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8년도 예산안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세 번째 부분은 혁신성장이다. 그중 상상을 실현하는 메이커 운동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전과 혁신이 샘솟는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대한민국의 애플, 구글이 탄생할 날도 머지않았다.
애플, 구글, 아마존. 미국을 넘어 세계 IT를 선도하는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모두 차고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가장 두려워하는 도전’을 묻는 인터뷰에서 “누군가 차고에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고안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고 말했을 만큼 미국의 차고는 젊은이들의 도전과 혁신의 발원지가 됐다. 이처럼 스스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메이커(maker) 운동’이라고 한다. 메이커 운동은 자율성에 기반을 둔 풀뿌리 기술문화 운동으로 창업으로까지 확대돼 미국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됐다. 메이커 운동은 개인의 취미부터 산업 영역까지 아우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차고’ 문화는 낯설다. 공간적 의미보다 무언가를 직접 기획하고 생산하는 작업이 생소하다는 뜻이다. 능동적으로 제조에 뛰어드는 것은 으레 개인보다 기업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개인이 장비를 가지고 있는 일은 드물며 관련 종사자가 아닌 이상 무언가를 만들 기회조차 접하기 어렵다. 최근 ‘차고’와 같은 ‘메이커 스페이스’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인이 용접, 목공, 금속 제조 등을 직접 해보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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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대장간의 CNC 자수 교육 ⓒN15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디지털 대장간’은 대표적인 메이커 스페이스다. 디지털 대장간을 찾은 11월 4일 ‘CNC(컴퓨터 수치제어) 비닐커터’ 교육이 한창이었다. 20~60대, 연령대도 대중이 없다. 묵직한 기계 소리와 코끝을 감도는 나무 냄새 속 수강생들은 하나라도 놓칠 새라 집중하는 모양새다. 화면에 새긴 글자가 비닐에 그대로 출력되자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한편에 있는 레이저 커팅기 앞에선 한 방문자가 손수 준비한 목재에 원하는 문구를 새기고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는 김용일 씨는 “일반인이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장비가 마련돼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2016년 5월 문을 연 디지털 대장간은 ‘메이커’ 본능을 깨우는 만능공장이다. 미국 메이커 운동의 중심인 ‘테크숍’과 업무협약(MOU)을 맺어 공간을 조성했다. 지자체(서울시), 민간협력사(나진산업·N15)가 운영하는 곳으로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때문에 이용 신청 경쟁도 만만치 않다. 초보자를 위해 17개의 교육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개방했다. 디지털이 가지고 있는 현대적 감성과 대장장이가 가진 전통적인 감성이 가미된 이곳은 주장비실, 금속가공실, 용접실, 목공실 등 네 군데로 나뉘어 총 50여 대의 기계를 보유하고 있다.
과거 머릿속에서 구상하던 제품을 만들려면 설계도면을 짜고 직접 장비를 구매 또는 대여하거나 전문가에게 맡겨야 했다. 하지만 메이커 스페이스를 활용함으로써 본인이 가진 아이디어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게 됐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메이커 운동 확산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상에서 쉽게 제조가 가능해지면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차고’가 제공되는 셈이니 말이다. 평일은 오후 9시까지 이용할 수 있어 퇴근 후 직장인도 대장장이가 될 수 있다. 개인 여가 활동을 하면서 생산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메이커 스페이스의 큰 장점이다.
제조업 창업 기반 조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특허출원은 개인에게서 나오지만 제조업은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다. 숙명여대, 고려대, 건국대 등도 여기에 동참해 디지털 대장간을 수업 공간으로 이용하거나 교내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마련하고 있다.
은퇴자의 자립 지원에도 이바지한다. 은퇴한 기술자의 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방지하고 사회에 환원하는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숙련된 은퇴자가 다른 수강자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창업의 발판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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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디지털 대장간 목공실에서 테이블 목재 절단기, 연마기, 대패기, 흡진기 등의 장비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C영상미디어 2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3D펜 체험교육 ⓒN15 3 용접 기본교육 ⓒN15
자율성 기반 둔 민간 역할 강화
정부는 메이커 운동에서 혁신성장과 창업의 길을 찾고 있다. 2018년 메이커 운동에 382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 확산 방안’을 발표한 것도 그 가능성에 투자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메이커 운동이 사회 저변으로 확산돼 경제 전반에 혁신을 가져오고 창업 활성화를 이루는 바탕을 마련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부는 우선 국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전국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조성할 방침이다. 일반인을 위한 일반랩, 전문 메이커의 제조 창업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랩을 2018년 75개 조성하고 2022년까지 367개를 확충할 계획이다. 특히 기존 운영 중인 126개 메이커 스페이스 중 92개가 공공부문에서 주도하고 있는 사실에 의거, 민간의 역할을 확대해 자율성을 담보하기로 했다.
국민의 자연스러운 참여와 자발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지원도 강화한다. 메이커 활동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수요자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전문 메이커를 육성할 계획이다. 초·중·고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 일반인, 퇴직자 모두 메이커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유능한 아이디어가 사업화·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지원도 집중한다. 우수 아이템에 대한 시제품을 제작하고 초도물량을 양산해 공공펀드 등을 통해 자금도 지원할 예정이다.
2018년 ‘혁신성장’ 예산은?
제조업·서비스업 생태계 혁신 개편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술개발 투자를 1조 2000억 원에서 1조 5000억 원으로 확대한다. 스마트공장 보급 등을 통해 제조-ICT 융합과 생산 프로세스를 혁신해 제조업으로 확산할 예정이다.
혁신성장 거점 구축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를 구축하고, 200억 원을 신규 투입해 기업 투자와 지역 성장거점을 육성하는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사회적 기업을 위한 자금 지원도 이뤄진다. 여기에는 판로 지원 플랫폼 구축에 12억 원, 모태펀드 신규 조성에 100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사람·정보·공간 연결 위한 규제 개선
국가가 보유한 32만 개의 데이터를 민간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정보 공유 인프라를 구축하고 데이터 프리존 지정, 자율주행차 주행데이터 공유센터 구축에 각각 10억 원을 투자한다. 제조서비스 융합을 기반으로 신 비즈니스의 안정성·시장성 검증과 규제 개선에 14억 원을 투입한다.
혁신자본 공급 확대 및 혁신 위험 분담
혁신형 금융자본 지원을 확대하고 재기 지원과 사내 창업 지원 강화를 통해 혁신 창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특히 인재 양성 강화에도 투자해 과목 간 융합형 교육, 교원연수, 학교 밖 SW교실, K-MOOC 콘텐츠 등의 예산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