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지 않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빽빽이 늘어선 점포. 그 틈새를 비집고 올라선 수많은 대형 간판. 화려한 원색으로 가득 메워진 간판은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붙잡기 위한 경쟁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정부는 간판의 지나친 화려함이 주변 경관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 지역 특성을 살린 새 옷 입히기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8월 10일 ‘2018년도 간판 개선 시범사업’ 대상지 20개소를 선정했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노후화된 간판과 창문이용광고물을 정비함으로써 지역 경쟁력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2017년까지 전국 126개 지역에서 시행됐다.
대상지는 공모지역에 대한 서류심사와 현지 실사,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선정된다. 지역의 적정성, 사업 실현 가능성, 추진 의지 등을 토대로 지역 경관 개선 효과, 지속적 관리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 사업 적용 대상이 된다.
올해 선정된 지역은 부산 북구, 인천 남구·남동구, 울산 동구·중구, 광주 남구, 경기 시흥시, 전북 전주시·정읍시, 충남 서산시·태안군, 제주 서귀포시 등이다. 행정안전부는 이들 지역에 각각 2억 500만 원, 총 41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울산 중구는 우정삼거리 입구부터 국민은행 앞까지 200여 개 노후 간판을 개선하게 된다. 중구는 해당 구간 인근에 테마 거리가 위치한 만큼 문화관광도시 이미지에 부합한 디자인을 담아낼 계획이다. 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가게별 특색을 살리면서도 각종 문화관광 자원과 조화를 이루게 해 기억에 남는 명품거리를 만든다는 복안이다.
전북 정읍시는 정읍 터미널에서 연지아트홀까지 구간 내 100여 개 간판을 교체한다. 난립한 간판을 일정한 높낮이로 맞추고 일대의 역사, 업소별 특성을 간판의 서체와 색체에 담아내 옛 도심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다. 정읍시는 사업이 완료되면 옛 도심이 활력을 찾는 견인차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은 태안읍 중앙로 십자로에서 성심상가 사거리까지 간판 337개를 새롭게 단장한다. 태안군은 이번 사업이 관광객 유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며, 내년 충청남도민 체육대회를 찾는 선수단과 도민들에게 관광 태안의 이미지를 심어주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번 사업을 통해 찾아가고 싶은 아름다운 거리, 사람이 붐비는 거리가 조성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며 “선정된 지방자치단체는 해당 지역주민들과 함께 사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주민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개선
눈여겨볼 점은 이 사업이 주민 의견을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 간판 디자인의 경우 정부나 전문가의 일방적 결정이 아닌 주민 의견 수렴이 우선이다. 행정안전부 측은 주민 참여를 더욱 확대하고 주민들이 원하는 바를 디자인에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사업 진행 과정 보고, 사업 이후 만족도 점검 등도 이 사업의 일환이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옥외광고센터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한 관리카드를 기반으로 사업이 어느 단계인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사업이 완료되면 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반응을 직접 살피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해마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 앞서 공무원과 주민협의체를 대상으로 사업설명회도 실시한다. 간판 개선 시범사업의 취지, 성공적 이행 방안, 모범 사례 등을 다룬다. 이때 주민협의체는 설명회의 주요 내용을 해당 점주들에게 전달하는 의견 수렴 창구 역할을 한다.
행정안전부는 사업의 주요 성과 중 하나로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협조를 통해 만족을 유도한 점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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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청주시 한복문화의 거리 간판 개선 시범사업 전·후 모습 ⓒ행정안전부, 강원 평창군 진부면 간판 개선 시범사업 전·후 모습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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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 강릉시 교동 일원 간판 개선 시범사업 전·후 모습 ⓒ행정안전부,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간판 개선 시범사업 전·후 모습 ⓒ행정안전부
간판 개선 시범사업 우수사례
● 전남 강진읍 중앙로 좋은 간판 만들기 사업
강진읍 중앙로 일원 100개 업소를 대상으로 LED 간판을 설치하고 불법광고물을 정비한 이 사업은 환경 개선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별 간판 윗선과 돌출 폭을 일정하게 맞춰 깔끔한 스카이라인이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건물주의 사업 참여를 유도해 노후 건물 전체 도색을 병행한 점도 높이 평가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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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 경남 함안군 군북면 간판 개선 시범사업
함안군 군북면 함마대로 및 중암7길 일원 104개 업소의 노후 간판을 교체해 거리 미관을 향상시킨 것으로 평가받았다. 건물 주변의 색상을 조사 검토한 후 산출된 컬러 값을 디자인에 적용, 조화로움을 기본 요소로 정했다. 알루미늄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LED, 슬림라이트패널 등 경량 소재를 적용해 에너지 절약 측면을 크게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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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옥외광고센터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