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가까운 미래에 ‘인구 절벽’에 처하게 된다. 전 세계 꼴찌 수준인 현재의 출산율(1.17명/2017년 2월 통계청 발표)이 계속되면 2100년에 우리나라 인구는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난 23년간 6만여 건의 시험관 시술을 통해 3만 명 이상의 아기를 탄생시킨 불임 전문의로서 저출산 타개책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필자의 머리를 아프게 한 무거운 숙제다.
단언하건대 낮은 출산율은 정부의 육아·복지 정책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출산 및 육아수당을 듬뿍 준다고 해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구조와 인식의 변화 없이는 원천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
전 세계에서 출산 장려 정책을 가장 성공적으로 시행한 나라(2.08명/2016년 현재)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지난 1989년 합계 출산율이 1.7명으로 떨어지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출산 장려를 위해 적극 나섰다. 임신 8개월이 되면 임신준비금(1만 1000유로/한화 1360만 원)을, 아이를 낳으면 출산 보너스로 855유로(한화 약 100만 원/1회)를 지급했다. 직장 여성은 물론 전업주부에게도 3년간 매월 격려금으로 500유로(약 62만 원)를 줬다. 또한 출산 전후 9개월간 유아수당은 물론 교육비, 자녀 수만큼의 가족수당 등을 지급했다. 보육과 교육비를 걱정하는 여성에게 프랑스 정부는 기꺼이 비빌 언덕이 돼줬다.
프랑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맞벌이 부부가 보육 걱정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공교육 시스템을 개혁했다.
재정적 지원에 버금가는 문화 정책도 폈다. 공중파 방송국이 여성의 심금을 울리는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와 영화를 저녁 시간대에 연일 방영하도록 유도했다. 이게 효과를 봤다. 출산·보육수당과 맞물려 아이를 낳게끔 국민의 인식과 사회적 변화를 유도한 결과였다.
프랑스는 시대적 변화도 적시에 읽어냈다. 출산의 출발점을 ‘결혼’이 아닌 ‘임신’에 둔 것이다. 이에 따라 비혼 여성이나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합법화’했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낳으면 각종 혜택을 부여했다. 사회적으로 혼외자에 대한 편견도 없앴다.
2015년 우리나라 인구 센서스 분석 결과에 따르면 50세까지 결혼 경험이 없는 미혼자 비율은 남성 10.9%, 여성 5.0%로 나타났다. 남성의 ‘생애 미혼율’이 10%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에 따르면 남자는 결혼을 ‘못하고’ 여성은 ‘안 한다’고 한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 우리나라의 풍토상 미혼율의 증가는 출산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취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레 결혼도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추세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여성이 늘면서 결혼을 꺼리는 경향도 있다.
문제의 원인을 알면 해법이 보인다. 일자리를 늘려 취업이 수월하도록 하고, 출산·보육·주거비를 정부가 일정 부분 부담하면서 고비용 결혼 풍토를 개선하며, 비혼 남성(여성)이 원한다면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이제 ‘출산’은 ‘나라를 위한 일’, ‘애국하는 일’이 됐다. 당연히 국가적·사회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예컨대 직장 여성의 출산·보육 휴직 기간도 근무연수로 산입해 승진 등에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1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만났다. 그것도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여성들이었다. 의학적 측면에서 저출산 타개책은 바로 불임·난임률을 줄이는 것이다. 난임 부부가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만혼(晩婚)이다. 특히 여성이 고령일 경우 난소의 노화로 아기를 낳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정부는 결혼 계획이 없는 젊은 여성(남성)들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난자(정자)를 동결·보관할 수 있도록 ‘공공 난자(정자)은행’ 설치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출산과 양육의 기쁨을 느끼게 하고 공유하는 사회가 돼야 저출산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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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 마리아의료재단 대구마리아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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