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취약계층은 복지와 연계한 자활 지원으로 생활 전반에 안정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내놓은 저소득·취약계층 주거지원 방안은 수요자의 현실을 세심하게 반영한 결과다.

▶ 11월 22일 경북 포항 북구 장량동 휴먼시아 1단지에서 이재민들의 가재도구 등 이삿짐을 사다리차로 옮기고 있다. 주거복지 로드맵은 저소득층·취약계층 지원방안뿐 아니라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에 대한 지원책도 마련했다. ⓒ연합
저소득층의 자가 점유율은 46.2%로 고소득층(79.3%)에 비해 현저히 낮다 보니 공공임대, 전세자금, 주거급여에 대한 정책 수요가 높다. 주거환경도 열악한 실정이다. 지하·반지하·옥탑 거주자가 최대 59만 7000명에 달하고 비닐하우스, 쪽방 등 비주택 거주자는 39만 4000명에 이른다. 취약계층인 장애인의 경우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일반 가구에 비해 무주택 기간이 19.4년으로 매우 길고, 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중도 8.6%에 달한다. 아동 빈곤가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저 주거기준 미달인 가구, 비주택에 거주하는 아동 빈곤가구 비중은 전체 아동가구의 11.7%다.
정부는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이 처한 주거환경의 질을 높이고 수요자가 원하는 주거지원 정책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 청년·신혼부부·고령자를 제외한 일반가구에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적임대주택을 총 41만 호까지 확대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공공임대주택은 저소득층 일반가구에 총 27만 호, 공공지원주택은 일반주택에 14만 호를 공급해 시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장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주거급여는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 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인 차상위 계층의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소득인정액의 기준을 늘릴 계획이다. 소득인정액 기준을 중위소득 43%에서 2020년까지 45%로 늘리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 54만 7000가구를 주거급여 지원 대상으로 포함한다.
지원금액도 인상한다. 최저 주거면적의 민간임차료를 반영해 2016년 기준 11만 2000원이었던 기준임대료를 2018년 12만 2000원으로 올린다. 기준임대료는 주택임차료 상승률(2.4~2.5%)에 맞춰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보수한도액도 8%로 올린다. 지난 2015년 맞춤형 급여 개편 이후 꾸준히 오른 건설공사비를 반영한 것이다. 취약계층에는 맞춤형 종합생활지원을 함께 제공한다. 정기방문·상담, 자활·건강·교육 지원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종합적인 복지 서비스와 주거문제를 연계해 해결할 계획이다. 주거급여 사업에 아동 빈곤가구 주거환경 개선 등 극빈층 지원 사업을 별도로 신설해 주거 빈곤가구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주거 실수요자, 특히 무주택 서민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도 확대한다. 정책모기지를 개편, 소득이 낮은 서민과 실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해 정책모기지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주택도시기금 구입 및 전세자금 대출요건에 자산기준을 도입해 금융지원이 절실한 실수요자에게 집중 지원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대출자의 상환부담을 낮추고 가계 건전성을 강화하는 유환책임대출을 모든 기금대출로 확대한다. 유한책임대출은 채무자의 권리상환 책임을 저당권이 설정된 주택으로 한정하는 것을 말한다. 소득 3000만 원 이하 디딤돌 대출자에게 허용했던 유한책임대출을 올해 12월 소득 5000만 원까지 확대한 다음 2018년 7월 전 소득 구간으로 늘린다. 주거 취약계층에 임대주택과 NGO 서비스를 연계 제공해 복지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파산 등 불의의 상황으로 거리에 내몰린 가구에 매입임대 등을 활용해 긴급지원주택을 제공한다. 수요가 많은 지역은 별도로 긴급지원주택을 고정적으로 확보하고 지자체와 NGO 등과 협업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저소득층·취약계층에 복지와 주거 동시 지원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지원 사업도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책이 생겼다. 2003년부터 시행한 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은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되고 위험에 노출된 환경에서 생활하는 비주택 거주자에게 저렴하게 매입·전세임대주택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간 LH와 NGO가 협력해 쪽방 등 비주택 거주자에게 주택과 자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NGO 등의 운영기관이 재정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주거지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NGO 등 운영기관에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운영기관의 도움으로 입주자가 자립한 이후에는 일반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이주해 NGO가 추가로 다른 수혜자를 발굴할 수 있는 선순환 체계도 구축할 방침이다. 매입·임대 위주의 주거 여건을 건설임대 공급으로 전환해 전세임대 지원 단가를 수도권 8500만 원, 광역시 6500만 원 등 일반 전세임대 수준으로 높인다. 정부는 비주택 거주자에 대한 주거실태조사를 2018년 3월까지 완료한 후 지원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계획이다.
