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치분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지방자치단체로 대거 이양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역량을 강화하는 등 자치분권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우선 중앙정부의 권한과 기능 중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현장에서 더 잘할 수 있는 핵심 사무와 기능을 넘겨줄 계획이다. 또한 중앙정부는 핵심 사무와 기능만이 아니라 이에 관련된 재정과 인력도 함께 이양한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자치분권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상 사무 구분 기준의 구속력은 따로 없다. 이 때문에 개별 법률에 따라 국가(중앙정부)-시·도(광역자치단체)-시·군·구(기초자치단체) 사이에 일정한 기준 없이 사무가 배분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4만 6005개의 사무 중 중앙정부가 3만 1161개로 68%의 사무를 담당하고 있는 반면, 지방인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는 둘을 합쳐 1만 4844개로 32%의 사무를 담당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사무가 자치단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상황이다. 이것은 현재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권한이 자치단체보다 훨씬 많고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많은 사무와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해 지자체가 현장에서 잘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물론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사무와 권한을 지자체로 많이 이양한다고 해서 지방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점검·단속, 과태료 부과처럼 단순한 집행사무 위주의 이양으로는 지자체들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 권한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사무와 권한 이양과 관련한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 문재인정부는 국가와 지방,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간 사무 배분 기준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의 자치분권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교육·치안·지역경제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핵심 기능들도 포괄적으로 이양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사무 구분을 명확히 정립한다. 국가(중앙)와 시·도(광역), 시·군·구(기초) 간 합리적인 권한 배분을 위해 이들 사이에 명확한 사무 구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사무 재조정을 추진한다. 중앙정부인 국가는 전국적 규모의 통일성을 지닌 사무를, 광역자치단체인 시·도는 광역·종합적 기능을 가진 사무를,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는 주민 생활에 밀접성을 지닌 현장 사무를 담당하는 것이다.
법령을 제정·개정할 때 국가와 지방 간 사무 배분의 적정성, 자치행정·조직·재정권 등 자치권 침해 여부 등에 대한 사전협의제를 도입한다. 이 사전협의제는 중앙정부의 부문별한 사무 배분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일방적 행정·재정의 부담 전가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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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6일 전국시도지사간담회에 참석해 강력한 자치분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뉴시스
‘지방이양일괄법’ 제정해 주요 권한 패키지로 이양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의 정주 여건 개선 등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요 권한을 분야별로 묶어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패키지 이양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를 위해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을 추진하고, 이양에 따른 행정·재정지원도 검토할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월 26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국가 기능의 과감한 지방 이양에 나서겠다”며 특히 “내년부터 ‘포괄적인 사무 이양을 위한 지방이양일괄법’의 단계별 제정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중앙정부 권한의 획기적 지방 이양 전략이 담긴 행정안전부의 ‘자치분권 로드맵(안)’에는 광역단위 자치경찰제 도입 내용도 담겨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치안·복지·정주 여건 등 현장 단위의 종합행정을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민생치안서비스 중심의 자치경찰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경찰은 전국적 규모의 치안 수요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고, 자치경찰은 지방행정과 연계성을 갖는 지역 주민 밀착형 치안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역별로 다양하게 요구되고 있는 치안서비스에 적극 부응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자치발전위원회 등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광역자치경찰제 도입을 위한 ‘자치경찰법’(가칭) 제정을 검토하고, 이를 시범 실시한 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분권 모델도 완성된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중앙정부는 다섯 차례에 걸쳐 총 4537건에 이르는 제도 개선을 단행했다. 자치분권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이를 넘어 현재 ‘특별자치도’인 제주도에 대해 지역 주민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관광·환경·산업 분야에 대한 정책 결정권을 중앙정부가 제주도에 추가로 이양할 계획이다. 조세와 재정 분야의 분권 과제를 추가로 발굴해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지방교육의 창의성과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도교육청 및 단위 학교들에게 중앙정부가 갖고 있는 유아·초중등 교육 권한 일부를 이양한다. 또 시·도와 교육청 간 인사 교류를 실시하고, 교육 관련 예산을 사전에 협의하며, 관련 사업을 추진할 때에는 서로 협력하는 등 교육자치와 일반자치의 연계·협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된다.
“중앙 권한을 지역민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이양”
“지방분권은 중앙정부를 허약하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비대하고 과잉 상태인 중앙을 간결하고 신속한 구조로 만들어 더 강하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변신시키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스위스와 독일, 그리고 북유럽 국가들의 지방분권과 자치 모델을 연구하고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분권 연구로 유명한 안성호 대전대 교수가 자치분권 논의에 대해 한 말이다. 지난 11월 21일 인터뷰에 응한 안 교수는 “자치분권 논의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대목이 우리나라의 지방분권 수준”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역대 많은 정부에서 지방분권 정책을 내놨던 게 사실”이라며 “지방선거와 제주특별자치도 성립이 역대 정부가 실시한 지방분권 정책의 대표적 성과”라고 했다. 문제는 이 두 성과를 제외한 전체적인 지방분권 수준은 오히려 정체돼 있거나 후퇴한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인구 4000만 명 이상인 10개 국가의 광역정부 수준을 보면 한국은 터키 다음으로 중앙집권화가 강한 나라로 나타난다”며 “국제적 기준에서 지방분권, 자치분권적이기보다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국제적 기준을 떠나 우리의 지역 내부 상황, 특히 열악한 지자체들의 재정 상황은 미약한 지방분권화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다.
안 교수는 자치분권을 위한 방편으로 중앙의 권한과 역할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안 교수는 “중앙의 권한과 역할을 지방으로 이양해준다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들, 또 지방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에게 넘겨주는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중앙이 갖고 있던 권력을 국민 또는 지역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자치분권 논의와 중앙정부 권력의 지방 이양 논의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지역 주민의 민주적인 참여”라며 “지역 현안에 대해 주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이 장치가 마련된 상태에서 이양이 이루어져야 주민을 위한 실질적 자치분권이 가능하다”고 했다.
안 교수는 유럽의 소국이자 산악 지형의 자원 빈국인 스위스가 지방분권을 통해 강한 나라로 성장한 부분은 지방 자치분권을 추진하는 한국에 좋은 연구 대상이라고 했다. 그는 단방제 국가이면서도 연방제 국가 못지않은 지방분권 시스템을 만들어낸 북유럽 국가들의 자치분권 모델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지역 주민들이 세금, 특히 세율을 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를 갖춘 곳이 많다”며 “이것은 과세권을 중앙이 아닌 지방이 갖고 있지만, 그런 과세권에는 주민의 의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 같은 사례들을 통해 자치와 분권의 원리가 잘 반영된 구조를 찾아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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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호 대전대 교수 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조동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