세금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성동지역경제혁신센터와 근로자복지센터를 운영해 성수준공업단지의 산업환경 개선과 일자리가 풍부한 도시 조성을 위해 입주 기업과 종사자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성수동에는 45여 개의 지식산업센터 내 3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는데 16개 센터가 현재 건립 중에 있어 지식기반산업의 메카로 탈바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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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티브 시티즌 아트 워크숍’에 참가한 일반인들이 역할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위누
서울 성동구가 전국 최초로 조성한 창업공간인 ‘성동안심상가’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성동안심상가는 지하 1층, 지상 8층, 총면적 6920㎡ 규모로 임대 기간을 최장 10년까지 보장하면서 주변 시세의 80∼90% 수준으로 저렴한 임대료가 특징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피해 임차인과 청년창업자, 소상공인, 소셜벤처기업인이 임대료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창업공간이다. 4~6층에 조성되는 소셜벤처허브센터는 소셜벤처기업 16개사 80~100명이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안심상가에 입주한 ‘공씨책방’은 45년간 대를 이어 장사해온 제1세대 헌책방이자 서울시 문화유산이다. 이곳은 두 배에 달하는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1년에 걸친 명도소송 끝에 쫓겨나는 수난을 겪었지만 성동안심상가에 입주해 고서의 가치와 문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성동구는 지난 1월부터 입주자 모집에 신청한 총 67개 업체를 대상으로 4회에 걸쳐 위원회를 열어 그중 21개 업체를 우선 선정했다. 우선 입주의 기회는 젠트리피케이션 피해가 심각한 업체 및 사회적 기여도가 높은 업체들에게 주어졌다. 모집 결과 3 대 1이 넘는 경쟁률로 안심상가 입주에 많은 업체가 관심을 보였다.
올해 7월부터는 청년일자리혁신학교 ‘서울숲 소셜벤처 이노스쿨(Innovation School)’도 운영한다. 청년 소셜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원스톱 창업교육 체제로 지역·청년 맞춤형 교육 콘텐츠와 프로그램으로 소셜벤처기업가를 양성하고, 소셜벤처 생태계를 조성해 청년 일자리 선순환 모델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청년과 함께 일합니다”
‘마리몬드’ 윤홍조 대표

윤홍조 대표가 2012년 창업한 마리몬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개개인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은 꽃 패턴으로 디자인된 상품을 판매하는 소셜벤처기업이다. 이익 중 절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기부한다. 대학 재학 시절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 모델화하는 글로벌 동아리 ‘인액터스’에서 할머니들과 맺게 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처음 네 명으로 시작한 사업이 6년 만에 70여 명의 직원을 채용하는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2015년 16억 원이던 매출은 2016년 45억 원, 2017년에는 97억 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이전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의 절반은 회사 설립 당시의 약속대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정의기억재단 등에 기부해오고 있다. 누적 기부 금액만 현재 18억여 원에 이른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일본의 공식적 사과와 법적 배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할머니들이 영원히 기억되면서 존경받는 것입니다. 마리몬드는 후자에 집중하면서도 이를 통한 여론을 형성해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이런 가치 덕에 조금 독특한 회사 문화와 입사 면접이 있다. 마리몬드 직원들은 매주 수요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인 수요집회에 참석해야 한다. 입사 면접은 마포에 위치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다녀온 뒤 진행된다. 지원자가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보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마리몬드의 일은 실패한 것인가, 라는 질문부터 위안부 할머니를 내세워 사업하는 곳이라는 비난에 어떻게 대응할 거냐고 묻기도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가 마리몬드에서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마리몬드와 같은 소셜벤처는 채용 시장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기업의 가치에 따라 원하는 인재상도 달라지는 것이다. 공익적 가치는 기업 운영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마리몬드의 하지연 PR매니저는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이 있다”며 “신입 직원도 회사의 재무제표를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성원에게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때문에 주인의식도 생기게 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마리몬드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의 가치는 그 어떤 스펙보다 강하다.
“생각을 전환하면 새로운 시장이 열리죠”
‘위누’ 정윤주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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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위누는 예술가와 대중이 자유롭게 만나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플랫폼을 통해 대중이 만나게 될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는 역할을 한다. 정윤주 실장은 “예술가들은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그 방법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몇 가지 사업을 통해 양자 간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데 위누의 사회적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 이후 가장 먼저 빛을 발한 사업 영역은 예술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시립미술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유치하고, 예술가들이 작가로서 정체성을 살리면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교육활동을 벌일 기회를 준 것이다. 방과 후 학생들과 예술가가 함께 창작활동을 해보는 ‘학교 옆 미술관’,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의 대중화를 실천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작가의 매니지먼트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정윤주 실장은 잘될 것 같은 씨앗을 크게 키우는 것이 일반적인 매니지먼트라면, 위누는 작가가 어떤 씨앗을 품고 있든 그 안의 싹을 틔울 수 있게 토양을 마련해주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신진 예술작가 홍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예술작품 생산, 예술축제와 교육, 온라인 플랫폼 제공 등 여러 아이템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재미있는 시도도 있었다. 작가의 중저가 작품 판매를 위한 DIY 키트가 대표적이다.
“크리스마스 때 목도리를 만드는 키트를 기획했어요. 제품의 반은 작가가 만들고, 나머지 반을 판매자가 만들어서 완성하는 제품이었죠. 제품 안에는 도안과 재료가 있었고요. 완성 후에 포장할 수 있는 패키지와 함께 작가에 대한 소개, 작품에 대한 의도와 의미도 넣었죠. 그런데 이 상품이 그해 G마켓에서 남자친구 선물 1등 상품으로 올라 매출 1위를 달성했답니다.”
매출 대박으로 담당 MD는 상도 타고 상품을 소개하는 교본에도 사례가 실릴 정도로 회자됐다. 이후 아기 옷과 신발 만들기 DIY 키트가 출시되기도 했다.
문화·예술 사업은 성장세가 더디고 긴 안목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큰 메리트를 가진 영역은 아니다. 정윤주 실장은 그럼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와 프로젝트를 함께한 작가분이 ‘이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을 때 감동했죠. 작가들이 위누를 파트너로 여기기 시작했을 때 일에 대한 부담과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위누는 예술과 대중을 만나게 하며, 창작이 존중받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가치를 앞으로도 계속 붙들고 나갈 예정이다.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