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16년 8월 10일 에밀리 하월(Emily Howell)이 작곡한 교향곡을 연주했다. 에밀리 하월은 미국의 작곡가 데이비드 코프가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2009년 2월 에밀리 하월의 작품이 실린 첫 음반이 발표됐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개발하는 인공지능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로봇예술가가 출현함에 따라 인공창의성(artificial creativity)이 대중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공창의성 또는 계산창의성(computational creativity)은 사람의 창의성을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인공지능 연구 분야이다. 인공창의성은 컴퓨터 과학, 인지심리학, 예술이 융합하는 학제간 연구이다.
1970년대 초부터 인공창의성을 구현한 작품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예술가의 창조적인 재능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여겨지는 초창기 작품은 아론과 에미가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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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론은 영국의 추상파 화가 해럴드 코언이 개발한 컴퓨터 화가이다. 프로그램이 동작을 시작하면 아
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아론이 그린 작품.
컴퓨터 화가 아론, 컴퓨터 작곡가 에미
아론(Aaron)은 1973년 영국의 추상파 화가 해럴드 코언이 개발한 컴퓨터 화가이다. 일단 프로그램이 동작을 시작하면 아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아론은 두 종류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는 외부 세계의 대상에 대한 지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지식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방략에 관한 지식이다. 아론이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두 종류의 지식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말하자면 아론은 코언이 화가로서 얻은 경험에서 도출된 규칙으로 구성된 일종의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이다. 의사나 체스 선수처럼 특정 분야 전문가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문가 시스템이라고 한다.
코언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론의 이름을 차용한 이유가 흥미롭다. 선지자 모세보다 세 살 위인 아론은 어눌한 동생을 대신해 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모든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대변인 역할을 한다(출애굽기4:14~16). 코언은 아론이 그가 만든 규칙에 의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아론이 모세의 대변인인 것처럼 아론을 자신의 대리인으로 비유한 것이다. 미국의 인공지능 저술가 파멜라 맥코덕이 1991년 펴낸 <아론의 부호(Aaron’s Code)>에서 언급한 것처럼 코언은 아론의 부호 한 줄 한 줄을 작성하면서 르네상스적인 방식으로 과학이 예술에 이바지하도록 했다. 아론은 인간의 예술적 재능과 컴퓨터 기술을 융합한 최초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에미(EMI)는 ‘음악적 지능의 실험(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을 뜻하는 약자이다. 데이비드 코프가 41세 되는 1982년부터 15년간 10만 줄의 컴퓨터 부호를 작성하는 노력 끝에 완성한 에미는, 퍼스널 컴퓨터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같은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 가령 에미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교향곡 41개를 분석해 42번째 교향곡을 작곡했다. 모차르트 사후 200여 년이 지나서 그가 부활해 신곡을 발표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아론과 에미의 성공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창조적인 능력, 곧 인공창의성에 대해 논란을 일으켰다. 예컨대 아론이 그린 그림의 주인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아론이 코언의 창조적 재능의 산물이므로 아론은 코언의 꼭두각시일 따름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코언이 아론이 그리게 될 그림의 내용을 예측하지 못하므로 그림의 주인은 아론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코언의 예술적 재능을 흉내낸 아론이 독창적인 작품을 그려낸다고 인정하더라도 인간의 창의성과는 비교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에 기록된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보여준 창조성은 단순히 기존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변형시킬 때 발현됐기 때문이다. 아론은 물론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아론이 다른 프로그램보다 창의적이지만 사람에 버금가는 창조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자신의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화 예술과 딥러닝
아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는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에 응용하는 이른바 진화 예술(evolutionary art)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성과는 뮤테이터와 멜로믹스가 손꼽힌다. 영국의 조각가 윌리엄 레이섬이 개발한 뮤테이터(Mutator)는 ‘돌연변이 유발 유전자’, 곧 다른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뜻한다. 레이섬은 수정란이 두 개의 딸세포로 분열되는 단순한 과정을 반복해 복잡한 형태의 성체가 되는 메커니즘에서 영감을 얻고 이런 세포분열 과정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요컨대 뮤테이터는 한 개의 간단한 그림으로 시작해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묘한 모양을 그려낸다.
스페인 과학자들이 개발한 멜로믹스(Melomics)는 ‘선율의 유전체학(genomics of melodies)’을 뜻한다. 생물의 발생 과정을 본뜬 멜로믹스는 사람의 도움 없이 작곡할 수 있다. 2011년 10월 멜로믹스로 작곡된 음반인 이아머스(Iamus)가 발표됐다. 이아머스는 2012년 7월 런던 교향악단이 연주해 ‘컴퓨터가 작곡하고 교향악단이 연주한 최초의 음악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뮤테이터와 멜로믹스는 진화에 의한 변형을 통해 스스로 창작했다는 측면에서 아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처럼 자신의 창작 과정을 심미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컴퓨터는 결코 인간의 창조성을 본뜰 수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전문가 시스템, 진화 예술에 이어 2006년부터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 인공창의성의 세 번째 접근 방법으로 활용되면서 컴퓨터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던 창작 활동에도 도전하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기계학습은 주어진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분석해 의미를 찾고 미래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분야이다. 2006년 인공지능 역사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 딥러닝(deep learning)이 발표됨에 따라 인공창의성 분야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게 된다. 딥러닝은 사람의 뇌처럼 학습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지능을 획득하는 기계학습 기법이다. 딥러닝 기술이 인공창의성에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딥드림,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 마젠타 프로젝트이다. 2015년 7월 구글이 발표한 딥드림(DeepDream) 프로그램은 딥러닝 기법으로 기존의 그림들을 학습시켜 똑같은 그림을 여러 화가의 작품처럼 변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합성해 추상화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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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4월 공개된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미술관, 델프트 공대와 함께 18개월 동안 진행한 인공창의성 작업이다. 17세기 최고의 화가인 렘브란트의 초상화 작품 346점을 딥러
닝 기술로 분석해 렘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한 초상화. ⓒ가디언
2016년 4월 공개된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미술관, 델프트 공대와 함께 18개월 동안 진행한 인공창의성 작업이다. 17세기 최고의 화가인 렘브란트의 초상화 작품 346점을 딥러닝 기술로 분석하고 렘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을 생성해 3차원 프린터로 출력한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런 그림을 보고 렘브란트의 진짜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2016년 6월 예술을 창작하는 인공지능 프로젝트인 마젠타(Magenta)를 공개했다. 기계학습으로 작곡된 80초짜리 피아노곡을 마젠타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로 함께 발표했다.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으로 사람의 창조적 사고 과정을 완벽하게 본뜨는 컴퓨터 개발이 가능할지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인공창의성 분야의 권위자인 영국의 철학자 마거릿 보든의 표현을 빌리면 “컴퓨터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하면 우리는 흥미롭고 아름다운 수많은 작품을 잃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창조한 그림, 음악, 소설이 예술가의 작품 못지않게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말란 법이 없을 테니까.
이인식 | 지식융합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