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규제로 잘나간다던 게임업체를 비롯해 정보통신산업이 풀이 죽은 상태에서 이번에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것은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에는 숨통을 틔워주는 희소식입니다. 특히 ‘임시허가·신속처리’ 제도를 도입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개 이상의 부처 허가 등이 필요한 신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신청을 받아 일괄처리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하는 것은 업계에서 크게 환영할 일입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박성호 사무총장은 “현재 눈에 보이는 규제도 있지만, 정부가 가이드라인만 내놓고 있는 비명시적 규제, 이른바 ‘그림자 규제’도 ICT 업체들에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면서 “이번 국회에서 통과된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정보통신융합법은 정부가 분초를 다투는 정보통신산업에서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그에 따르는 리스크를 떠안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고 신속처리·임시허가 제도를 개선하는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안은 지난 9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은 정보통신기술 관련 신규 사업을 우선 허용하고 사후 규제(네거티브 규제)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누구든지 신규로 정보통신융합기술을 활용한 서비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국민의 생명·안전을 저해하는 경우에만 제한하는 우선 허용·사후 규제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또한 신속처리 없이 임시허가를 가능하게 하고 현행 임시허가제(관련 법 규정이 없는 신기술 서비스를 일단 허가해주고 임시허가 기간 동안 근거 규정을 정비하는 제도)의 허가 기간도 최대 2년으로 늘려 임시허가제의 활용도를 높였다. 아울러 신규 정보통신 융합 등의 기술 서비스가 다른 법 규정에 의해 허가 신청 등이 불가능해 사업 시행이 어려운 경우, 해당 기술 서비스에 대해 제한적으로 규제를 전부 또는 일부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규제특례제도를 도입했다.
규제혁신, 내 삶을 바꾸는 힘
박성호 사무총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서비스의 빠른 변화에 맞춰 각종 법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ICT 신기술·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을 경우 기존 법령의 미비나 불합리한 규제에도 실증(규제 샌드박스) 또는 시장 출시(임시허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정보통신기술 분야 ‘규제 샌드박스 3법’은 산업융합법·정보통신융합법·지역특구법 일부 또는 전부 개정안이다. 산업융합법과 정보통신융합법은 공포 뒤 3개월, 지역특구법은 6개월 이후부터 시행된다. 핀테크 분야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담은 금융혁신지원특별법, 규제 샌드박스 관련법들을 총괄하는 행정규제기본법은 여야 이견으로 여전히 국회에 계류 상태다.
규제 샌드박스란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를 일컫는 말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어린이에게 안전하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를 제공하는 것처럼, 사업자가 신기술이나 새로운 서비스의 사업성과 시장성을 판단해볼 수 있도록 관련 규제의 일부 또는 전부를 면제해주는 제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 초부터 규제 샌드박스 마련을 지속적으로 촉구했다. 지난 1월 22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혁신토론회 ‘규제혁신, 내 삶을 바꾸는 힘’에서 “신제품과 신기술은 시장 출시를 우선 허용하고 필요하면 사후에 규제하는 방식으로 규제체계를 전면적으로 전환해보자”며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 이번 규제 샌드박스 본격 도입을 계기로 로봇이나 드론을 이용한 서비스 사업도 본 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0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스타트업 오픈 이노베이션’ 행사에서 한 스타트업 기업 관계자가 애완동물용 로봇인 ‘앱봇’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
실제 ‘규제 샌드박스 3법’에는 ‘우선 허용·사후 규제’ 원칙이 명문화돼 있다. 사업자가 정부에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신청하면, 정부는 심사를 거쳐 임시허가·실증특례 2년(1회 연장 가능) 등 최대 4년 동안 관련 규제를 유예해주고,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규제를 적용하는 식이다. 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임시허가·실증특례 기간 동안 관련 법령을 합리적으로 정비해야 할 의무를 부과해,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업을 이어가는 데 지장이 없게 했다.
일부 시민과 사회단체는 “개인정보 보호 규제까지 배제하는 광범위한 특례 도입은 위험하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ICT 신기술·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을 경우, 기존 법령의 미비나 불합리한 규제에도 실증(규제 샌드박스) 또는 시장 출시(임시허가)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혁신성장 정책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보통신산업계도 규제 샌드박스 3법 통과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기존 규제와 어긋나 사업 추진이 어려웠던 카풀(승차 공유)·자율주행차 분야 사업자들은 일정 구역·기간·규모에 맞춰 시범사업이나 실증 테스트를 해볼 수 있게 됐다. 규제 샌드박스 3법에 따라 ‘카풀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으면 안 된다’거나 ‘무인버스는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한 기존 규정을 면제받을 수 있다.
