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마을에 왔음을 알리는 동백꽃 그림과 캘리그래피
제주 북촌마을
“도민들 중에도 안 가본 사람 꽤 많을걸요.” 4월 17일 제주국제공항(이하 공항)에 내려 “북촌마을로 가달라”고 하자 택시 기사 고 아무개 씨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주 고유의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지. 제주다운 동네예요.”
공항에서 동쪽으로 40분가량 달리자 물빛 아름답기로 소문난 함덕해수욕장이 나타났다. 숙박업소, 카페, 음식점 등으로 즐비한 인근은 시끌벅적했다. “(해수욕장을 가리키며) 오른쪽에 오름 보이죠? 서우봉인데 넘어가면 북촌마을이 나와요. 여기랑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야. 정말 조용하지요.” ‘과장이 심한 거 아닌가….’ 그런데 곧 혼잣말이 무색한 상황이 펼쳐졌다. 동쪽으로 8분 정도 더 달렸을까. 마치 지도에 없는 것처럼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마을 하나가 꿈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낮은 돌담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집들에서 정겨움이 느껴졌다.
제주특별자치도 조천읍 북촌마을은 제주시 조천읍 동쪽 끝에 자리한 해변 마을이다. 북촌포구를 중심으로 본동, 서쪽에 서우봉과 접한 해동, 남쪽 선흘리 방향 중간산에 억수동이 자리 잡고, 1990년대에 한사동이 추가로 조성돼 총 4개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함덕과 월정리 사이에 있는 한적한 마을로 제주의 옛 모습을 좋아하는 도보 여행 마니아나 낚시꾼들 사이에서 ‘진짜 제주다운 제주’로 불린다.
▶북촌마을 보호수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이순범 할머니(왼쪽)와 장윤수 할머니. 보호수는 제주 사람들이 겪은 온갖 시련과 애환을 지켜낸 정주목과 같은 퐁낭(팽나무)이다.
돌집 뼈대에 현대적으로 꾸며 아늑
북촌마을에서 숙박하며 마을의 정취를 천천히 느껴볼 수 있는 독채 공간도 있다. 북촌리:멤버(@jeju_bukchon_remember), 옥화장(@okhwajang)은 제주 돌집 기본 골조인 대들보와 서까래 등 전통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편리함을 더한 숙박 공간이다.
북촌리:멤버 건축주는 오래간 투병하신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제대로 된 가족 여행도 못 가본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공간을 꾸렸다. 가장 제주스러우면서도, 연로한 어머니가 며칠이라도 편히 머무실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다 북촌마을을 발견했다고. 이 마을은 공항에서 택시를 이용해 편하게 올 수 있는 거리에 있고, 물질하는 제주 할머니들과 물고기를 잡는 고깃배들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 마을의 소박한 정취를 그대로 품은 그야말로 제주다운 제주다.
북촌리:멤버 곳곳에는 부모님이나 허물없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제주 시골 마을의 정취를 편하게 느끼며 놀고 쉴 수 있게 해주고픈 바람이 담겨 있다. 기존 주택의 창고 돌담을 그대로 살려 지지대로 쓰고, 그 위에 구로 철판으로 마감한 대형 테이블을 놓은 주방, 4계절 꽃을 보며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정원과 두런두런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대청마루, 과일을 담가놓거나 등목할 수 있는 수돗가 등 곳곳에 공간을 꾸린 이의 세심함이 엿보인다. 본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이 집이 57년 전에 지어졌다는 흔적인 상량문도 발견할 수 있다.
옥화장의 ‘옥화’는 주인 김양희 씨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함자다. “나이 들어 돌집 빌려 살면 좋겠다.”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 왔을 때 지나가듯 했던 말씀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불현듯 떠올라 제주 돌집을 찾아 나섰다. 약 3년에 걸쳐 제주 사방팔방을 찾아다닌 끝에 운명처럼 만난 집이다. 70년 된 제주도 옛 돌집을 골조와 서까래를 그대로 보존하며 다듬고 고쳐나갔는데, 외부는 돌이지만 내부는 제주에서 나는 굴목이나무로 만들어 아늑하고 포근하다. 마당에서 꽃을 가꾸던 어머니 이름을 따온 것처럼 옥화장 마당에는 나무와 꽃, 잔디도 있다.
▶‘북촌리:멤버’ 대청마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관광객 모녀
옥화장이 있는 북촌마을 서쪽 해동은 39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걸어서 1분이 채 안 걸리는 바다로 나가면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김녕해수욕장부터 월정, 성산까지는 해안도로가 닦여 해안가 주변 상가, 카페가 많아졌지만 이 마을은 해안도로가 없는 탓인지 상권이 발달하지 않았다. 김 씨는 “외지인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라며 북촌마을의 매력을 소개했다. “제주도 사람들도 잘 모를 정도로 그야말로 현지인들만 있는, 시골 느낌 물씬 풍기는 마을이죠. 인심도 매우 좋습니다.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의 말을 증명하듯 북촌초등학교에서 북촌항 쪽으로 향하는 마을 골목에 들어서자 마을 보호수 앞에서 한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서 왔나? 놀당 갑서(놀다 가).” 잡초를 뽑던 이순범 할머니가 손을 내밀며 ‘동네 형님네’인 장윤수 할머니 댁으로 안내했다. “여긴 다 친절해. 사람이 많지 않잖아. 만나면 반갑지. 우리만 그런가, 뭐. 제주 사람들이 다 따뜻해요.” 80대 이 할머니와 90대 장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애들? 다 잘 커서 제주시나 서울에 살지. 여긴 우리처럼 노인이 많아. 오후에 심심하니까 모여서 화투 치고 놀지. 다들 곧 모일 거야. 더 있다가 가면 좋을 텐데.” 장 할머니가 나눠준 간식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마을의 첫인상은 참 따뜻했다.
