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풍력발전소는 산불의 상처를 딛고 건립된 곳이다. 대형 산불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땅에서 재생에너지 생산을 시작한 것이다. 영덕 풍력발전소는 에너지를 넘어 지역의 재생까지 일궈낸 희망 발전소이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산24번지. 이곳은 바람의 언덕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곳이다. 낮은 고도인데도 해안에서 불어온 강한 바람으로 땅 위의 모든 것이 휘청거렸다. 차에서 내리기 위해 열었던 문이 저절로 닫힐 지경이었다. 이곳의 평균 풍속은 1초에 7m. 풍력발전기를 세우려면 초속 5m 이상의 풍속이 필요하다. 거센 바람 덕에 24개의 발전기는 ‘윙윙’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갔다.
이곳은 1997년 큰 산불을 겪었다. 당시 영덕읍 우곡리에서 시작된 산불이 바람을 타고 하루 만에 창포리까지 옮겨 붙었다. 창포리는 물론 산 아래 하저리, 대부리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마을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3일 동안 계속된 산불로 산은 민둥산이 돼버렸다. 재난 이후 지역 발전을 고민하던 지자체는 사계절 바람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풍력발전단지를 유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불이 풍력발전단지 조성을 도운 셈이다. 산불 덕에 발전소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새로 닦을 필요가 없었다.
풍력발전은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기술이다. 경북 영덕 풍력발전단지는 친환경 청정에너지의 대표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영덕 풍력발전소는 타 풍력발전단지에 비해 해발고도가 낮지만 해안에 인접해 있어 내륙과 해안의 바람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관광자원으로서의 시너지 효과도 냈다. 이곳은 16만 6117㎡의 면적으로 사업비 675억 원에 1년여 간의 건설을 거쳐 2005년 3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총 시설용량은 39.6MW로 1650kW급 풍력발전기 24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발전량은 연간 9만 6680MWh이다. 약 2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영덕군민 전체가 1년간 쓸 수 있는 양이다. 동해안 지역은 연평균 풍속이 5~7.5m/s를 유지해 국내 어느 해역보다 자연 조건이 우수하다.
에너지 패러다임, 그 중심에 풍력발전이 있다
풍력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은 설치 면적이 적다는 것이다. 태양광과 비교하면 출력 단위 면적이 1/4 정도로 적다. 같은 면적이라면 전력 생산력이 좋아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원자력이나 석탄 화력처럼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대표적인 친환경적인 에너지이다. 영덕의 경우 산불이라는 특수한 조건 덕에 산림 훼손의 우려도 없었다. 재생에너지는 이처럼 깨끗하고 고갈될 염려가 없을 뿐 아니라 무공해 재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에너지 밀도가 낮아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실용성이 적고, 기후와 지역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위치 선정이 쉽지 않다. 이러한 난관 속에서도 세계의 흐름은 ‘탈원전’과 ‘친환경 대체에너지’이다. 정부의 에너지정책 역시 ‘안전’과 ‘환경’이라는 핵심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원전과 석탄의 대체에너지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풍력발전은 기술력이 기반이 되면 세계 시장을 주도하며 화석 연료 고갈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꾸준히 개발·지원해야 할 기술이다.
관광 명소로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 잡았다
영덕 풍력발전소는 정상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있어 편안하게 경치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만나는 곳. 앞쪽으로는 포항 구룡포 호미곶이 어렴풋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백두대간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풍력발전기와 진초록의 해송, 청명한 바다 색깔이 차례로 포개져 겨울에도 풍경이 밋밋하지 않다. 낯선 모습으로 서 있는 발전기와 붉게 떠오르는 일출은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장점 덕에 풍력발전단지는 영덕에서 일출의 명소로 손꼽힐 정도다. 세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묵은 근심을 날리고, 일출을 보며 새해 소망을 담기에 제격인 곳이다. 실제로 2017년 ‘영덕해맞이축제’ 기간인 2016년 12월 31일과 2017년 1월 1일 이틀간 차량 8만 대, 관광객 25만 명이 방문했다.

▶ 동력체험관: 자전거 페달 동력을 전기에너지로 바꿔준다. 페달을 밟으면 불이 들어오고, 날개가 돌아가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을 직접 느낄 수 있다. ⓒC영상미디어

