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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10시간 30분. 지난해 한국인이 일한 하루 평균 근로시간이다. 1년간 총 2,090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치(1,776시간)를 크게 웃돈다.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국민행복지수는 33위였다. 복지충족지수도 31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일과 삶의 균형 항목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4점을 받았다. ‘2014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국민복지 수준의 국제비교 : OECD 국가를 대상으로’에서다. 장시간의 근로가 행복지수를 낮추는 요인일 수 있고, 일과 삶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방증일 듯싶다.
정부가 장시간 근로문화 개선에 나선 것은 그래서다. ‘장시간 근로는 필수, 야근은 당연, 휴가는 눈치 보여 제대로 쓸 수 없는’ 근로문화를 바꿔 일과 가정, 삶의 균형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고용률 70퍼센트를 달성하고 업무 생산성, 성취감 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장시간 근로문화 개선을 통해 국민 여가 시간을 늘려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 등 내수산업 활성화 등 파생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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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근로는 만성화된 고질
사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로는 만성화된 고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2명 중 1명은 가정보다 일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정을 우선’으로 하는 경우는 10명 중 1명 정도였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일·가정 양립의 장애요인으로는 업무의 과중함(16퍼센트)이 가장 많았다. 여성의 경우에는 가사와 자녀양육 부담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야근이 많고 휴가를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자 10명 중 4명(43.6퍼센트)은 하루 평균 한 시간 이상 야근을 했고, 10명 중 3명은 부여된 휴가 가운데 절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근을 하는 주된 원인은 ‘업무 특성’ 때문이라는 응답(35.1퍼센트)이 가장 많았지만, ‘야근을 당연시하는 문화’(25.8퍼센트)와 ‘상사 눈치’(9.4퍼센트) 등 비정상적 관행 탓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휴가도 마찬가지다. 부여된 휴가를 다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 ‘상사 눈치’와 업‘ 무태도의 부정적 평가 우려’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 중심으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체의 10퍼센트 정도였는데, 시간제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시간적 유연근무에 비해 재택·원격 근무제 등 장소적 유연근무는 매우 저조한 실정이었다.
올해는 일하는 방식과 문화 개선하는 원년
유연근무제를 운영하는 회사의 근로자 10명 중 4명은 자유롭게 제도를 이용하고 있고, 회사도 제도의 적극적 사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연근무제 확산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연근무제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사무실 눈치’가 가장 많이 꼽혀 근로문화개선이 절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일家양득 대국민 캠페인’을 추진한 이유도 이 같은 근로문화와 불합리한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정부와 기업, 근로자,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개선하는 운동을 확산시켜 ‘일과 가정의 행복한 균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 2월 18일 ‘일家양득 캠페인 대국민 선포식’에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국민들은 장시간 근로라는 잘못된 관행 때문에 행복한 일터를 꿈꾸기 힘들다”며 “올해를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개선하는 원년으로 삼고,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이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성공한 것도 정부의 근로문화 개선 성공 가능성을 높여 준다. 영국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도 고용 창출과 성장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에 대대적인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캠페인을 실시했다. 블레어 영국 전 총리는 2000~2007년 여성고용 확대를 위해 이 같은 캠페인을 통해 여성 고용률을 2퍼센트포인트 상승시켰고, 창조산업 성장률을 연 7퍼센트까지 끌어올렸다. 미국은 1997년 5월 클린턴 정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가정친화적 기업에 대한 제안’을 공식 발표하고, 1999년 3월 ‘가족친화적 직장후원실’을 설치해 프로그램 운영 범위를 확대했다. 일본도 2007년 저출산과 장기 불황을 없애기 위해 ‘카에루! 재팬(Change! Japan)’이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정부는 일하는 방식·문화 개선이 단지 근로자들의 삶을 제고하는 데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회사 입장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근로자의 불만이나 이직률 등의 감소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는 곧 매출액을 증가시키는 등 선순환 구조를 이끌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해외의 경우 GWP(Great Work Place) 재단에 따르면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기준으로 일하는 방식과 문화 개선을 통해 이직률은 평균 46퍼센트 감소하고, 주식시장 수익률은 2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GWP재단은 세계적 기업과 연계해 일하기 좋은 기업에 대한 연구 및 인증을 제공한다.
정부는 육아지원·자기계발 지원 등 일과 삶의 균형을 기업내에서 실행하고 있는 우수기업 사례를 담은 '일家양득 매뉴얼'을 오는 4월까지 제작, 배포하고 다양한 이벤트와 캠페인을 펼쳐 근로자들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점진적으로 바꿔 나갈 예정이다.
정부는 기업·근로자·시민단체 등과 함께 ▶취업과 결혼·가정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사회 ▶일과 삶의 균형이 조직의 생산성과 국가 발전으로 선순환하는 사회 ▶일하는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육아와 돌봄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사회 ▶차별 없이 일과 삶의 균형을 누릴 수 있는 사회 등을 추구한다는 방침이다.
글·최재필 기자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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