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됐습니다. 기분도 울적하고, 이곳에 오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분당에서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지난 9월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실패박람회’에서 만난 정 모(26) 씨는 이렇게 박람회장을 찾은 이유를 말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라는 주제로 실패박람회가 열렸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실패자가 낙오자라 낙인찍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한번 바꿔보자는 것이 이번 박람회의 목적”이라며 “아직 성공하지 못했지만 도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를 건네면서 우리 사회가 더욱 따뜻해지고 밝아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함께 개최한 실패박람회는 다양한 실패 사례를 알아보고 정책 소개와 전문 컨설팅을 연계해 재도전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개막 첫날부터 사흘 동안 1만여 명의 관람객이 광화문광장을 찾아 박람회는 성황을 이뤘다.

▶ 9월 14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실패박람회’에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여섯 번째),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일곱 번째) 등 참석자들이 페인팅으로 박람회 캐치프레이즈를 형상화한‘2018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진 글자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대학원에서 금속 나노입자를 전공한 송민우(27) 씨는 “IT 분야 창업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창업과 관련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왔다”며 “아직 젊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성공을 단축시킬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실패박람회에는 정책 토론과 재도전 지원, 문화 공연과 전시·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실패를 주제로 강연하고 자유롭게 토론도 하는 ‘실패문화 콘퍼런스’, 재창업 희망자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전문 컨설팅 프로그램이 마련돼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실패문화 콘퍼런스에서는 ‘실패학’의 대가 이이노 켄지 국제실패학회 부회장의 특강과 최재천 전 국립생태원장의 ‘생물학으로 보는 인간의 실패와 도전’을 주제로 한 강의가 이어졌다.

▶ 1 실패박람회에 참가한 참석자들이 재도전기업인 지원 상담을 받고 있다. 2 문재인 대통령이 실패박람회장에서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
이와 함께 전국에서 뽑은 100명의 실패 경험 공유자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실패’를 토론하는 ‘백명토론’도 열렸다. 이들 토론의 결과는 국민 제안의 형태로 제안될 예정이며, 11월경 성과 공유 과정도 거친다. 이정렬 변호사, 홍현주 한림대 정신의학과 교수 등 법률·심리학 전문가와 함께 현직 형사와 비행청소년 출신 사회적기업가가 모여 청소년 문제의 진단과 해법을 모색해보는 ‘정책살롱’도 열렸다.
첫날 박람회장에서는 ‘병맛캐리’와 ‘실패처방전’ 부스가 가장 눈길을 끌었다. 자신의 실패담을 이야기하면 이와 관련한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병맛캐리 부스는 대여섯 명의 참가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였다. 또 진로·심리·인간관계와 관련 전문 상담가들이 40∼50분 상담을 진행해주는 실패처방전 부스는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즉시 상담을 받을 수 있어 호응이 높았다. 진로·인간관계·심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도 들어주는 ‘경청의 방’이 참가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었다.
이 밖에도 박람회 기간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청춘들을 응원하는 ‘청춘해콘서트’, 실패를 주제로 한 시(詩)와 음악으로 구성된 ‘희망의 작은 콘서트’,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영화와 배우에게 주는 ‘리-버스(Re-Birth) 영화상’ 등도 열렸다. ‘고몽’, ‘리드무비’, ‘거의 없다’, ‘엉준’의 유명 영화 리뷰 유튜버들이 진행한 ‘Re-Birth 영화상’은 ‘등잔 밑에 숨겨진 연기력 상’과 같이 흥행하지는 못했으나 연기력이 훌륭했던 배우들을 시청자가 직접 뽑고 배우들과 감독을 초청해 같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행사였다.
문 대통령, 실패박람회 찾아 격려
특히 과학의 발전 과정 중 실패한 사건들이 어떤 성공으로 이어졌는지를 재조명하는 ‘과학의 실패’ 전시회도 열렸다. 연금술, 천동설과 같이 당대의 ‘진리’였던 가짜과학이 후대 과학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발상의 전환 ‘과학의 실패 특별전’(과천과학관 주관), 손기정에 가려진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등 ‘1등에 가려진 주역전’ 등의 전시도 개최돼 박람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힘을 주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일요일인 9월 16일 오후 2시경 실패박람회장을 찾아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장에서 “요즘 국민들께서,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신다”며 “다시 희망을 품고 꿈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이 자리가 의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실패와 재도전에 대한 국민의 희망 메시지를 받아 전시하고 있는 ‘챌린지 월’에서 ‘국민 모두의 마음과 도전 응원합니다’라고 짤막하게 한 줄 남겼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마음으로 응원과 함께 이겨내자는 의미를 담아 작성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박람회를 찾은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2000원을 내면 사진을 찍어주는 ‘희망의 프레임 사진전’이었다. 정부는 조세현 작가의 재능기부 사진 전문 강좌를 수료한 노숙인 중 자립 의지가 있는 학생을 선발해 광화문 희망사진사 활동을 통해 자활 및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활동하는 김창훈 희망사진사는 문 대통령에게 2000원을 받고 사진을 직접 찍어주기도 했다.