▶ 풍력발전에너지체험관: 영덕의 풍력발전단지를 축소해놓은 모형. 영덕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및 발전상황, 세계의 풍력발전 현황을 영상으로 소개한다. ⓒC영상미디어
영덕군에서는 풍력발전단지의 특성을 이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고 있다. ‘달맞이 야간산행’(3~11월 운영)은 날씨가 풀리면 꼭 한 번 즐겨봐야 할 프로그램이다. 매월 보름 둥근달이 뜬 풍력발전단지를 걸으며 달을 감상하고 각종 공연을 즐기는 일종의 달맞이길이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풍력발전단지 일대에 조성된 전동휠 체험장(2~11월 운영)도 관광객들로부터 호평 받고 있다. 왕발통으로 알려진 전동휠로 풍력발전단지 내 5㎞가량의 탐방로를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 영덕군은 2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전동휠 24대를 구입해 대여하고 있다. 체험장에는 안전도우미 2명을 상시 배치해 사용법 교육과 안전장구 착용 등을 돕는다. 풍력발전소 주변 관광지로는 영덕해맞이공원과 강구항, 영덕대게 원조마을 등이 있어 시각과 미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다. 산불에 주저앉았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영덕에서 풍력발전은 희망 에너지이기도 하다.
영덕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누르고, 돌리고, 던지면서 에너지 원리 익힌다
풍력발전단지 내에는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있다. 영덕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은 2007년 경북 동해안 지역의 ‘청정에너지 특구 지정’ 사업의 하나로 82억여 원이 투입돼 3년 만에 건립되었다. 전시관은 2188㎡의 2층 규모로, 1층은 휴게카페와 편의시설, 2층은 태양과 바람·물·지열·바이오매스 등을 이용한 신재생에너지 전시시설과 태양열을 이용한 창포 족욕탕 등으로 꾸며졌다. 다양한 영상과 체험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 유치원생부터 학생,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관람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9년 9월 개관 이래 현재까지 47만 명이 관람해 연간 약 10만 명이 찾는 체험학습 전시관이다. 올해는 12월 초 현재 12만 5000명이 다녀갔다. 풍력발전단지와 더불어 영덕군의 대표적인 명소로 각광받는 곳이다.
몸으로 익히는 에너지 원리
신재생에너지전시관답게 건물의 작은 부분까지 환경과 에너지에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화장실에 절전 수전과 동작 인식 전구 설치는 기본이고, 태양광 발전으로 자체 난방도 하고 있었다. 가장 인기 있는 창포룸은 태양열로 데운 창포물로 족욕을 할 수 있게 꾸며놓은 곳이다. 개인 족욕기가 기본이라 위생적이고, 자연 마루와 넓은 창으로 꾸며져 여행의 피로를 기분 좋게 풀어준다. 에너지전시관 입구에는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는데,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페달과 연결된 전구에 불이 들어오며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자전거 페달을 활용해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자동차를 이용해 수소에너지 발전도 알아볼 수 있다. 자동차 외부를 투명한 아크릴 판으로 만들고 연료의 흐름을 LED로 연출해 연료 전지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자동차 옆에는 실제 운전대를 전시해 시동 버튼을 누르면 수소 에너지 발전 영상이 나오도록 했다. 전시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디테일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이다. 야외에도 빛을 이용한 프리즘 체험 코너와 앉으면 음악이 나오는 태양광 벤치 등 에너지 놀이터가 있다. 전시관 옆 언덕에는 동해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설치하고 고성능 망원경도 갖춰놓았다.

▶ 수소에너지발전(자동차)체험관: 연료의 흐름을 LED로 연출해 수소에너지의 생성부터 소모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C영상미디어
전시관에서 교육과 여가까지 책임진다
영덕군은 지역 학생들을 위해 재생에너지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교육하고 있다. 기본 전시인 풍력을 이용한 바람개비 돌리기,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자동차 운전하기, 각종 폐품을 활용한 에너지 생산 등 재생에너지 체험 활동은 물론, 빈 과자 상자를 이용한 태양열 조리기(Solar Cooker) 만들기와 태양열 복사열 에너지를 모아 핫도그를 만들어 먹는 다양한 활동으로 태양열 에너지를 실생활에 접목하는 체험을 한다. 체험 활동을 마친 학생들은 “우리 생활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재생에너지를 쉽고 재미있게 배웠다”며 입을 모아 말한다. 프로그램 참여 외에도 사전 예약을 하면 에너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으니 신청을 서두르자. 신재생에너지전시관 주변에는 영덕 풍력발전단지뿐만 아니라 바람개비공원, 하늘정원, 그린 어린이 놀이터, 항공기 전시장, 해맞이 축구장, 오토캠핑장 등 다양한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동해안의 멋진 풍광은 덤이다.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은 볼거리는 물론 교육과 휴식을 한번에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info
영덕 신재생에너지전시관 관람 안내
주소: 경북 영덕군 영덕읍 해맞이길 254-20
전화: 054-730-7052~3
시간: 09:00~18:00
요금: 일반 1500원/청소년·어린이 800원
문화관광해설사 서비스: 054-730-6533 (사전예약)
“풍력발전 덕에 마을 경제에도 순풍이 붑니다”

천용태(65·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이장)
창포리는 청어과메기의 본산지로 바닷바람에 청어를 말리는 것이 주업인 곳이다. 조용하던 마을이 쑥대밭으로 변한 건 20년 전 일어난 대형 산불 때문이었다. 해송으로 푸르던 뒷산이 까만 민둥산으로 바뀌었고, 매캐한 냄새가 곳곳에서 진동을 했다. 모두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시작된 것이 풍력발전단지였다. 창포리의 천용태 이장은 “당시 반대 여론이 전혀 없었습니다. 산불 이전이었다면 산림 훼손이나 보상 문제로 반대 의견도 있었을 테지요”라고 말했다(발전기 24기 중에 3/4이 창포리에 설치).
천 이장은 단지 조성 이후의 변화 중에 마을 경제를 첫째로 꼽았다. 창포리 경제는 풍력발전소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풍력발전소는 내부 직원도 적고,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라 직접 고용 효과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관광지로 한번 이름이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더라고요. 그런 간접적인 영향이 굉장히 컸어요.”
실제로 영덕 풍력발전단지와 해맞이공원 등이 관광지 필수코스로 인식되면서 버스로 방문하는 단체 관광객부터 가족 단위 여행객들로 청어과메기 판매가 급증했다. 덩달아 식당과 숙박업소도 북적여 마을에 큰 활력이 됐다. 최근에는 풍력발전소를 건립하려는 지역에서 소음이나 전자파에 대해 물어오는 일이 많다.
“발전소가 산꼭대기에 있으니까 인가와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느껴지는 소음은 전혀 없습니다. 전자파 관련해서도 안전기준을 통과했고, 20년 동안 마을에 큰 병이 돌거나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한 일도 없으니까요.”
풍력발전소 측에서는 인근 마을과 주기적인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소통창구가 유지되고 있다. 발전소는 장학자금이나 마을 행사 지원을 이어가며 지역 일원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물론 발전소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면 이런 관계가 유지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천용태 이장은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에 지금은 같이 발전해가는 상생관계입니다”라고 말하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강보라 |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