규제 샌드박스 3법 통과를 계기로 블록체인·암호화폐 기반 ICT 융합 서비스 업체들이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공인된 가이드라인이 없어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블록체인·암호화폐 관련 서비스가 기존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서비스를 개발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해당 기업이 ICT 융합 서비스에 대한 규제특례를 신청하면, 심의·의결 절차를 거친 뒤 최대 3년간 현행법의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임시허가 유효기간 3년 동안 사업자는 기술검증 등 서비스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여유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관련 법·제도를 개선한다. 다만, 현재 정부가 전면금지 선언을 한 암호화폐공개(ICO)는 자금 모집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에서 규제특례가 아닌 특구지정을 통해 제도권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있다. 앞서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도를 ‘블록체인·암호화폐 글로벌 생태계 특구’로 조성하기 위해 정부와 제주가 함께 참여하는 TF 구성을 공식 제안한 바 있다.
700개 정보통신업체 규제 샌드박스 설문 참여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과기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과 공동으로 지난 7월부터 한 달간 1500개 정보통신 관련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넷산업 규제 개선 및 규제 샌드박스 희망과제’ 수요조사를 실시해 700개 기업의 희망과제를 접수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곽홍석 과장은 “현재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했지만, 현행 법규에서 금지해 테스트와 현장 출시에 난항을 겪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이 접수됐다”면서 “설문조사를 해보니 의외로 정보통신업체들이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곽 과장은 “한 예시로 들 수 있는 것은, ICT 기반의 원격화상 의약품 판매기를 개발했는데 약사법상 약사와 대면하지 않고 원격지에서 화상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해 현재 사업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연, 앱을 기반으로 대리운전 기사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사업자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대리운전자의 운전면허 정보를 확인하고 싶은데, 정보 제공이 렌터카업체와 카셰어링업체에만 한정돼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 등이 있다”고 했다.
박성호 사무총장은 “원격진료를 포함한 헬스케어 분야, 데이터를 활용하는 신융합 관련 사업체, 로봇·드론 이용 서비스업체, 공유숙박, 카셰어링 등 업체들이 규제 샌드박스 희망과제 관련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았다”며 “가령 ICT 기반의 원격 화상 의약품 판매기의 경우 특정지역에서 판매기를 운영을 시작해 시장성, 필요성, 안정성 등을 검증하는 실증을 시행해달라는 의견 등이 접수됐다”고 했다.
이번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안은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될 예정이며, 공포 3개월 후 시행된다. 과기정통부는 시행과 동시에 기업들이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위 법령 마련 등 후속처리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제도 시행 전에 공공기관 및 ICT 유관협회가 참여하는 ‘규제 샌드박스 TF’를 구성할 예정이다. 인터넷·SW·정보 보호 등 정보통신 관련 업계에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설명하고, 업계의 수요를 반영한 규제 샌드박스 적용 과제를 사전에 발굴할 계획이다. 또한 누리집과 가이드북을 마련해 규제 샌드박스와 임시허가, 신속처리, 일괄처리 제도를 안내하고 지원할 예정이다.
박성호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ICT 기업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져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든든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가한다”며 “정보통신융합법 시행령이 정말 ICT 기업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실효성을 높여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회 통과 정보통신융합법 개정안 주요 내용
실증 규제특례(규제 샌드박스) 도입
관련 법령의 허가 등 규제로 인해 사업 시행이 어려운 신기술·서비스를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규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적용하지 않는 ‘실증(테스트)’을 위한 규제특례 제도가 도입된다. 이에 따라 사업자가 신기술·서비스에 대한 규제특례를 신청하면 관계부처 검토 및 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쳐 규제특례를 지정(2년 이내, 1회 연장 가능)받을 수 있다. 실증을 통해 사업자는 기술검증·문제점 확인 등 기술·서비스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고, 정부도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법·제도 개선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임시허가·신속처리 제도 개선
임시허가·신속처리 제도도 개선된다. 이 제도는 관련 법령이 없거나 미비한 경우 신기술·서비스의 사업화가 지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14년 2월 정보통신융합법이 시행되면서 이미 도입된 상황이다. 그러나 임시허가의 유효기간이 관련 법령이 정비되기까지 부족하고(1년, 1회 연장 가능), 임시허가를 신청하기 전에 반드시 신속처리를 거치게 하여 절차가 복잡하다는 운영상의 미비점이 있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신기술·서비스의 시장 진입, 관계부처의 법령 정비 등에 필요한 준비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임시허가의 유효기간이 1년에서 2년(1회 연장 가능)으로 늘어난다. 또한 신속처리 제도와 분리해 신속처리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임시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했다. 임시허가 기간 동안 관계부처의 법령 정비 노력 의무도 명시됐다. 임시허가의 선행절차로만 운영해오던 신속처리 제도도 법령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허가 등의 필요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로 개편된다.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 설치
이번 개정안에는 다양한 신기술·서비스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지정 및 임시허가를 전문적으로 심의·의결하기 위해 관계부처,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를 설치(위원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괄처리 제도 신설
2개 이상의 부처 허가 등이 필요한 신기술·서비스에 대해 과기정통부가 신청을 받아 동시에 절차를 개시하는 일괄처리 제도가 신설되어 신청인의 편의성이 대폭 증진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