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올해 2분기 말 1257조3000억 원)를 기록한 가운데, 정부가 가계부채 급증 문제 해소에 나섰다. 정부는 8월 25일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관계기관 합동으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주택시장의 공급 물량을 규제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상환능력 심사 등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던 집단대출 관리를 강화해 선분양제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비(非)은행권 대출에 대해서는 유형별 맞춤형 대책을 추진한다.
기획재정부 이찬우 차관보는 "이번 대책은 가계소득 증대, 주택시장 관리, 부채 관리, 서민·취약계층 지원 강화를 망라한 종합적인 관리방안"이라며 "특히 금융대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가계부채 문제를 주택시장 측면에서도 균형 있게 접근함으로써 근본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택지 매입 단계부터 주택 공급 조절
분양보증 예비심사 도입, 미분양 관리지역에 의무화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공공택지 공급 물량을 축소하고 주택 분양보증 심사를 강화해 주택 과잉 공급에 적극 대응한다. 건물이 다 지어지기 전에 미리 분양하는 선분양 제도가 자리 잡은 주택시장의 특성상 분양보증을 받지 못하면 건설사나 시행사가 아파트 분양을 하지 못하게 된다.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에 처음으로 주택 공급을 조절하는 수단을 포함한 것은 공급 과잉이 현실화할 경우 집단대출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우선 택지 매입 단계에서부터 토지주택공사(LH) 공공택지의 공급 물량을 조절한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보증의 신청 시점은 사업계획 승인 이후로 조정하고, 경기 변동 등 리스크에 취약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보수적 건전성 분류 유도 등을 통해 PF 대출 심사를 강화한다. 택지 매입 전 분양 사업장에 대한 철저한 사업성 심사를 거쳐 주택 과잉 공급을 사전에 차단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 예비심사’도 도입한다.
인허가 단계에서는 국토교통부와 지자체 간 주택정책협의회를 개최해 시장 상황을 점검하고 시장 동향 정보를 공유한다. 기관 간 협력을 통해 더욱 철저한 공급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내달부터 미분양 관리지역도 확대한다. 현재는 미분양 지표만 고려해 지정하는 ‘미분양 관리지역(2016년7월 현재 20개)’을 인허가, 청약 경쟁률 등의 지표를 반영해 확대할 방침이다. 미분양 관리지역 택지 매입 전 분양보증 예비심사, 본점 심사 등을 의무화해 시행사의 건전성 기준(국세·지방세 체납 등)을 강화한다.
부채 관리 측면에서는 상호금융권 상환능력 심사 강화와 분할상환 유도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다만 상호금융 이용자들이 영세 상공인, 농어민 등 소득 증빙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은행에 적용하고 있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해 적용을 유보했다.
가계부채 급증시킨 ‘집단대출’ 관리 강화
전세대출 ‘차주가 원하는 만큼’ 나눠 갚는다
최근 가계부채의 ‘뇌관’으로 떠오른 집단대출의 경우, 그동안 상환능력 심사의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앞으로는 관리가 강화된다. 집단대출은 신규 분양, 재건축, 재개발아파트 입주 예정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일괄대출로 중도금, 이주비, 잔금대출을 포함한다. 주택금융공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의 보증을 통해 대출을 진행해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개별 대출자의 상환능력은 크게 따지지 않는다.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주택담보대출이 19조 원 늘어났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0조 원 정도가 집단대출로 집계됐다.
정부는 주택 경기를 고려해 강력한 제동을 걸기보다 은행권의 소득 심사를 강화하는 선에서 중도금 대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대출 심사 시 차주에 대한 소득 자료를 확인하고 사업장의 현장 조사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심사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지난 1~6월 중도금 대출 차주의 소득 확인방식을 보면 미흡한 경우가 41.3%에 달했다. 이와 함께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주택금융공사의 집단대출 중도금 보증을 100%에서 90%로 줄이고, 1인당 보증 건수 한도를 통합 관리한다.
▶정부는 8월 25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마련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
잔금대출에 대해서는 변동금리 또는 일시상환 방식에서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전환하면 중도상환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신규 대출 시 금리를 우대하는 주택금융공사의 ‘입주자 전용 보금자리론(가칭)’을 내년 1월에 내놓는다.
그 밖에도 전세대출은 차주가 원하는 만큼 나눠 갚는 상품 출시를 유도하고, 신용대출의 경우 소득별, 차주별 분석과 함께 실태를 점검해 내년부터 시행하는 총체적상환부담(DSR) 시스템에 활용한다. 상호금융의 비주택담보대출 취급 실태를 현장 점검하고, 현행 50~80%인 담보 인정 한도를 40~70%로 인하한다.
가계부채 관리방안 주요 내용 Q&A
Q 이번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특징은.
A 가계부채 대책 최초로 주택 공급 관리 내용이 포함됐다. 최근 집단대출 증가의 요인이자 향후 가계부채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주택 공급 과잉을 최소화하기 위해 택지 공급 축소 등 주택정책 측면의 근본적 대응책을 추가했다.
Q 최근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은
A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집단대출과 비은행권 대출 전반의 빠른 증가 때문이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가이드라인 시행 등으로 현저히 둔화된 반면, 집단대출은 분양시장 호조로 빠르게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중 은행권 개별 주택담보대출은 22조2000억 원 감소했지만, 집단대출 증가 규모는 13조1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Q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다시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지.
A LTV와 DTI 규제 합리화는 10여 년 전 주택 경기 과열기에 도입된 규제를 합리적으로 보완한 것이다. 현재는 환원할 계획이 없다.
Q 집단대출에 DTI와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야 하지 않는지.
A 현 단계에서 개별 주택담보대출에 적용하는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이나 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집단대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금융당국의 생각이다. 중도금 대출은 보증부대출인 데다 대출 만기도 짧아 DTI나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을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 선분양제도하에서 잔금대출을 규제하는 것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및 입주를 제한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신 이번 대책에서는 그동안 상환능력 심사 등의 규제 예외로 인정되어온 집단대출 관리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포함됐다.
Q 전세자금대출 부분분할상환의 실효성에 논란이 있는데.
A 전세자금대출은 일반적으로 만기(2년)가 짧아 만기 내에 차주가 대출 ‘전액’을 분할상환하기 어렵다. 반면 전세대출 ‘일부’만이라도 분할상환해 만기 시 원금 상환 규모는 줄이고 총 이자 부담을 낮추려는 수요는 존재한다. 이자 부담 감소 효과 외에 주택임차 차입금 원리금에 대해 최대 300만원 한도로 소득공제 혜택도 가능하다. 따라서 소비자 선택권 등을 고려해 ‘차주가 원하는 만큼’ 전세자금대출을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글· 김가영(위클리 공감 기자) 201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