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종식에 만전을 기하면서 AI 확산세가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6월 14일 기준 6월 5일 위기경보가 최고 수위인 ‘심각’으로 격상한 지 9일 만이다. 이날 오후 6시 기준 AI 의심 건수는 6월 10일 경남 고성에서 의심 신고 2건이 들어온 이후 더는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상향 조치되면서 실시한 살아 있는 가금류 유통 금지 조치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AI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최장 21일 가량이므로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보고 “소규모 농가에 재난 문자를 계속 발송하고 일제 점검을 실시하는 등 복합적인 방역 조치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경남과 동쪽 지역에 재난 문자를 집중적으로 발송하는 등 방역에 집중하고 있다. 이 밖에 GPS가 등록된 축산 차량을 식별할 수 있도록 ‘축산 차량’ 스티커를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6월 13일에는 6월 7~10일 사이 확인된 AI 의심 사례 14건에 대한 정밀검사 결과 고병원성 H5N8형 AI로 확진됐다. 이날 확진 결과가 나온 지역은 전북 완주(1농장), 군산(4농장), 익산(2농장), 임실(4농장), 순창(1농장)과 경남 고성(2농장) 등이다. 이미 확진 판정을 받은 21건까지 포함하면 6월 2일 제주에서 첫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확인된 35건의 의심 사례가 모두 고병원성으로 확진됐다.
제주는 오골계 잠복기가 종료되면서 큰 고비를 넘겼다. 제주 애월읍 농가 2곳이 전북 군산에서 들여온 오골계 AI 바이러스 잠복기가 6월 14일자로 끝났다. 오골계를 제주에 들여온 5월 25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날이 AI 최장 잠복기인 21일째다. 제주는 오골계로 인한 추가 발병 걱정을 한시름 던 셈이다. 이외에 정부가 AI 이동 제한을 해제한 뒤인 5월 14~31일 도외에서 가금류를 반입한 농가들의 잠복기도 6월 11일 한 곳만 제외하고 끝났다. 남은 한 곳은 5월 31일 전북 익산에서 가금류 2300마리를 들여온 제주 농가로 이미 간이 검사에서 AI 음성 판정을 받아 발병 가능성은 낮다. 제주도 관계자는 “잠복기가 끝나더라도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며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겠다”며 “살처분 사후 관리, 공항과 항만 불법 반입 단속 등 당분간 비상 체제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북에서도 AI 확산세가 진정되고 있다. 6월 13일 전북 축산당국에 따르면 AI 의심 신고는 6월 9일 이후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축산당국은 통상 2주인 닭의 AI 잠복기를 고려해 주말인 6월 16일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상황을 지켜본 뒤 AI 의심 신고가 없으면 방역 조치를 완화할 계획이다.

▶ 6월 9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AI 중앙사고수습 본부에서 관계자들이 AI 발생 현황지도를 보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왼쪽). 6월 9일 제주 애월읍 AI방역 현장을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현장관계자의 설명을 듣고있다. ⓒ뉴시스 ⓒ연합
가축거래상인 살아 있는 가금류 유통 전면 금지
앞서 6월 9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AI 신고가 최초로 접수된 제주 애월읍 상가리 일대 방역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이준원 농림식품부 차관, 박봉균 농림축산검역본부장 등이 동행했다. 이 총리는 제주시장에게서 제주시 방역 추진 현황을 보고받은 후 방역 현장 근무자들을 격려했다. 6월 10일에는 전북 군산 농업기술센터를 방문해 AI 방역 상황을 점검했다. 이 총리는 송하진 전북도지사, 문동신 군산시장 등에게서 방역 추진 상황을 보고받고 AI 방역상황실 근무자들을 격려했다. 이 총리는 “AI의 빠른 극복을 위해 농식품부와 농협 등 관계기관은 인력과 예산 등 가용한 재원을 최대한 활용하라”며 “군·경이 살처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으니 잘 연계해 방역 활동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6월 11일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가축방역심의회를 열어 6월 12일 0시부터 6월 25일 자정까지 2주간 가축거래상인이 살아 있는 닭·오리 등 가금류를 유통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 6월 5일 광주 북구 말바우 시장에서 구청 방역관계자가 소독을 하고 있다. ⓒ조선DB
앞서 정부는 6월 5일 전국 전통시장과 가든형 식당의 살아 있는 가금류 유통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AI가 가축거래상인 등을 통해 소규모 농가로 확산하자 유통 금지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방역 조치가 확대 시행되는 데는 전북 군산의 종계농장과 거래를 해온 중간유통 상인들이 전통시장을 드나들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6월 12일부터 시행되는 조치는 가축거래 내역 관리대장 작성 등 축산법에 등록된 가축거래상인의 준수사항 점검과 가금·계류장에 대한 AI 검사가 이뤄졌다. 축산법에 등록되지 않은 가축거래상인도 단속 대상에 포함된다.
농식품부는 6월 7일부터 전북과 제주 등 AI 발생지역에 한해 시행 중인 살아 있는 가금류의 다른 시·도 반출 금지 조치 역시 6월 11일 자정부터 6월 18일 자정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모든 시·도에서 시행하기로 했다. 도축장·부화장에서 살아 있는 가금류를 출하할 경우에는 방역당국에서 실시하는 출하 전 검사 및 승인 등 강화된 방역조치를 이행할 경우 허용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6월 11일 오전 열린 AI 일일점검회의에서 “군산 농장이 언제, 누구에게 팔았는지 기록이 없고 기억도 잘 못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다른 구입처도 있을 수 있다”며 “군산에서 직접 사들인 가금류가 아니라 중간유통 상인을 통해 가금류가 유통돼 AI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방역체계가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어 “H5N8형 AI는 그동안 인체 감염 사례가 없지만, 혹시 모르니 방역 인력관리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며 “인수 공통 전염병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AI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고 당부했다.
소상공인에 경영안정자금 지원 검토 및 태국산 달걀 수입 결정
정부는 AI로 인해 전통시장에서 가금류와 달걀 등 가금류가 생산하는 물건을 판매하는 닭·오리 판매상 등 소상공인의 경영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중소기업청과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그동안 사육농가에 가금류 이동 제한으로 인한 추가 사육비용 발생, 상품가치 하락, 입식 지연에 따른 기회소득 상실 등에 대해 소득안정자금을 지원해왔으나 전통시장 가금류 판매상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
정부는 AI로 인해 치솟은 달걀값을 안정화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6월 2일 AI가 재발한 이후 특란 30개의 소비자가격이 6월 12일 기준 7957원으로 118원 상승했으나 지난 6월 9일 태국산 달걀 수입을 허용하면서 달걀값은 조만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태국산 달걀은 태국 정부가 농산물우수관리인증(GAP), 식품관리인증(HACCP) 등을 부여한 농장과 작업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살모넬라 등에 대해서는 한국의 기준과 규격을 준수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면 수입이 중단될 수 있다. 정부는 태국산 달걀에 대한 수입위생평가를 마쳤으며 수입을 위한 마지막 절차인 수입위생 요건 및 수출위생증명서에 대해 태국 정부와 협의를 마쳤다. 태국산 달걀 수입이 허용되면서 달걀 수입 국가는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을 포함해 총 7개국으로 늘어났다. 태국산 달걀은 현지 원가가 1알에 70원 정도며 이르면 6월 19일부터 매주 230만 개씩 국내에 들어온다.
장가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