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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쇼핑을 자주 하지 않는데, 얼마 전부터 한 가지 물건에 꽂히면 두세 시간씩 검색하고 구경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언가 필요해서 찾아볼 때도 있지만 구매와 상관없는 물건에 관심이 생길 때도 쇼핑 누리집을 돌아다닌다. 이런 물건도 파는구나, 가격대는 어떤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기분으로 물건을 구경하는 게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쇼핑 누리집을 뒤질 때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멋진 자동차나 고급 만년필을 검색하면 가격이 뜬다. ‘이 정도면 살 수 있겠지’라는 예상과 함께 검색을 시작하는데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생각보다 싸거나 비싸서 놀랄 때도 있다. ‘가격이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필요한 물건이 아닌데도 솔깃해진다.
며칠 전이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는데 바람을 동반한 비가 아니라 조용하고 운치 있었다. 시원하고 걷기 좋아서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향긋했고 비에 씻긴 공기는 깨끗했다.
공원 안쪽에는 정자가 있는데 정면에 숲이 보이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의 흔들림이 예뻐서 평소 인기가 좋은 곳이었다. 저녁 시간에는 몇 번 앉아본 적이 있지만 낮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그냥 지나치곤 했다. 그날은 정자가 비어 있었고 나는 비도 피할 겸 우산을 접고 정자에 걸터앉았다. 서너 명은 괜찮지만 대여섯 명이 앉으면 좁을 것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물방울이 튀는 듯한 피아노 연주곡을 들었다. 빗줄기는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했고 흐린 하늘 아래 펼쳐진 숲은 아름다웠다. 정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다 다리를 쭉 펴니 양쪽 정강이에 닿는 마룻바닥이 단단하고 시원해서 기분이 좋았다. 더위와 코로나19로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 같고 동네 공원에서 생각지도 못한 보석 같은 공간과 시간을 만난 듯 했다.
한참 그렇게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팠다. 손바닥으로 마루를 짚은 채 몸을 뒤로 젖혀봤다가 팔꿈치로 바닥을 짚었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다가 차라리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다른 사람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정자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누웠다. 비는 잠시 멈추었고 피아노 연주곡은 여전히 달콤했다.
바닥에 등을 대자 천장이 보였다. 누군가 기둥에 올려놓은 우산과 장기판 같은 것들이 보였다. 천장과 주변 풍경을 가만히 둘러보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시간이 10분쯤 흘렀고 모기에게 세 군데나 물렸지만 몸이 아주 개운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나는 인터넷 쇼핑 누리집을 돌아다니며 가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정자는 얼마나 할까? 꼭 사야겠다거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나만의 정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자 같은 걸 팔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쇼핑 누리집에 들어가서 검색하자 다양한 모양과 가격대의 정자들이 나왔다. 그곳은 낯설고 새로운 세계였다. 합판으로 된 정자는 예상보다 쌌고 원목으로 만든 정자는 비쌌다. 평상에 파라솔 하나만 달랑 꽂혀 있는 것부터 이층으로 되어 있거나 오두막형으로 나온 호화로운 정자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구매한 사람들이 쓴 후기도 꼼꼼하게 읽었다. 직접 찍어서 올린 사진도 보았다. 마당이나 옥상에 정자를 설치했는데 길가나 숲속이 배경이라 보기 좋았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인터넷 누리집을 돌아다녔다. 어느새 비는 완전히 그쳤고 할머니 한 분이 짐차를 밀며 정자로 오셨다. 산책하면서 머리를 비우려고 공원에 나온 건데 집으로 돌아가는 머릿속은 나만의 정자를 갖는 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절대 살 것 같지 않고 당분간 살 수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곳에서 보낸 혼자만의 휴식 시간이 준 상쾌함과 편안함이 잊히지 않았다. 나만의 정자를 가져도 되는 나이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공간에 관심을 가질 만큼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이 조금 흐렸고 다시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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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식_ 소설가. 2012년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설 <굿바이 동물원> <두 얼굴의 사나이> <리의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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