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는 말 그대로 ‘모험’이며 ‘혁신’이다. 벤처조직은 가장 혁신적인 조직으로, 그동안 정부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정부혁신의 일환으로 올해 ‘조인트벤처 1호’라는 벤처조직을 정부 부처 최초로 도입했다.
‘조인트벤처 1호’는 민간의 벤처기업처럼 자유롭고 창의적인 업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무원 조직 내 칸막이를 없애고, 역량 있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난 5월 말~6월경 전 직원 대상 아이디어 공모와 참여 신청을 받았고, ‘드론을 활용한 해양수산 현장업무 혁신방안’이라는 과제가 선정됐다. 이후 총 3명이 벤처팀으로 선발돼 7월 16일부터 9월 15일까지 청사 외부의 별도 사무실에서 이 과제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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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최초 벤처조직 ‘조인트벤처 1호’(왼쪽부터 안현규 주무관, 박찬수 사무관, 김경서 사무관, 이상길 혁신행정담당관)
그 결과 벤처팀은 지난 10월 22일 ‘오션 드론(Ocean Drone) 555’ 비전을 발표했다. 정책브리핑은 두 달간 벤처팀으로 활동한 안현규 주무관(기술), 박찬수 사무관(제도), 김경서 사무관(인프라)과 팀 총괄자인 이상길 혁신행정담당관(이하 과장)을 해수부 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조인트벤처 1호’ 어떻게 만들었나?
해수부 혁신행정담당관실은 정부혁신을 추구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꿀지 고민해왔다. 혁신적인 창업은 혁신성장의 기본 바탕이 된다. 이상길 과장은 “처음엔 제도를 바꾸면 달라질까 싶었지만, 그러면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극단적인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신 위험은 최소화하기 위해 최소의 인원으로, 기간도 최단기간으로 설정했다.
처음엔 과제 주제 하나만 덩그러니 던져진 백지상태였다. 애초에 역할 분장도 없이 팀을 구성한 것이어서 ‘기술-제도-인프라’ 세 부분으로 나눠 역할을 정했다. 팀 내에서 연장자이자 유일하게 지방청인 국립해양측위정보원 소속인 안현규 주무관은 2016년부터 2년간 바다의 등대시설을 관리하면서 드론 업무를 한 경험이 있어 드론 관련 ‘기술’ 분야를 맡아 드론이 등대 외에도 수산, 항만 등 여러 해양수산 분야에서 활성화되는 방안을 모색했다. 국제협력총괄과에 있었던 박찬수 사무관은 ‘제도’ 부분을 맡아 드론 관련 법령이 어떻게 돼 있고, 이런 ‘제도’를 어떻게 개선하고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항만지역발전과에서 근무한 김경서 사무관은 ‘인프라’ 부분을 맡아 인력이나 조직 구성을 어떻게 할지, 사업들은 어떤 식으로 추진할지에 대해 연구했다.
벤처팀은 ‘해양수산 드론 활성화’라는 제목만 던져진 상태에서 처음 한 달 동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김 사무관은 “먼저 전체적인 계획을 짜고 많은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이 가해졌다. 문서 작성 대신 현장 파악이 중요했기 때문에 드론을 만드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정보 수집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들에겐 중대한 분기점이 있었다. 바로 카이스트에서 ‘끝장토론’을 한 날이다. 자료 수집 후 세부 사항에 대한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끝장을 보자는 마음으로 네 명이 대전 카이스트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끝장토론 이후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현장에서 수렴한 의견들을 기술개발과 제도 개선 과제로 구분하고, 인력 및 장비 등의 확보와 관련된 단계별 이행 방안을 구체화해 ‘오션 드론 555’가 탄생했다.
5대, 50대, 500대 합해 ‘오션 드론 555’
‘오션 드론 555’에서 555는 무엇일까. 2019년 5대 지역 거점에 드론 허브를 구축하고, 2020년에는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 드론 50대를 도입하고, 2022년까지 전 해역에 드론 500대를 도입해 해양수산 분야에서 활동하게 한다. 여기서 5대, 50대, 500대를 합해 ‘555’라는 상징적 의미를 낳았다. 박 사무관은 “정책을 설명할 때 숫자나 임팩트 있는 것이 기억하기 좋아 고민을 많이 했다”고 명칭에 대해 설명했다.
벤처팀은 업무만 기존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복장, 상하계급, 칸막이 행정 등 드론 사업과 관련 없는 것에는 벗어나 업무 하나에만 몰입했다. 박 사무관은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묻자 “올여름 엄청 더웠는데 기존의 복장을 다 떨쳐내고 편하게 입을 수 있어 좋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복장부터 편해지니 마음가짐도 달라져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인트벤처’가 정부 조직문화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조직 공학적으로 보면 이 조직은 관리자가 없다. 위계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었다. 이 과장은 “특정과나 TF에 지시한 후 잘 안 되면 인사, 성과평가 등 부처에 미치는 영향이 좋지 않았을 텐데, 벤처조직은 그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특공대를 잠깐 만든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기존 조직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실패하면 그것을 교훈으로 삼으면 되고 잘되면 기존 조직에 흡수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앞으로도 어떤 특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적인 방식의 업무 진행이 필요한 경우 도입해봄 직하다.
벤처는 완전한 정책을 써주지는 못하더라도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다. 이 과장은 “적어도 국책연구기관이나 컨설팅 회사에 6개월간 1억 원 비용을 들인 용역의 결과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벌써 ‘조인트벤처’를 벤치마킹하려는 문의가 들어오는데, 그런 부처에게 해줄 조언을 부탁했다. 김 사무관은 정보 수집을 강조했다. 현장에 가서 많이 듣고, 관련 보고서를 다 읽고 관련자에게 전화로 많이 물으라고 권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기반으로 갖춰져야 터닝포인트가 왔을 때 치고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존 부서에 대한 인센티브와 지원자에게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유인책이 있어야 조직을 구성하는 데 수월하다. 박 사무관은 “기존 부서에서 사람을 데리고 가면 일손이 부족해 싫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상쇄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업무와 연관이 없고 연차가 낮은 것도 오히려 강점이었다. 유사한 업무를 하던 사람이 벤처를 한다면 해왔던 연장선에서 갇힐 수밖에 없다. 이 과장은 “1년 차, 3년 차 사무관 그리고 소속기관 주무관이었기 때문에 정책 경험이 많지 않아 선입견 없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추구할 수 있었다”면서 “10년 공무원 생활을 하면 지시받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바로 설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조인트벤처’는 앞으로 2호, 3호를 암시하고 있다. 아이디어 공모부터 직원 선발까지 새롭게 한다. 2기를 연말에 공모하고 선발해서 내년 1월 출범시킬 계획이다. 잘된다면 상반기, 하반기 한 팀씩 정례 모집하는 것이 목표다. 나아가 해수부는 벤처팀을 통해 역량 있는 직원들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선순환의 조직문화가 창출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