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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가끔, 지나온 일을 돌아보면 예전에 겪은 어떤 일이 굉장히 대유적(하나의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는 말이 경험적으로 그것과 밀접하게 연관된 다른 사물이나 관념을 나타내도록 표현하는 수사법)이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냥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뿐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게 인생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날은 무슨 기념일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아무 날도 아닌데 그냥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모시고 한정식집으로 밥을 먹으러 갔는지도 모른다. 관악산 삼막사에서 안양으로 빠지는 도로 주변에는 유명한 식당이 많은데 그날 우리가 간 곳은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많아 항상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하는 한정식집이었다. 몇 번 가본 적이 있어서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쪽 길은 오랜만에 오네.”
장인어른은 조수석에 앉아 계셨고 뒷좌석에는 장모님, 아내와 아이가 타고 있었다. 날이 더웠고 차 안에 사람이 많아서 평소보다 에어컨을 세게 틀었는데도 약간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길까지 막혀 답답한 느낌이 더했다.
“이 시간에 이쪽 길이 원래 이렇게 막혔나?”
장인어른도 공기가 답답했는지 창문을 손가락 마디만큼 열고 앞뒤를 살피셨다. 평소에도 통행량이 많은 곳이라 막히는 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장인어른 말씀대로 그렇게 막힐 시간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좁은 이차선 도로에 차가 빽빽이 서 있었고, 보닛을 프라이팬처럼 달구는 땡볕 속에서 차들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에어컨의 세기를 한 단계 높였다.
차가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서 10분쯤 서 있자 카시트에 앉아 있던 아이가 멀미를 하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속이 안 좋아? 하며 손가방에서 꺼낸 검은 비닐봉지를 아이 입에 가져다 대셨고, 아내는 토하려는 게 아니라 배가 고파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가 멀미를 하고 뒷좌석의 두 사람이 ‘어떡하지? 큰일이네. 조금만 더 기다려’ 같은 말을 반복하자 정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꽉 끼는 상자에 갇혀 숨만 쉬는 기분이었다.
“창문이라도 열까?”
장인어른이 뒷좌석을 돌아보며 물으시고는 차창을 내렸다. 열기와 먼지와 매연 냄새 때문에 나까지 속이 울렁거렸다. 아이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야 했고 그곳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운전대를 잡은 나뿐이었지만 앞뒤로 차가 막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한정식집에서 500m쯤 되는 곳까지 도착했다.
“앞에서 사고가 났나 봐요.”
가다 서다 하던 차가 30분 가까이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추돌사고가 났거나 고장 난 차가 길을 막고 서 있는 것 같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자꾸 변명을 하게 되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도로 옆에 난 샛길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름길 같았다. 길이 옆으로 뻗어나가다 도로 쪽으로 합류하는 것처럼 휘어 있어서 더 그래 보였다. 그 길로 들어갔다가 나오면 바로 음식점 앞이거나 그게 아니어도 모든 상황이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운전대를 옆으로 꺾었다.
“이쪽으로 가도 괜찮나?”
“일단 운전하는 사람을 믿어봅시다.”
20분쯤 뒤에 나는 한정식집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식구들을 태우고 KTX 광명역을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상황이 나아지기는 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차 안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았고 아이도 멀미가 가신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먼 길을 돌아 한정식집에 도착했고 도착한 뒤에는 다들 배가 너무 고파서 그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지름길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차들이 왜 그 길로 가지 않고 땡볕 아래 서 있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르고 대부분의 잘못된 선택은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그날 나는 그런 것들을 배웠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왜 모두 ‘예’라고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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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_ 소설가. 201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 <굿바이 동물원> <두 얼굴의 사나이> <리의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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