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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 찍어줄게!”
“알았어. 예쁘게 찍어줘야 해.”
“하나 둘 셋, 찰칵!”
지난 10월 1일, 충남 천안 서북구 백석동에 있는 백석농공단지 어린이집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사진 찍기’ 놀이에 한창이었다. 민우(5)군은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민우군이 옆에 앉은 나경(5)양에게 “손을 요렇게 브이 자로 해야 예쁘지. 다시 해 봐”라고 말하자 나경양은 “알았어. 이렇게?”라며 깜찍한 표정을 지었다.
오전 11시 30분, 20여 명의 아이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식사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떠드는 모습은 여느 어린이집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대개의 어린이집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산업단지 내에 자리 잡은 공동직장어린이집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어린이집은 공장에서 50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산업단지 안에 들어설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설치 제한 규정에서 위험 물질을 취급하지 않는 공장이 제외되면서 산업단지에도 직장어린이집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전주 산업단지와 백석농공단지에 각각 어린이집 한 곳씩이 문을 열었다. 올해 7월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산업단지 외에 물류단지, 첨단의료복합단지, 과학연구단지 등에도 어린이집 설립이 가능해졌다.
백석농공단지에는 40여 개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대형 반도체 공장을 제외하고는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농공단지 내에 있는 식당 등 편의시설 업체의 인원들까지 합하면 3,400여 명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백석농공단지에 입주한 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누구든지 자녀들을 이곳에 보낼 수 있다. 단, 입원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현재 백석농공단지 어린이집에는 0세부터 만 5세 사이의 어린이 99명이 다니고 있다.
STS반도체에 근무하는 박지숙(29)씨는 지난 3월부터 한살 된 아들을 이곳에 보내고 있다. 직장어린이집이 생기기 전까지는 시부모님이 아이를 돌봤다. 박씨는 주말에 시댁에 가서 아이를 보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박씨는 “아이와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직장어린이집이 생기면서 더 이상 아이와 ‘생이별’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는데, 회사 근처에 아이가 있으니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며 “아이도 엄마가 곁에 있으니깐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백석농공단지 어린이집 김미정(44) 원장은 “어린이집이 문을 열기 전부터 어떻게 하면 이곳에 아이를 보낼 수 있는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며 “부모님들이 걸어서 30분거리 이내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직을 고민하다 공동직장어린이집을 포기할 수 없어 이직하지 않은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지엔에스티에서 근무하는 김효수(39)씨는 두 자녀를 백석농공단지 어린이집에 보낸다. 원래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김씨 아내의 몫이었지만 직장 근처에 어린이집이 생긴 이후로는 김씨가 아이들의 출·퇴원을 맡고 있다.
김씨는 “아이들이 아빠보다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며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아빠랑 있으면 좀 서먹해하곤 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김씨가 아이와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그런지 아이들과 사이가 전보다 더 좋아졌다. 그는 “이제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말하며 웃었다.
정부는 내년 청주산업단지를 비롯해 전국 10곳에 어린이집을 세울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 김순재 사무관은 “여성들이 마음놓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연령제한 없애자 고령층 일자리 늘어
규제개선으로 일자리를 다시 얻게 되는 일도 있다. 김원(63)씨는 요새 하루하루가 살 맛이 난다. 지난 2월부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게 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현재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산림청은 산불로부터 숲을 보호하기 위해 봄과 가을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에 시·군·구별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을 선발해 고용한다. 이들은 산불 방지와 관련된 현장 업무를 보조하며, 산불 진화와 뒷불 감시 등의 업무를 맡는다.
그동안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은 만 55세 이하만 지원할 수 있었지만,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선발 시 연령을 제한하는 규정이 폐지됐다.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농·산촌 지역의 고령층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직장을 다녔지만 나이가 들면서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 과천시청에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김씨에겐 딱 맞는 일이었다. 최근 그는 청계산, 북한산 등을 돌아다니며 산불 예방 홍보도 하고, 뒷불도 감시한다. 김씨는 “나이는 숫자라는 말이 있다”며 “60대이긴 하지만 몸관리를 잘해서 10년, 15년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일도 거뜬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땀 흘려 일을 해서 돈도 벌고 좋은 일을 하니 일석이조”라며 “하루 하루가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글·김혜민 기자 2013.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