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서 그리던 나만의 창작물이 현실화된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다소 복잡한 과정과 필요한 장비 탓에 망설인 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IT 기술의 진화가 개인 수준에도 제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돼 변화가 일어나는 차세대 산업혁명,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풍랑이 몰려오고 있다. 인간이 해오던 역할을 AI 또는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감과 동시에 IT 융합서비스가 만들어낼 세상에 대한 기대도 크다. 지능정보기술이 초고속·초연결 플랫폼을 조성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경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도 지배적이다. 이미 비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인 3D 프린터, CNC(컴퓨터 수치 제어), 레이저 커터 등은 개인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생산할 수 있는 시대로의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메이커(Maker) 운동’도 4차 산업혁명의 구심점으로 각광받고 있다. 메이커 운동은 미국 정보통신 전문 출판사인 오라일리가 2005년 <메이크(MAKE:)>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데일 도허티 부사장이 주창한 개념이다. 이때 메이커는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기업인 마크 해치는 저서 <메이커 운동 선언>에서 메이커를 ‘새로운 만들기를 이끄는 새로운 제작 인구’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것을 직접 생산하는 DIY(Do It Yourself, 스스로 하기) 개념의 메이커는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공유의 시대 속 메이커는 ‘함께하기’의 개념으로 진화했다. 메이커들은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하고, 이때 쌓은 경험과 지식을 네트워크를 통해 나누면서 또 다른 창의적인 성과물을 활발하게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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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메이커 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
진화하는 메이커, 공유 기반 창작물 생산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4년 백악관에서 ‘메이커 페어’를 열고 이 자리에서 “오늘의 DIY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메이커 운동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부각되면서 우리 정부도 메이커 문화 확산 발걸음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메이커의 창의적 창작활동 등을 지원하는 ‘메이커 운동 활성화 지원사업계획’을 공고하고, 11월 2일까지 지원 대상자를 모집한다. 이 사업은 국내 제조 창업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메이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앞서 5월 1차로 28개 메이커를 선정하고 지원한 데 이어, 2차 모집을 통해 ▲메이커 창작활동 ▲메이커 모임 ▲찾아가는 메이커 교육 운영 등 3개 분야에서 총 53개 메이커를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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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D 프린터로 만든 로봇 캐릭터의 모습 ⓒ연합
구체적으로는 창작활동에 대한 시제품 제작비용을 총 100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하며 메이커 모임에 대해서는 이종 분야 융합형 창작활동, 제품 혁신, 사회문제 해결 및 메이커 교육 방법론 연구 등에 소요되는 활동비용을 모임당 200만 원 내에서 지원한다. 특히 이번에는 메이커 교육의 소외 지역인 농산어촌, 도서벽지 등을 직접 방문해 메이킹 활동을 지원하는 ‘찾아가는 메이커 교육 운영 사업’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사업 운영 단체는 메이커 이동 교육에 필요한 교통비, 재료비 등 운영비용을 2000만 원까지 지원 받을 수 있다.
1차 사업은 ▲메이커 창작활동 ▲지역 메이커 문화 확산 행사 ▲지역 메이커스 네트워크 기반 복합 프로젝트 ▲메이커 모임 등 4개 분야를 지원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팀 단위 메이커 ‘뚝딱뚝딱’은 창작활동을 지원 받아 태양열을 활용한 네온사인을 제작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팀은 대다수 간판이 전력을 대량 소비하고 미관상 깔끔하지 못하다는 단점에 주목했고, 낮 동안 태양광 패널로 충전한 전기 에너지를 네온사인의 간판 기능에 활용하도록 했다. 현재 프로토타입(prototype)은 완성됐으나 세부적인 기능을 강화하는 단계라는 게 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람이 간판을 직접 켜고 꺼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도록 간판에 인터넷을 입혀 애플리케이션에서 제어하게 한다. 뚝딱뚝딱 팀은 “메이커 지원 사업을 통해 구상만 하고 있던 부분을 가시화할 수 있었다”면서 재정 지원, 지속적인 관리, 멘토 연결 등과 같은 세부적인 지원을 장점으로 들었다.
지역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메이커 문화 확산에 앞장서는 활동도 있다.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복합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메이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제로 투 메이커’, 교육받은 메이커들이 협업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메이커 투 메이커’, 메이커들이 만든 시제품을 사회에 진출시키는 ‘메이커 투 마켓’이다.
주최 측은 부산 지역에서 메이커 문화 인지도를 높이고 메이커 기반 창업 사례를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종민 연구원은 “메이커를 위한 장비, 공간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발전하고 있으나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같은 국내 문화 환경은 미국, 유럽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고 나도 이미 메이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이커에 필요한 덕목
만들라 |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우리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만들고 창조하고 표현함으로써 충족감을 느낀다. 물건을 만드는 일은 우리에게 굉장히 특별한 일이기에, 우리가 만드는 물건은 우리의 일부가 되고 영혼의 조각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나눠라 | 만든 물건, 만드는 과정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메이커에게 온전한 충족감을 선사한다. 만들기만 하고 나누지 않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줘라 | 만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행위만큼 이타적이고 만족스러운 행위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물건에 자신의 일부를 담기에, 그걸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주는 것과 같다. 그렇게 만든 이의 영혼이 담긴 물건은 누군가에게 전해져 그 사람의 소중한 물건이 된다.
배워라 | 만들려면 배워야 한다. 만들기에 대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솜씨가 서툴든 뛰어나든 만드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늘 배울 것이고 배우고 싶을 것이며, 새로운 기술과 재료, 프로세스를 배우려고 애쓸 것이다. 평생 학습의 길을 터놓으면 풍부하고 보람찬 만들기 인생을 영위할 수 있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눌 수 있다.
도구를 갖춰라 | 프로젝트에 필요한 도구는 언제든 사용 가능해야 한다.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구입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반드시 알아두자. 오늘날 우리가 쓸 수 있는 최신 도구는 그 어느 때보다 저렴하고 편리하며 강력하다.
즐겁게 만들라 | 노는 기분으로 즐겁게 만들다 보면, 놀랍고 흥미로우며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발견에 이를 것이다.
참여하라 | 메이커 운동에 참여해 만들기의 재미에 눈뜬 사람들에게 손을 뻗자. 커뮤니티 내의 다른 메이커들과 함께 세미나, 파티, 이벤트, 메이커의 날, 페어, 엑스포, 강의를 개최하고 저녁 모임을 갖는다.
후원하라 | 메이커 운동도 운동이므로 심리적·지적·경제적·정치적·제도적 후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주역이다. 우리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책임이 있다.
변화하라 | 메이커로 성장하는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올 변화를 받아들이자. 만들기는 인간의 본성이므로 만들기를 통해 스스로 더욱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자료 / <메이커 운동 선언>
이근하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