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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어머니Ⅰ-열아홉 살’, 나무 위에 아크릴릭, 164×62×10cm, 1993│아르코미술관 소장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한복판에 빨간색 벽돌 건물이 있다. 아르코(ARCO) 예술극장과 미술관이다. 하늘을 찌르듯 수직으로 솟은 고층 건물과 달리 나지막한 높이다. 그래서 위압적이지 않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고 김수근(1931~1986). 김중업(1922~1988)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건축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1세대 건축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은 널리 알려졌다. 서울올림픽주경기장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수근 하면 벽돌로 마감한 건물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은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ARARIO Museum in SPACE)’로 바뀐 공간사옥(空間社屋)을 비롯해 경동교회, 불광동성당 같은 종교시설과 서울대학교 예술관, 덕성여자대학교 등이 대표적이다.
빛이 밝으면 그만큼 그림자도 짙게 마련. 김수근에겐 지울 수 없는 흑역사가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남영동 대공분실이 그 예다. 김수근은 당시 정권의 요구에 순응해 이 건물을 설계했다. 마치 수용소처럼 칸칸이 나뉜 작은 방과 이례적인 형태의 창문, 그리고 달팽이 계단 등. 용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건물 내부 원형이 본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민주인권기념관으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암울했던 역사의 현장을 한번 견학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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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어머니Ⅱ-딸과 아들’, 나무 위에 아크릴릭, 230×500×220cm, 1992
생명과 인간에 대한 연민
기억은 어떤 사건과 그 사건이 벌어진 공간에 대한 경험으로 재구성된다. 일 년에 서너 차례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간다. 그때마다 김수근을 생각한다. 그리고 여태껏 아르코미술관에서 봤던 전시 중에서 유독 기억나는 작품을 떠올려본다. 잊히지 않는 전시 가운데 하나가 작가 윤석남 개인전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2008년 가을, 붉은색 벽돌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겹쳐지고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거리를 활보할 때였다. 전시 제목은 ‘1.025-사람과 사람 없이’. 작품 내용은 단순했다. 하지만 풍기는 이미지만큼은 아주 강렬했다.
전시장은 ‘개-조각’으로 가득했다.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개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예쁘고 이국적인 품종이었다. 물론 직접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그 숫자가 무려 1025마리라고 했다. 윤석남은 5년에 걸쳐 이 개-조각을 만들었다. 혼자 들기에도 버거운 무게의 두툼한 나무판을 개 모양으로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그 위에 사실적으로 그들(개)의 모습과 표정을 그려 넣었다.
작가가 이 개-조각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건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어느 날, 윤석남은 신문기사를 보고 놀랐다. 주인에게 버려진 반려견, 즉 졸지에 유기견이 된 개를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 기사였다. 포천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 ‘애신의 집’을 직접 찾아간 작가는 그곳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한때 반려견이었던 유기견들이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사람에게 반갑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버린 인간에 대한 환멸, 버려진 개-생명에 대한 연민과 애도의 심정이 교차했다. 윤석남이 이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결국 모성애 때문이지 않았을까? ‘1.025-사람과 사람 없이’는 윤석남의 작품세계에서 ‘여성’이라는 거시적 주제가 ‘유기견’이라는 미시적 주제로 번안됐을 뿐 그가 품은 신념과 뿌리는 변함없이 동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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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 ‘1.025-사람과 사람 없이’, 나무 위에 아크릴릭, 2005~2008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큰언니
윤석남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팔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왕성히 작품을 발표한다. 아버지는 윤백남. 한국 최초의 극영화 감독이자 1930년대 <동아일보>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한 예술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당시 39세였던 어머니가 홀로 육남매를 키워냈다. 윤석남이 줄곧 ‘어머니’와 ‘딸’, 나아가 ‘여성’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게 된 배경엔 이런 개인사가 담겨 있다.
또한 윤석남이 미술가의 길로 접어든 시기는 여느 작가보다 늦었다. 결혼하고 딸을 출산한 후부터 그림을 시작했다.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 1983~1984년 뉴욕에서 판화와 회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요즘은 ‘페미니즘(Feminism)’이란 말을 흔히 접한다. 하지만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정은 달랐다. 적어도 국내에선 용어 자체도 낯설었고, 인식도 낮았다. 심지어 금기어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남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여성주의 미술’의 큰언니 역할을 해왔다. 1980년부터 이 땅에 여성주의 미술의 씨앗을 뿌려왔다. 일찍이 자신이 ‘여성-예술가’임을 자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석남은 현재진행형 작가다. 대표 형식으로 각인된 나무조각 설치작품을 비롯해 텍스트와 어우러진 드로잉, 그리고 가위로 오려낸 색종이 작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열정을 뿜어낸다. 2021년 10월,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에 있는 일민미술관에서 윤석남의 전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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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