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게 쉬운 문제는 인간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어려운 문제는 인간에게 쉽다”는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의 패러독스가 있다. 바둑과 같은 영역은 인공지능이 강하지만 축구와 같은 영역은 인간이 더 잘한다. 이는 반복되는 룰을 찾는 효율은 로봇이 담당하고, 반복되지 않는 혁신은 인간이 담당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모라벡이 주창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상을 다시 살펴보려는 이유다.
미국의 경영 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2015년 미국 내 800개 직업을 대상으로 업무 활동의 자동화 가능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800개 중 5%만이 자동화 기술로 대체되고 2000개 업무 활동 중 45%만이 인공지능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인간이 수행하는 업무 중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4%의 업무, 감정을 인지하는 29%의 업무는 인공지능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즉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일자리 전체가 로봇으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일부만이 그렇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간은 반복되는 일을 도와주는 인공지능 비서를 활용해 업무를 진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공지능 아바타의 업무를 융합하는 수단으로 스마트폰 챗봇이 중요해질 것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저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노동과 놀이의 차이가 수단과 목적의 분할 및 통합에 있다고 말했다. 목적과 분리된 수단인 노동은 소위 ‘반복되는 삽질’이라 재미가 없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본질적으로 노동과 놀이가 통합돼 있었으나 산업혁명에 의해 효율적으로 분업화되면서 노동과 놀이가 분리됐다.
현재의 고통을 참는 대가로 임금을 받아 미래의 생활과 놀이에 소비하는 것이 1, 2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의 삶이었다. 한편 3차 산업혁명에서 등장한 놀이가 노동화되는 프로화 현상은 4차 산업혁명에서 일반화 될 것이다. 이는 개인 비서인 아바타 로봇과 융합하는 호모 모빌리언스라는 인류의 새로운 진화 형태다.
이제 노동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분리됐던 목적과 수단, 재미와 의미가 재결합하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우선 반복되는 육체적·정신적 노동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대체돼 인간과 협업을 이룬다. 그럼으로써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해지고 좀 더 창조적이고 감성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분리됐던 생산과 소비가 자가생산(DIY)의 등장으로 통합된다. 결과적으로 목적과 수단이 재통합되는 사회가 등장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노동과 놀이 사이에 중간 영역인 일이 존재한다. 헨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주창한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인간으로서 무언가 창조하고 만드는 일을 하는 인간상이다. 놀이가 현재 나의 재미를 추구한다면 일은 미래 모두의 의미를 추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복되는 노동은 물론 아니다. 인간은 목적과 수단을 결합하는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와 의미를 통합하게 된다.
이제 인간의 역할은 의미를 추구하는 호모 파베르와 재미를 추구하는 호모 루덴스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세분화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전체를 ‘호모 파덴스(homo fadens)’라는 신조어로 정의한 바 있다. 이는 현재의 고통을 즐기면서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의미한다.
노동과 일을 각각 인간과 로봇이 나눠 맡는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더 적은 시간에 제공하는 역량을 갖춰 업무 시간이 단축되고 놀이 시간이 증가할 것이다. 미래 사회에 인간과 로봇은 각각 창조적인 일과 반복적인 일을 분담한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미래에 사라질 스펙 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다.
미래의 인재상은 ‘협력하는 괴짜’라고 제언한다. 협력하는 괴짜를 키우는 4차 산업혁명의 교육 개혁이 필요한데, 이는 프로젝트 중심 교육과 클라우드 기반 교육(MOOC)으로 구성된다. 혁신과 융합이 가속화되는 미래 교육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learn how to learn) 평생교육으로 전환돼 사회와 교육이 클라우드에서 융합돼야 한다.
교육과 더불어 분배가 순환되면 4차 산업혁명은 인간에게 더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할 것이다. 가능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가능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보자. 인간을 위해 재미와 의미가 선순환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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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 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