중증장애인에게는 주거약자용 주택을 우선 공급한다. 현재 주거양자용 주택은 입주자 선정 시 부양가족 수, 해당 지역 거주기간 등을 기준으로 입주자를 선정해 장애등급이 높은 중증장애인이 먼저 주택을 공급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 점을 개선해 주택 입주자 선정 시 장애등급을 포함해 중증장애인이 우선적으로 공급 대상자에 선정되도록 했다.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는 공공임대 공급기준을 미성년 자녀 수에 따라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미성년 자녀가 많은 가구가 우선 입주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었다. 소년소녀가장 등 보호대상 아동에게 연간 1000호 정도 전세임대주택을 무상 지원해 주거 안정을 꾀하도록 했다. 보호아동이 만 20세가 되기 전인 보호기간 동안은 무상으로 주택을 지원하고, 자립지원기간에는 50% 저렴하게 지원할 방침이다.
지진 등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도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난 11월 14일 지진이 발생한 포항의 경우 피해 주민이 전기세·수도세·난방비 등 관리비만 부담하고 임대료의 50%는 LH가, 나머지 50%는 지자체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긴급지원주택이 부족할 경우 LH가 기존 주택을 빌려 피해 주민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긴급지원주택과 전세임대주택마저 부족할 경우를 대비해 이동식 주택인 모듈러(이동식) 주택을 비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재해로 파손된 주택을 복구하는 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일반재해지역에 있는 주택이 전파(全破)·유실된 경우 2700만 원, 반파(半破)된 경우 1350만 원까지 지원한다. 특별재해지역 복구비용은 전파·유실 주택에 6000만 원, 반파 주택에 3000만 원까지 확대한다. 또한 내진 보강을 희망하는 주택 소유자에게 보강비의 80% 수준까지 주택도시기금을 융자해주고, 내진 보강을 실시한 건축물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할 때 용적률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계획하고 있다.
“집 없는 설움 씻어준 임대주택, 우리 가족의 든든한 울타리”
오승규(35·가명) 씨는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희비가 교차한다. 어린 시절 친척집, 화장실이 밖에 있는 단칸방, 남의 집에 더부살이로 살던 기억과 영구임대주택으로 이사하던 날이 한꺼번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었죠. 생계를 포기한 아버지는 노숙자로 전락했고, 당시 여덟 살이었던 저는 두 살 어린 동생을 데리고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지냈어요. 그때 눈칫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어린 마음에 집 없는 설움을 호되게 겪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 씨의 아버지가 다시 아이들을 찾아왔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아이들 밥이라도 먹이겠다고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힘들게 얻은 집은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짜리, 부산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곳이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을 열 가구가 공유하며 살았다. 그 뒤로도 오 씨는 여러 번 이삿짐을 싸야만 했다. 오 씨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또 “이사 가자”는 말을 했다.
“저도 모르게 아버지한테 ‘또 이사냐’며 짜증을 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이사 가자는 집이 바로 영구임대주택이었어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집이었죠. 처음 현관문을 열었을 때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제가 살았던 영구임대주택은 보증금 200만 원에 한 달 관리비와 임대료가 5만 원 정도였어요. 주거비 부담도 줄었고 우리 가족도 안정을 찾았어요. 그때 알았어요. 주거는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거죠.”
저소득·취약계층 지원 방안
1 임대주택 41만 호 공급
2 주거급여 강화
3 긴급지원주택 도입
4 비주택 거주자 지원
5 중증장애인 우선공급(지원)
6 그룹홈 활성화
7 빈곤 아동가구 지원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