▶도대불이라고도 불리는 ‘등명대’.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불을 밝힌 마을의 등대다.
해마다 음력 12월 19일 같은 날 제사
마을 어귀 안내 표지판을 보면 북촌마을을 돌아보는 데 2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마을을 다 돌려면 훨씬 더 걸린다. 규모는 작지만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는 이 마을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북촌마을에는 사실 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이곳 마을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가 많이 살았고 해방 후에는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자치 조직이 활성화됐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1949년 1월 17일, 북촌리에서 참극이 벌어졌다. ‘너븐숭이’에서 무장대의 습격으로 군인 2명이 숨진 것을 군인들이 보복한 사건이다. 주민 300여 명을 북촌초등학교 인근 동서쪽 들과 밭에서 학살하는 등 북촌마을은 제주 4·3사건 최대 피해 지역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12월 19일 제사를 지낸다. 북촌마을 역사를 만나려면 마을 서남쪽 ‘너븐숭이 4·3 기념관’(이하 기념관)부터 찾는 게 좋다. 너븐숭이란 ‘넓은 돌밭’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기념관 내부 전시관에 들어서면 4·3사건이 일어난 배경 등 당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등지고 왼쪽에 있는 ‘애기무덤’. 사람들이 선물과 꽃, 인형 등을 놓고 갔다.
다려도는 많게는 수천 마리 원앙 도래
기념관을 등지고 왼편을 바라보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돌무덤 주위를 둘러싸고 서 있었다. 4·3사건 때 희생당한 어린아이들이 있는 ‘애기무덤’. 어른들 주검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른 곳에 안장했지만 어린아이들 주검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추모객들이 돌무덤 사이사이 인형과 핀, 꽃 등을 꽂아두었다. 한 친구가 애기무덤 앞 비석에 적힌 글귀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직 눈도 떠보지 못한 아기들일까/제대로 묻어주지도 못한/어머니의 한도 함께 묻힌 애기 돌무덤/사람이 죽으면/흙 속에 묻히는 줄로만 알았던 우리 눈에는/너무 낯선 돌무덤 앞에/목이 메인다/목이 메인다…”
▶북촌마을 첫 코스로 둘러보기 좋은 ‘너븐숭이 4·3 기념관’.
기념관을 나와 아래로 난 길을 10여 분 걸으면 서우봉이 보인다. 서산봉이라고도 하는 이 오름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20여 개 ‘진지동굴’과 4·3사건 당시 북촌 주민뿐 아니라 함덕 주민들도 숨었던 장소인 ‘몬주기알’이 있다. 몬주기알은 토벌대 작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인 1948년 12월 26일쯤 여성 4~5명이 절벽 위에서 총살당하는 등 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곳이다.
서우봉부터 해안을 따라 더 걷다 보면 바다에서 침입해오는 적을 막았던 성벽 환해장성,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본향당 가릿당 등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북쪽으로 가면 마을의 상징처럼 서 있는 등명대가 보인다. 도대불이라고도 불리는 등명대는 1915년 마을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바다에 나간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불을 밝힌 마을의 등대다.
▶너븐숭이 4·3 기념관 근처에 있는 ‘순이삼촌 문학비’. 주변 쓰러져 있는 비석들은 4·3사건 당시 희생자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애기무덤 옆 현기영 ‘순이삼촌 문학비’
등명대에서 바다를 향해 서면 작은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원앙(천연기념물 제327호)의 집단 도래지로도 유명한 다려도다. 매년 12월에서 2월 사이 적게는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마리의 원앙이 찾아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20여 분 동쪽으로 더 걷다 보면 북촌마을 청년들이 학살된 아픈 역사가 서린 낸시빌레도 볼 수 있다. 낸시빌레는 냉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다시 기념관으로 돌아오면 ‘북촌리 대학살’ 현장인 북촌초등학교와 당팟(신당 옆의 밭)이 보인다. 소설가 현기영은 <순이삼촌>이란 소설로 4·3사건의 참혹상을 고발한 적 있는데 기념관과 애기무덤 근처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2008년 정부가 옴팡밭 부지를 매입해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주변에 쓰러져 있는 비석들은 4·3사건 당시 희생자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인적 드물고 고요한 북촌마을 풍경
북촌마을 4·3길 코스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기념관을 나와 걷다 보면 나무에 걸린 붉은색, 흰색의 띠를 따라가면 된다. 이 띠는 4·3길을 상징하는 로고다. 띠의 붉은색은 정열, 희생, 진실을 뜻하고 흰색은 순결, 결백, 평화 등을 의미한다. 제주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제주 자연과 환경에 잘 적응하며 평화를 사랑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표현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편이 아니다 보니 마을에는 식당이 거의 없다. 북촌항 근처 등명대 바로 앞에 있는 로컬 맛집 방모루가 북촌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식당이다. 전복돌솥밥뿐 아니라 해물뚝배기, 회국수, 갈치·고등어조림 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주인인 김영란 씨는 음식 솜씨는 물론 인심이 매우 좋아 특별한 반찬을 서비스로 내주기도 한다.
마을 초입에서 만났던 이 할머니는 064로 시작하는 집 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손을 흔들었다. “또시 꼭 옵서양.”(다시 꼭 와요) 북촌마을 앞의 ‘가장 제주다운 제주’에 수식 하나 더 붙이는 게 맞겠다. ‘가장 제주답고, 인심 좋고 아름다운’ 곳.
제주/글·사진 김청연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