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먹거리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화학제품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관련 예산을 대폭 늘렸다. 여기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을 위한 100억 원도 포함됐다.
11월 7일 오전 방문한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종합지원센터’ 콜센터는 상담직원들이 전화를 받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열네 명의 상담직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인들의 전화 질의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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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습기 살균제 피해 전용 상담실에서 종합지원센터 직원이 상담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가습기살균제종합지원센터(이하 종합지원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듣고, 구제 방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김준수 전임연구원은 “정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지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지정 의료기관을 선정해 피해자가 제대로 된 보상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직원들에게 어려움을 묻자, “사망, 폐질환 등 큰 질병부터 피부병, 감기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물론 정확하게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으로 입증된 질병도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질병은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최대한 피해자들의 상황을 듣고, 지원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종합지원센터의 일이다.
지난 10월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인정 신청자 총 5872명 중 2196명에 대한 조사 및 판정이 끝났다. 이 가운데 377명은 피해자로 인정받았지만, 1819명은 인정받지 못했다. 인과관계 입증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간 인과관계 정도에 따라 ‘가능성 거의 확실’, ‘가능성 높음’, ‘가능성 낮음’, ‘가능성 거의 없음’ 등의 순으로 1~4단계로 나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 예산 100억 원 투입
정부는 지난 10월 더 많은 피해자가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가습기 살균제 피해 3단계 판정자 208명 가운데 구제급여 지원을 신청한 109명에 대해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지원금액은 정부 지원 대상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구제급여와 동일한 수준으로 의료비(본인 부담액 전액, 일부 비급여 항목 포함), 요양생활수당, 간병비, 장의비, 구제급여조정금 등 일곱 가지 항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18년도 예산안은 국민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예산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도 쓰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에 대해 국가도 책임을 함께하겠다”며 “피해자들이 피해 구제를 받는 데 차질이 없도록 가습기 특별구제계정에 정부가 100억 원을 신규 출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유사한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살생물제(유해생물 제거·제어 물질) 안전관리 예산 183억 원도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지원금 100억 원은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결정됐다. 정부는 당시 예산안에 ‘가습기 특별구제계정’에 예비비 100억 원을 책정했다. 가습기 특별구제계정은 1250억 원이 조성되는데 이 중 1000억 원은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가, 250억 원은 원료물질 사업자가 분담한다.
당초 가습기 특별구제계정은 가해 기업들만 부담할 예정이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의 면담에서 “특별구제계정에 일정 부분 정부 예산을 출연해 재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부 예산안에도 들어가게 됐다.
또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되는 피해자보건센터도 기존 한 곳에서 네 곳으로 늘어난다. 피해자보건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건강 모니터링, 가습기 살균제 관련 정보 수집,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발굴, 유사 피해 방지를 위한 홍보 업무, 가습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활동 등을 한다.
나아가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방지를 위해 살생물제 관리제도를 도입하고 흡입독성 시험시설도 구축(내년 예산 183억 원)하기로 했다.
또 최근 살충제 달걀 사건 등을 계기로 독성물질 사태 예방을 위한 안전검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내년에 233억 원을 투입해 친환경 축산농가에 정기적으로 잔류 농약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각종 동물 전염병이 늘어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밀집사육을 줄이기 위해 90억 원을 투입해 밀집지역 재편 시범사업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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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8월 8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면담하며 울먹이는 피해자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연합
2018년 ‘국민 안전’ 예산은?
미세먼지 대응
대기질 개선을 위해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 및 전기차 보급 지원을 확대한다. 매연에 취약한 어린이 건강 보호를 위해 노후 경유 통학차량을 LPG 차로 전환한다.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도로 청소차 보급을 확대한다. 대기오염 국가측정망을 확충하고, 종합대기측정소를 신규 운영한다.
AI 등 가축질병 예방
상시 방역체계 구축 및 축사시설 현대화로 밀집·밀식사육을 개선한다. 축산농가 밀집지역 재편 시범사업에 90억 원을 투입한다. 가금농장 CCTV 등 방역 인프라 설치를 지원한다. 가금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이력제 도입 기반을 구축한다.
자연재해 예방 및 대응
경기 남부·충남 서북부 수계 연결, 전남 서해안 가뭄 예방 등 상습 피해지역 대책을 마련한다. 또 홍수·태풍으로 침수·붕괴 위험이 있는 지역을 3736억 원을 투입해 정비한다.
사고·재난 대응
졸음운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버스·화물차 등에 차로이탈경고장치 등 첨단안전장치를 장착하도록 지원한다. 노후 연안여객선 현대화를 지원하고, 해양오염·인명사고 대응능력을 강화한다.
이정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