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일과 삶의 균형’. 정부가 최근 노동시간 단축제도를 시행하면서 기대한 효과이자 목표다. 이 제도로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는 기틀은 더 탄탄해진 셈이지만 정책을 얼마나 흡수하고 어떻게 실천하는지는 주체의 몫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국방연구원(이하 국방연구원)은 제도가 문화로 확산될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워킹맘, 워킹대디를 위한 가족친화 제도는 끊임없는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국방연구원은 국방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매년 이곳에서 쏟아지는 연구 과제만 200여 개. 연구 범위는 국방 정책과 안보 전략, 무기 체계, 국방 경영 혁신 등 국방 전반에 관한 주제를 총망라한다. 소위 ‘금녀(禁女)의 벽’이 두터울 것이란 편견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구원 전체 구성원 470명 중 26.15%가 여성으로, 여타 국방부 산하 기관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국방연구원이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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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국방연구원 소속 정다은 관리원, 정철우 연구위원, 이수진 선임연구원이 사내 가족친화제도 이용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모성보호 시간, 유연근무제 등 국방연구원이 구성원들의 업무와 가정 모두를 지원하기 위해 운영하는 가족친화제도만 10여 개다. 이 중에서도 육아휴직제도는 가장 오래됐고 대표적이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는 자녀 1명당 2년 동안 휴직할 수 있으며, 그 기간을 1회 분할(1년 단위)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산휴가는 출산 전후 90일간 사용할 수 있지만 한 번에 둘 이상의 자녀를 임신한 경우는 120일이 주어진다.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은 10일이다. 국방연구원은 임산부 직원을 대상으로 ‘임신기간 중 노동시간 단축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대상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상일 때 하루 2시간 안에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난임 치료 시술 1일, 난자 채취일 1일을 휴가기간으로 정한 난임 치료 시술 휴가제도 있다. 양육 중 어려움을 덜 수 있는 제도로는 초등학교 입학기 자녀 부모 10시 출근, 자녀돌봄휴가(자녀 학교 공식행사 참여 및 자녀 병원검진 시 연간 2일) 등이 시행 중이다.
이들 제도의 틀만 보면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토대로 한 정부기관을 비롯해 여러 기업에도 도입돼, 국방연구원이 가족친화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게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박상현 대외협력실장은 “국방연구원은 정부 정책을 어느 곳보다 빠르게 적용하며 직원들과 소통한 내용을 반영해오고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이기 때문에 어떤 제도를 새롭게 만들고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대신, 정부 정책이 나오면 체계적인 준비 과정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이행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15년 차 직원 정다은 씨는 국방연구원의 제도 정착 과정, 긍정적인 변화 등을 체감하고 있다.
“시대가 달라졌고 연구원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 같아요. 입사 당시만 해도 출산휴가는 두 달이었고 배우자 출산휴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냉랭했죠. ‘아이를 낳는 건 부인인데 왜 남편이 휴가가 필요하냐?’는 반응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분위기도 바뀌고 사내 배우자 출산휴가도 10일까지 확대됐어요. 육아휴직제도도 종전 1년에서 2년으로 개선됐어요. 그 기간에는 육아휴직 대체 근로자를 고용해 소속 부서와 휴직자의 부담감을 덜어주기도 하고요.”
정 씨는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만족감도 드러냈다. 노사협의회와 행정지원부 등에서 직원 개개인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 내용에 반영한다는 것. 그는 “육아휴직제도 기간이 늘어나게 된 것도 구성원들의 경험과 의견을 적용한 결과”라고 했다.
직장어린이집 개원, 워킹맘 고충 덜어
다만 제도가 갖춰졌다고 해서 쉽게 활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흔히 말하는 ‘눈치가 보여서’가 그 이유다. 국방연구원이 가족친화 제도를 문화화하려는 배경은 여기에 있다. 박상현 실장은 “제도에서 그치지 않고 사내 문화로 정착시켜 누구든 편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려 한다”며 “관리자와 신청자 모두 불편하지 않도록 ERP(기업용 포털) 시스템도 구축했다”고 말했다.
사내 분위기도 한몫한다. 6년째 근무 중인 정철우 씨는 회식 문화를 예로 들며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에는 회식이 굉장히 잦았고 암묵적으로 의무 참석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크게 달라졌어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면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건 당연하고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묻지 않아요. 횟수도 확 줄었고요. 그 덕분에 전업주부인 아내에겐 제 퇴근 이후 시간이 육아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이 되죠. 회식자리가 줄면서 육아를 그나마 함께할 수 있는 게 가장 만족스럽죠.”
국방연구원은 2016년 2월 일·가정 양립 실천의 일환으로 직장어린이집을 개원하기도 했다. 국방연구원 직원의 자녀뿐 아니라 입소 순위에 따라 지역주민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등원할 수 있다. 아동 수 35명, 담당 교사 수 11명으로 원아 대비 법정 교사 수를 충족하고 영유아 통합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어린이집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무엇보다 국방연구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여서 부모의 출퇴근 시간과 자녀의 등하원 시간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워킹맘 이수진 씨는 여섯 살 자녀를 직장어린이집에 3년째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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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원 인근에 위치한 직장어린이집 ⓒC영상미디어
“사내 어린이집은 제가 꼽는 최고의 혜택이에요. 저는 저대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다양한 활동을 편하게 하는 것 같아요. 또 워낙 가깝다 보니 아이가 갑작스럽게 아플 땐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잠시 보고 올 수도 있고요.”
어린이집 측은 연구원들의 유연근무제를 감안해 보육통합시간도 운영한다. 오전 7시 30분부터 9시까지는 오전 통합시간, 오후 6시부터 7시 30분까지는 오후 통합시간으로 부모의 업무 상황에 따라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향후에도 국방연구원은 정부의 가족친화제도 개정 취지에 맞춰 도입사항을 상시 검토하는 한편 이미 시행 중인 사항도 지속적으로 개선해갈 방침이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