이어 찾은 ‘사업정리컨설팅’ 부스에서 문 대통령은 “가슴 아픈 부서다. 하지만 사업정리도 잘해야 새로운 출발이 가능한 것이겠죠”라고 물었고, 이에 상담원은 “맞다.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또 다른 실패를 불러온다. 실패를 줄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영업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1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재취업과 재창업을 상담하는 부스도 찾았다. 부스를 찾은 한 시민은 9년째 한정식 가게를 운영 중인데 인건비가 올라 많이 어려워졌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 1 실패박람회에 마련된 문학자판기에서 출력된 종이에 격언 등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 2 실패박람회에 마련된 게시판에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희망의 메시지들이 나열돼 있다. ⓒ연합
8만여 명 채무 조정… 연대보증 12만 건 5년간 단계적 폐지
이번 실패박람회에서는 중기부에서 운영하는 ‘재도전 기업인 마당’에서 법률·세무·회계 등 분야별 전문 상담 및 지원책 상담과 혁신적 실패 사례 공모심사, 재도전 성공패키지 사업 선정평가 등이 진행됐다. 이와 함께 경력단절여성의 취업과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여성새로일하기 부스, 자활기업·자활근로·희망키움통장 등 자립을 상담·지원하는 부스 등도 마련됐다.
이와 함께 중기부는 실패박람회를 계기로 중소기업인의 실패 부담을 줄이고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책금융기관 부실채권 3조 3000억 원을 정리하고 8만여 명의 채무 조정을 지원하며, 연대보증이 면제된 기업 경영인은 실패하더라도 신용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개선한다.
또한 개인파산 시 압류 제외 재산을 900만 원에서 1140만 원으로 상향해 연간 4만여 명의 생활고를 완화하는 한편 2021년까지 1조 원을 들여 혁신 재창업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 신용도가 취약하나 우수한 기업에는 900억 원 규모의 재도전 특별자금도 마련한다.
정부, ‘7전 8기 재도전 생태계 구축 방안’ 발표
걸림돌 규제 풀고 안전망 강화한다
정부는 지난 9월 12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7전 8기 재도전 생태계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그간 정부는 2017년 11월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 방안’을 통해 민간 중심의 벤처 생태계 구축과 혁신창업 붐 조성 등 14개의 창업·벤처 대책을 발표하고 창업 환경 개선에 노력해왔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신규 벤처투자액은 작년보다 61.2% 대폭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그동안 창업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도 실패 이후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재기기업인의 의견을 수렴하고 민간 전문가로 구성한 중소기업 정책기획단과 함께 과제를 발굴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이날 회의는 ‘혁신성장을 위한 기술 재창업 활성화 방안’에 따라 기획재정부·법무부·행정안전부·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친 것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실패박람회에 마련된 ‘경청의 방’에서 행사 참가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
▲ 사업 실패에 따른 채무 부담 경감
정부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보유 중인 부실채권 3조 3000억 원을 정리해 2021년까지 8만여 명의 채무 조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책금융기관의 오래된 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매각하고 채무상환 능력에 따라 채무를 30~90%까지 감면하는 한편, 12만여 건(22조 원 규모)의 기존 연대보증도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 걸림돌 규제 풀고 안전망 강화
그동안 연대보증이 면제됐어도 해당자는 ‘관련인’이라는 불이익한 신용정보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녔다. 이번 대책에서는 이처럼 재도전에 걸림돌이 되는 관련 규정을 2019년 상반기까지 손질해 ‘실패한 성실 기업인’이 더 이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밀린 조세를 재기 후 갚을 수 있도록 재기중소기업인 조세특례 제도도 2021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한편 파산 시 압류 제외 재산은 2013년 개정 이후 5년간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하지 않았던 만큼 앞으로 압류하지 않는 재산의 범위를 900만 원에서 1140만 원으로 확대한다.
▲ 재창업 예산 확대 및 기업 지원 프로그램 신설
혁신 재창업 지원은 과거 8년간 지원했던 재창업 예산에 비해 연평균 4배 가까이 늘어나서 2021년까지 1조 원 규모로 지원한다. 900억 원 규모의 ‘재도전 특별자금·보증’으로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우수한 사업 아이템을 보유한 기업에 재도전의 기회를 적극 부여하는 한편, 신용회복과 재창업을 동시에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이 밖에도 민간이 발굴해 투자한 재창업 기업에 사업화와 기술개발을 연계 지원하고, 사업성을 인정받아 정부 지원을 받은 재창업 기업은 공공 입찰에도 가점을 부여해 내수시장 진출을 도울 계획이다.
한편 재창업 지원 시에는 과거 사업 실패 원인을 우선 분석, 새롭게 출시하는 제품은 시장 반응에 따라 제품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린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의 재창업 사업화 지원을 도입해 재실패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 중소기업 사업정리 지원 강화
중소기업이 손쉽게 사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비용부담 없는 전문가 상담을 지원하는데, 사업 실패 이후 폐업 신고, 자산 정리, 기업인의 신용회복 등 사업정리를 위한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등 사업 실패 시 발생하는 세금신고와 임금정리 문제 등을 손쉽게 상담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문의 : 중소벤처기업부 재기지원과
042-481-6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