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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오후 11시 30분. 서울 노원경찰서 당고개파출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들의 신고였다. 바로 출동한 주선홍 경위는 격분한 상태로 마당에 불을 지르려는 가해자 박아무개(52)씨를 발견하고 이를 제지했다. 부인 김아무개(46)씨는 술만 마시면 폭행을 일삼는 남편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아들 박군(15)도 평소 그런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 컸다.
이 가족에게 관심이 생긴 주 경위는 노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로 보고를 올렸다. 마침 노원경찰서는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가정폭력 솔루션팀’ 시범운영 관서였다. 상담가·교수·경찰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가정폭력 솔루션팀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매주 3회 이상 술을 마시는 박씨는 알코올 중독 치료와 함께 전문가 상담을 시작했다. 아들 박군은 학교 전담 경찰관이 담당해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지 않도록 선도했다. 아울러 가족 생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구청과 연계, 기초생활수급 혜택 범위 조정 등을 통한 지원 방법을 모색했다.
박씨 가족은 이후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았다. 박씨는 술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박군도 마음의 안정을 찾아 학업에 전념하고 있다. 신고부터 도움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주 경위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가족을 구렁텅이에서 끌어내줬다는 게 큰 보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올해 들어 가정폭력 문제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경찰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대책을 마련한 점이다.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에 더욱 주력한 것이 골자다. 먼저 ‘가정폭력 삼진아웃제’를 도입해 3년 이내에 세 번 가정폭력을 휘두를 경우 구속하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가정폭력 신고 접수 이후 재차 피해자의 근황을 살필 수 있도록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을 경찰서마다 1명씩 배치했다.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를 만들어 신고 후 갈곳 없던 피해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처벌과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가정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솔루션팀’도 노원경찰서·용인서부경찰서 등 2곳을 지정해 시범 운영 중이다. 박씨 가족의 경우 경찰 5명, 해당구청 공무원, 가족상담사, 교수 등 전문가 8명으로 구성된 솔루션팀이 피해자 김씨 및 아들 박군과 함께 대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솔루션팀을 시범 운영한 후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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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로 구성된 ‘가정폭력 솔루션팀’도 시범 운영
가정폭력 대책 시행이 얼마 안 됐음에도 정책을 수행하는 각 기관의 관계자들은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가정폭력 삼진아웃제’ 도입 후 전남 최초로 가정폭력 사범을 구속한 함평경찰서의 최원석 경장은 “구속 수사가 가능해지자 가정폭력을 행사하던 가해자가 훨씬 더 조심하는 측면이 있다”며 “제도가 널리 알려질수록 가정폭력을 억제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선홍 경위는 가해자와 피해자 격리가 강화된 점을 주된 변화로 꼽았다. 주 경위는 “기존에는 가정폭력 문제 해결에 애매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격리해 보호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대책에 따라 피해자를 격리하기 위한 긴급 임시조치를 가해자가 거부할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경찰관제 시행 이후 피해자에 대한 체계적 지원도 늘었다. 송파경찰서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경찰관인 최영란 경위는 지난 4월 24일 가정폭력 신고를 받은 후 다음 날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틀 후 피해자를 쉼터로 인계하고 구청 협조를 얻어 입원·치료 비용 70만원을 지원했다. 피해자 김아무개씨는 “가정을 지키려고 참고 살았는데 경찰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점도 큰 변화다. 신설된 범죄피해자 긴급보호센터 천양순 센터장은 “기존에는 보호 시설이 따로 없어 다른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경찰관이 신경 써주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놓여 피해자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었다“며 “긴급보호센터를 경찰이 직접 운영하니 민간 운영 쉼터에 비해 피해자들이 더 안심한다”고 말했다.
노원경찰서에서 시범 운영 중인 가정폭력 솔루션팀은 단순 처벌과 보호를 넘어 가정폭력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석재윤 아동여성계장은 “기존에는 형사 처벌 외에 뾰족한 해결안이 없었다면 솔루션팀은 경찰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전문가들과 연계해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노원경찰서는 위의 박씨 가족 이외에도 부인을 때리고 협박하는 등 폭력을 일삼은 김아무개(65)씨 가족에 대해 솔루션팀을 통한 강제 이혼 방안 등 해결책을 모색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과 하동진 경감은 “예전에는 가정폭력을 개인사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면 지금은 경찰의 적극적 대응으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며 “가정폭력은 학교폭력이나 다른 사회문제와 연관이 크기 때문에 더 과감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남형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