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소비자가 거대 기업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마케팅 전문가 필립 코틀러가인터넷의 발달로 소비자 주권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소비자의 힘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갈수록 현명해지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정부는 어떠한 정책을 전개해왔을까?
소비자 정책이란 소비자의 권익을 증진하고 소비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본 정책이다. 소비자 정책이 필요한 일차적 근거는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으로 생기는 정보 시장의 불완전성을 해소하는 데 있다. 소비자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 위한 협의의 소비자 정책과 소비자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간접적인 경제활동까지 포함하는 광의의 소비자 정책이 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 정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펴보자.
1960년대 ‘물가 안정’ 위한 소비자 정책 중심
1980년대 들어 소비자 보호 반영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정부는 물가를 관리하기 위한 소비자 관련 행정 업무를 시작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경제 발전이 중요했기에 정부는 소비자 문제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며 산업 발전을 더 중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소비자 정책은 물가를 안정시키는 차원에서 소비자 관련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197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비자운동 민간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이 창립됐다. 1980년에 접어들어비로소 ‘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차원의 소비자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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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2월 한국부인회 소속 주부들이 저질, 불량, 폭리 불신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동아dB
1980년대는 소비자 정책의 형성기라 할 수 있다. 소비자 정책에 대한 관심은 산업화, 정보화, 국제화에 발맞춰 급속히 증가했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욕구를 반영해 1980년 8월에 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고 1982년에 이 법을 시행했다. 1980년대는 소비자보호법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을 설립하고 법률을 제정한 시기다. 1982년에는 경제기획원 산하에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설치했다.
정부는 이 시기에 각종 거래제도를 정비했다. 1986년에 약관규제법을, 1987년에 도소매진흥법을 제정했고, 소비자 가격 표시제도와 공장도 가격 표시제도를 실행했으며, 1986년에는 식품의 유통기한 표시를 의무화하고 다양한 기준을 마련했다. 또한 소비자 피해 보상 규정을 제정했으며, 1987년 7월에는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한국소비자보호원을 설립했다. 정부는 또한 소비자의 피해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1986년에 ‘소비자 피해 보상 규정’을 제정하고 소비자 분쟁 조정 업무를 시작했다.
1990년대는 소비자 정책의 성장기에 해당된다. 1990년대는 소비자의 안전과 품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소비자 문제에 대한 소비자 주권 의식이 더욱 향상됐다. 소비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떠올랐으며, 그에 따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률과 행정 조직이 기반을 갖추었다.
이때부터 소비자의 안전과 품질 정보를 제공하려는 소비자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1년에는 제7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소비자 부문이 별도의 안으로 포함됐다. 정부는 1993년에 ‘농수산물 가공산업 육성 및 품질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농수산물 표시·품질인증 관련 제도를 도입했다. 1994년엔 소비자정책과를 신설했다. 1996년엔 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해 강제리콜 제도를 도입했고, 청약 철회권을 규정한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할부 거래에 관한 법률도 제정했다. 1996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소비자보호국이 신설됐고, 같은 해에 식품의약품안전본부(현 식약처 전신)가 신설됐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소비자 보호 조례를 제정하고 정비하는 등소비자 보호 활동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1999년에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특히 1990년대는 식생활에서 외식 추세가 늘어나고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된 이후에는 시장 개방으로소비자들이 식품 위해요인에 다양하게 노출됨에 따라 식품 위해 사고 발생 건수가 증가하고 소비자의 불안감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 정책도 좀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발전했다.
소비자 정책의 발전기라 할 수 있는 2000년대는 각종 소비자 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됐다. 이시기에 접어들어 소비자 정책의 기조가 ‘소비자 보호’에서 ‘소비자 주권’으로 바뀌어 소비자보호법이 대폭 개정됐다. 2006년 9월에는 소비자보호법이 ‘소비자기본법’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상품의 안전성을 강화하고 구매 피해에 대한 보상체제가 보완됐다. 또한 소비자 정책을 추진하는 총괄 주체가 재정경제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바뀌었다. 2007년 3월에는 소비자기본법에 의해 한국소비자보호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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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주권 향상으로 기업에서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높아졌다. ⓒ동아dB
이 시기에 정립된 소비자 정책의 기본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디지털 경제 시대에 부응하는 소비자 보호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소비자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전자상거래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위해물질 관리를 기반으로 한식품안전 정책을 개선하고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보 제공과 소비자 피해 구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을 활용한 종합적인 정보 제공이 추진됐고, 소비자 피해 구제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취약계층의 소비자 피해 구제를 강화하는 활동이 추진됐다.
규제와 지원 세분화·다양화
취약계층 소비자 피해 구제 활동 강화
2008년에는 기획재정부 소관이던 소비자 정책의 총괄 조정 업무까지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됨에 따라 소비자정책위원회도 공정거래위원회 소속이 됐다. 2008년 6월에는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식품안전기본법’이 제정됐고, 국무총리실 산하에 식품안전정책위원회가 구성됐다.
우리나라의 소비자 정책은 산업화, 정보화, 국제화 과정을 배경으로 빠르게 변화해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 정책의 범위를 거래 적정화, 안전성 보장, 정보 제공, 소비자 교육, 피해 구제라는5개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소비자 정책을 양분하면 대상과 방식에 따라 규제정책과 지원정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원정책(지원행정)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취약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정보 제공, 소비자 교육, 피해 구제), 소비자 교육, 소비자 정보 정책, 소비자 안전, 소비자 상담 및 피해 구제 등이다.
규제정책(규제행정)은 사업자를 대상으로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사업 활동을 제한하는 것으로(거래 적정화, 안전성 보장),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정비, 소비자 안전시책 강화,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등이다. 규제정책이든 지원정책이든 소비자 주권을 더 높일 수 있는 정책만이 실효적 가치가 있으리라. 12월 3일, 소비자의날을 맞아 이런 생각을 해본다.
글· 김병희(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PR학회 회장) 2016.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